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

----------

16화, 함정


다음날, 다시 부대가 남서쪽을 향해 출발하자 아인은 전날 그랬던 것처럼(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알프레트의 뒤쪽으로 가려 했다. 그러나 그가 데려온 호위병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무어라 말해도 비켜줄 것 같지 않았다. 아인은 가만히 진의 왼쪽 후방, 잔과 마리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느새 해가 머리 위를 지나 서쪽으로 나아갈 무렵, 부대는 용의 입 협곡에 다다랐다. 알프레트는 대열의 선두에 나서서 협곡을 향하여 크게 소리쳤다.


“나와라! 배신자! 카이저님의 명을 받들어 오늘 네놈의 목을 취하러 왔다!”


알프레트의 외침과 동시에 협곡 위에서 검붉은 형상이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순식간에 알프레트의 앞에 다가왔다.


“하찮은 것들이 친히 죽으려고 와주었구나!!”


아인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검붉은 비늘로 이루어진 피부, 머리 위로 곧게 뻗은 한 쌍의 뿔, 50여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날개… 틀림없는 로베르트 폰 고레츠카, ‘아바라치아’였다. 그 크기에 압도당한 몇몇 병사들이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대열의 앞에 서 있는 말들이 본능적인 공포에 울부짖었다. 그러나 알프레트는 공포라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당당하게 용을 노려보며 말했다.


“친히 죽으러 와주었구나, 배신자.”


‘아바라치아’는 낮고 오만한 목소리로 그를 비웃었다.


“쓸데없는 만용이다, 필멸자. 고작 그 정도 군세로 나를 잡으러 왔단 말이냐? 카이저가 네놈에게 거는 기대치를 알만 하군.”


“그 웃음,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가라!”


명령과 함께 진영이 둘로 갈라졌다. ‘아바라치아’는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쏴라!”


그 말과 함께 궁기병들이 ‘아바라치아’를 향하여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화살은 대부분 비늘에 막혀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졌지만 몇몇 화살은 비늘이 없는 날개에 박혔다. ‘아바라치아’가 고통에 신음하자 알프레트는 다시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다, 놈을 바닥에 박아버려!”


그 말과 함께 마법사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우자 허공에서 밧줄이 나타나 ‘아바라치아’에게 날아가서 놈을 칭칭 묶어버렸다. 전투가 시작된지 단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30개의 푸른 밧줄이 ‘아바라치아’를 묶어 지상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아인은 놀라움과 동시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대단해! 수천의 군사들을 자기 손발처럼 다루다니! 하지만, 저놈이 저렇게 순순히 당한다고…?’


그 순간, ‘아바라치아’의 입에서 생전 처음 듣는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저히 비슷한 무언가를 떠올릴 수조차 없는 굉음에 아인을 비롯한 모두가 귀를 막고 고통스러워했고, 그 탓에 밧줄이 풀려버리자 ‘아바라치아’는 날개를 피고 날아올라 협곡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놈이 도망친다! 쫓아라!”


알프레트는 다시 병사들을 이끌고 ‘아바라치아’를 추적했다. ‘아바라치아’는 협곡 입구부근에 내려 앉아 그들을 노려보았다. 아인이 소리쳤다.


“사령관 님, 앞은 협곡입니다. 이 이상 가시면 분명 역공을 당하실 것입니다!”


알프레트는 어느새 자신들이 협곡 입구까지 왔다는 것을 깨닫고 군대를 세우더니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하, 네놈! 그런 얄팍한 수로 우리를 쓸어버릴 생각이었나? 우리가 멍청하게 좁은 협곡 안으로 한발자국이라도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나?”


“하하하! 그래, 제아무리 일개 필멸자와 곱게 자란 귀족 청년이라고 해도 그 정도는 생각했겠지. 네놈들이 협곡에 발을 디디지 않으리라고는 당연히 예상했다. 그래서, 내가 협곡을 이리 가져왔지.”


“뭐?”


알프레트와 아인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잔을 비롯한 마법사들이 가장 먼저 무언가 눈치채고는 소리쳤다.


