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연하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싶었다.


나는 세상에 살았고 이 무덥고 시려운 세상에 살았다. 그 속에서 미지근한 것은 오로지 사람뿐이어서, 사람의 온기에 매이고 사람의 냉기에 익숙해지며 기어코 그들이 전부인 양 살았다.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에는 의문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의 전부라면 어째서 그들은 내가 아닌가? 나는 그들이 행복할 때에 항상 행복하지 않았고, 그들이 슬플 때에 항상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나는 나였고, 그들은 그들이었다.


보잘것없는 내가 우선이 되는 삶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가진 것도 얼마 없어 나눠줄 것이 없는 나는 항상 풍족한 이를 따라다녔고, 고로 얼마 남지 않은 무언가를 나눠줄 방법조차 까먹어버렸다.


무언가를 주지 않으면, 나를 좇을 사람은 없었다.


무언가의 종류는 다양했다. 돈, 마음, 사랑, 공감, 온기. 온기. 나는 가난하지 않았지만 죄 놓아 버릴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마음에는 항상 서툴렀다. 사랑은 기억에 뒤덮여 아픔으로 염색되었다. 나는 과거 속에서 내 눈을 가리며 연명했고, 너를 볼 수 없게 되어 공감해줄 수도 없었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었던가?


...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산다.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 남이 가진 것을 나에게 줄 때, 그것을 감사라고 표현한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줄 때, 그것을 보람이라고 표현한다. 남이 가진 것을 나에게 내밀고, 나 또한 가진 것을 웃으며 그에게 내밀 때, 그것을 사랑이라 표현한다.


나는 어리석었다. 주지 않고서 받기를 원했고, 원했던 것을 얻었음에도 웃지 않았다. 나는 문을 굳게 닫고 스며들어오는 바깥의 온기를 만끽하면서, 그것에 미묘한 아쉬움을 느껴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그를 책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들어오고 싶었을텐데..


...


그 후, 나는 따스한 사람이 되려 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미덕이니까.


나는 기억을 더듬어 나에게 온기를 전해주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을 닮으려 노력했다.


나는 많이 웃었다. 웃음이란 것은 대화 속의 꽤 많은 상황에서 해결책이 되어 주었다. 상대가 나를 향해 말할 때에, 그것이 재미있는 말이거나 어처구니없고 실없는 일일 때에 특히 유용했다.


사람의 일상적인 대화, 즉 수다라는 것의 대부분은 저 세 가지 일과 비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점차 주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는 날이 갈 수록 나를 믿게 되었고, 괜한 고양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하루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날카롭게 뻗친 손에 의해 내 어깨는 주륵 밀려나고 말았고, 그 손에서 전해진 냉기는 어쩐지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제법 따뜻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온도는 언제까지나 상대적이다.


내가 따뜻한 사람이 되면 타인의 냉기가 점점 더 차가워진다.


..어떻게 해야 하지?


...


사람은 정온동물이 아니라 변온동물이었나 보다. 나를 냉대하는 사람에게 온기를 낭비할 필요는 없는 거겠지.


이로써 나는 조금 더 사회에 맞는 사람이 되었고, 모든 사람에게 따뜻하고 싶었던 과거를 잃어버렸다.


비극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길 바란다. 사회는 지독히도 효율적이고, 나에게 과거는 언젠가 버려질 것들이니까.


나는 그저 만족하고, 충분히 혼란스럽다.


혼란을 극복하는 법이란 없으니, 나는 더없이 혼란스럽고 위태로운 내 생에 최고의 순간을 만끽할 것이다.


나는 연연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는 연연하지 않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