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지망생이라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그러한 혐오는 더욱 깊어져만 갔다.


어째서 글을 쓰는 작자들은 하나같이 서정적인 것일까. 아니, 서정적이기 위하여 애쓰는 것일까.


그들은 글을 쓸 때에 문자 하나하나에 고심한다. 그 속에 우울을 담기 위해 노력한다. 그 속에 좌절을 담기 위하여 노력한다.

활자 하나하나에 감정을 넣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들은 꽤나 고통스러운 것이기에 그들의 글에도 고통이 묻어나온다. 때로는 그러한 고통스러운 글들이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자랑하듯 얼굴에 새빨간 물감을 칠하고는 자신의 우울감을 자랑하곤 한다.


그리고 그러한 글을 쓴 이들이, 희희낙락하며 여자를 끼곤 담배를 피며 통닭을 뜯는 꼴을 볼 때면은 구역질이 나곤 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이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것은 아니며, 행복한 중에도 슬플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글을 쓰기 위해 우울할 뿐이었다.


우울한 글이 행복한 글보다 잘 먹히니까. 우울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으니까.


서울에 집이 있고, 자차를 타고 등하교하는 대학생 작가 지망생은 슬플 수 있는가. 그가 학비를 벌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이보다 슬픈가? 제 몸 누일 자리 하나 찾지 못해 서울의 밤거리를 떠도는 이들보다 안타까운가. 


아니, 그는 그저 만족을 하지 못할 뿐이다.


물질적인 풍요와 정신적인 쾌락에 만족하지 못한 채, 그것을 우울과 서정으로 포장하여 글을 써내릴 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과 거리를 두었다.


가까이 있다가는 그들의 '서정'이 옮아버릴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