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사일의 하늘은 맑았다.


동생의 해맑은 목소리도, 따뜻한 물에 급하게 우린 향긋한 얼 그레이 차도, 평소보다 무거운 어머니의 발소리도, 맑디맑은 주홍색이었다. 그 어떤 심각한 물음을 던져도,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먹먹할 줄로만 알았던 가슴은 기이하게도 태연했다.


그 이유를 물을 새는 없었다. 일곱 시 오십 분은 안 그래도 분주한 시간이었다.


어머니의 묵직한 여행 가방을 차에 싣고, 뒷좌석에 앉은 우리 가족은 말없이 서로에게 기대었다. 햇빛과 먼지만 가득한 공기는 텁텁했다.

책가방을 벗고서, 더 가까이,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저 화창한 날보다도 따뜻했던, 진하지만 눅눅하지 않은 포옹이었다. 함께할 시간이 몇 분이나 더 남았을까, 확인할 용기는 없었다. 


눈을 꼭 감고 있었건만, 햇살이 너무도 눈부셨다.


눈물은 감히 흘리지 못했다. 팔을 두르고, 머리를 기대고, 작별 인사를 속삭이며, 우리는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가족애라 칭하기에는 이질적인, 어떤 종교적인 신성함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는,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나를 다독이셨다. 고등학교도, 대학 입시도, 오고 갈 수많은 사람과 시험과 이별도, 괜찮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 위로는 선언이 아니었다. 소망이자 부탁이었다.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나만큼이나 두려워하고 있으셨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끄덕였다. 선언할 수 없었기에 약속할 뿐이었다. 


일 년간의 이별을 고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날씨였다. 싱그러운 가을의 향기가, 옅은 황금빛으로 물든 세상이, 시월의 서늘한 손길이 채 닿지 않은 늦여름의 발랄한 손짓이, 어리석고 허무한 꿈만 같았다. 꿈이었다면, 차라리 꿈이었다면. 


고등학교 주차장의 입구가 보이자, 손을 잡고 춤을 추던 풍경들이 하나둘 내려앉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차 밖에서 나를 한 번만 더 끌어안고 싶다고 조용히 부탁하셨다.

이상하게도, 그토록 애원하던 가슴이 그 한 번만큼은 차갑게 고개를 저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어슴푸레한 약속에 취한 것이었일까, 슬픔을 채 견디지 못해 도망치려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순간의 변덕이었을까. 나는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서둘러 그 부탁을 거절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향해 흔들던 손은 이미 갈 곳을 잃어, 날개가 찢어진 나비처럼 휘청휘청 힘없이 떨어졌다.


어머니의 목소리도, 모습도, 하다못해 어머니의 갈색 눈동자의 색깔도-- 눈부신 햇살에, 떠들썩한 잡담에, 배기음과 학교 종소리에, 새빨간 페인트에, 시들기 시작한 나뭇잎에, 가방의 무게와 커다란 대문에, 가슴 속에 쌓이고 쌓인 하얀 잿더미 속에, 묻히고 잊혀져 갔다. 남은 것은 가쁜 숨소리뿐이었다.


그 때에도, 지금 이렇게나 시릴 줄 알았으면, 어머니를 꼭 부여잡고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었을까. 사랑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었을까. 하다못해 마음 깊이 남은 절절한 침묵이라도 웃음과 함께 전해 드릴 수 있었을까.


오늘의 하늘은 너무나도 흐려서, 구름에 내 얼굴이 비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