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첫째>

20230912



오늘부터 나로 하여금 허무주의(虛無主義)를 표방한다. 죽음으로 자유로운 것은 우리가 아니었다. 굳게 세상이라 믿어 온 것들의 방종이 나를 밀쳐내였던가. 그 허무는 극오(極悟)의 형상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 옛날 우리를 향해 나는 울부짖었다.


어느 여름날 영주(榮州)의 볕촌을 거니며 글을 끼적이곤 하였지만— 어린 시절 나는 스스로 멍청하여, 고로 깨달을 수 없었다. 그 정각 아버지는 무던한 걸음으로 곡식의 길을 노닐으며 "학교는 힘들지 않든가?" 또는 "나는 그때 그렇게 생각하였다—" 와 같은 진부한 훈계의 말씀을 하였다. 사실은 소년에게 어떤 말이라도 꺼내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소년에게 찾아 온 절망의 시간, 아버지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내가 그의 진실된 울음을 직시한 것은, 또한 그 아버지 되는 자의 감긴 눈을 바라보던 과거의 순간 뿐이였다. 나의 아버지는 멀리 영주(榮州)의 볕촌으로 돌아갔다. 시향(屍香) 깊은 목관을 짊어지던 아버지의 두 눈 잔뜩이 후회가 가득하였다. 나는 그 시절이 되어서야 그 역시 아버지가 아니였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나는 첫 번째 폭력을 경험하였다. 그것은 사죄할 수 없었고 동시에 처절하지 않았던 한 남자의 오랜 소망과도 같은 것이어서, 우리 살던 시골 처맛집의 이름은 아들이었던 소년이 명명하였다. 그 곳(大辰家)은 자욱한 별이 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