“사령관님! 함정입니다!”


누군가 알프레트를 향하여 소리쳤으나 이미 늦고 말았다. 진영의 양 옆으로 협곡이 나타나 수천의 군대를 모조리 감싸버렸다. 경악한 아인이 소리쳤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느 마법사가 소리쳤다.


“환각 마법이야! 완전히 속았어!”


 아인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전 병력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협곡에 들어와 있었다.


“사령관 님, 명령을!”


아인은 알프레트에게 다음 명령을 물었다. 그러나 알프레트는 큰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말도 안 돼… 나… 난 엘리트란 말이다… 이 정도 전략쯤… 충분히… 간파를 했어야…!”


“사령관 님!”


그 순간, 알프레트를 향해 불덩이가 날아들어 그대로 덮쳤다. 


“사령관!!”


아인이 불에 휩싸인 그를 불렀으나 그는 이미 재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죽음을 시작으로, ‘아바라치아’의 화염이 협곡을 따라 타올랐다. 병사들의 비명소리와 시체 타는 역한 냄새가 협곡에 진동했다. 

아인은 충격에 빠져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떤 마법사는 보호막으로 공격을 막으려 했으나 용의 화염이 마치 살아있는 듯이 순식간에 보호막을 둘러싸더니 그대로 보호막을 부숴버렸다. 한 기병은 자신의 말에 짓밟혀 머리가 터져버렸다. 수많은 병사들이 왔던 길을 통해 이 지옥에서 빠져나가려 했으나 폭이 300미터에 달할 정도로 넓은 협곡과는 달리 입구는 몹시 좁아 여러 명이 몰리니 제대로 빠져나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아바라치아’는 그것을 노렸다는 듯 입구 부근에 집중적으로 공격을 갈겼다. 

사령관 알프레트는 죽었다. 때문에 아인이 지휘관이 되었고 아인은 즉시 판단을 내려야 했다. 늑대처럼 주변을 살피던 아인의 시선에 입구보다 더 넓은 협곡의 출구가 들어왔다.


“전원, 협곡의 반대편 출구로 달려라!! 반드시 살아남아라! 후퇴!!”


아인은 온 힘을 다해 외치고는 용의 시선을 끌기 위해, 그리고 입구에 몰린 병사들을 돕기 위해 협곡의 입구로 말을 몰았다. 다행히 많은 병사들이 아인의 말을 듣고 출구로 달리고 있었다.


아인은 입구를 향해 달리던 도중 다른 병사들을 돕고 있는 둘을 만났다.


“잔, 마리! 살아있었구나! 도움이 필요해, 날 따라와줘.”


다행히 둘은 망설임 없이 아인을 따라왔다. 협곡 입구에는 이미 많은 병사들이 용의 화염에 불타 재가 되었지만 몇몇 병사들이 남아 있었다.


“마리,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을 도와줘! 잔! 너는 저놈, ‘아바라치아’의 주의를 끌어줘!”


마리는 그 말과 함께 살아있는 사람에게 빛을 불어넣어 움직일 수 있도록 하고, 잔은 아인의 예상대로 출구를 향해 날아가는 ‘아바라치아’에게 주문을 날려 주의를 끌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놈은 아마 나나 잔을 가장 먼저 공격하려 할거야. 자기 계획을 망친 주범이니까.’


아인은 자신의 계획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아바라치아’를 향해 분노에 찬 얼굴로 방패를 치켜들었다.


“와라!”


‘아바라치아’는 아인을 향해 시뻘건 불을 뿜었으나, 불은 아인의 방패에 닿기가 무섭게 허공에 흩어졌다. 그러자 아바라치아는 이번엔 거대한 불덩이를 토했다. 아인은 아까 보다 방패를 든 손에 힘을 주었고, 불덩이는 방패에 맞고는 불타는 파편 하나 남기지 않고 산산이 부서졌다. 방패에는 여전히 그슬림은 커녕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하! 통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역시 ‘그것’이로군…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그것이라니?”


아인이 ‘아바라치아’의 말에 의문을 표하는 순간, 그는 입에서 불의 창을 만들어 쏘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아인은 놀라서 방패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창은 방패에 날아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 아인의 주변에 박혔다.


“뭐야, 어딜 향해 쏘는 거냐?!”


“네놈들은 이미 죽어있다.”


그 말과 동시에 바닥에 박힌 불의 창이 폭발하고, 거대한 화염이 아인과 잔을 덮쳤다. 마리가 둘이 있던 곳을 향해 소리쳤다.


“아인! 잔!”


“당했구나…! 귀찮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끝이다!”


‘아바라치아’는 불길을 내려보았다. 그 순간…


“끝이라고? 똑바로 보시지!”


화염 속에서 아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순식간에 불길이 걷히며 얼음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럴 수가!”


자신이 자부하던 기술이 막혀버린 ‘아바라치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인이 빠르게 녹아내리는 얼음 보호막 속에서 말했다.


“아슬아슬했어. 불길이 덮치기 전에 잔이 주문을 시전하지 못했다면 아마 바짝 구워졌겠지. 잔, 내가 말한 건 이해했지?”


“그럼.”


“가자!”


아인은 ‘아바라치아’의 앞으로 달려나가 방패를 두들기며 그의 시선을 끌었다.


“나와라! 비겁한 녀석! 이리 내려와서 정정 당당하게 붙자!!”


“닥쳐라! 내가 왜 네놈들과 눈높이를 맞춰야 하지?”


“잔, 지금이야!”


아인이 말을 하자마자 잔이 허공에서 얼음의 창을 소환해 ‘아바라치아’에게 날리더니 연이어서 얼음바람을 쏘아 댔다. 날아간 두 개의 얼음 창 중 하나는 그의 배에, 다른 하나는 다리에 맞고는 튕겨나가자 잔은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아바라치아’에게 쏟아지도록 만들었다. 마리는 그 광경을 보며 그를 죽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대단해! 아인, 다음은 뭐야?”


아인은 조용히 ‘아바라치아’를 바라본 다음 무심히 말했다.


“튀는 거.”


“뭐?”


아인은 빛의 속도로 말에 올라타 마리를 들쳐 매고 달리기 시작했다. 잔도 함께 말을 소환해서 협곡의 출구로 내달렸다.


“뭐하는 거야! 놈을 죽여야지! 저놈이 쫓아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지금으로써는 죽일 수 없어! 그리고 놈은 아마 쫓아오지 못할 거야.”


아인은 ‘아바라치아’ 쪽을 돌아보았다. 잔뜩 분노한 ‘아바라치아’는 그 자리에서 폭발하는 화산처럼 하늘에 불을 마구 뿜어 대고 있었다. 아인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어.”


“망할 놈들. 감히 도망을 치려고! 남은 잔당까지 함께 끝내주마.”


‘아바라치아’는 몸을 틀어 아인 일행에게로 날아가려 했다. 그러나, 날개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날개가 움직이지 않아! 이건!”


‘아바라치아’는 자신의 날개가 얇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그 마법이 나를 공격하려던 것이 아니라 이걸 노리던 거였나! 망할! 이래서는 다가가도 역습만 당할 뿐이겠어.’


‘아바라치아’는 멀어져 가는 그들을 보며 소름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쫓아오지 않잖아?”


아인은 그런 ‘아바라치아’를 보며 안도했다.


“도박이 통했어.”


잔이 설명했다.


“얼음 마법은 일반적인 얼음과 달리 더 온도가 낮아. 그래서 내가 날린 얼음들이 자연스레 놈의 몸에 달라붙었겠지. 붙은 쪽의 얼음이 놈의 체온에 녹았다가 다음으로 쌓인 얼음 자체의 온도에 다시 얼어붙어서 저렇게 된 거야. 저래서는 한동안 제대로 날지는 못하겠지. 


“가자! 남은 병사들을 수습해야 돼.”


셋은 출구로 달려나갔다.

----------

끼요오오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