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누나가 있었다.

그리고 누나는 뭐든지 척척 알아서 하는 아이였다.

나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내게 무관심했다거나 무책임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내가 하려는 일은 뭐든지 도와주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혼나는 일이 없었던 아이는 응석받이로 자라나고 말았다.

누군가가 정해준 길만을 걷다 보니,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게 내 인생이었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정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나는 약한 편에 속하는 ADHD를 가지고 있다.

하고 싶은 것마저도 귀찮게 느껴지는 마당에, 공부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래도 똑똑했던 나는 학교 수업만으로 평범한 성적을 유지했다.

지금은 평균보다 조금 위의 대학을 다닌다.


나는 불면증이 없다.

그럼에도 밤에 잠을 자지 않는 것은, 오랜 악습관 때문이다.

잠을 잘 때마다 그대로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다.

어릴 적부터 몰래 핸드폰을 하곤 했다.

여러 번 들켰지만 오늘까지도 계속되어 왔다.


약 8년 전, 우리 가족은 다같이 외국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외국인밖에 없는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고립되었다.

워낙에 평화로운 동네라 괴롭힘은 당한 적 없다.

그러나 혼자였다.

고독하리만치 혼자였다.


나는 그래서 인터넷을 시작했다.

친구를 사귀어서 같이 노가리도 까고, 게임도 하고.

행복했다.

한국 사람들이랑 놀려고 밤늦게까지 깨어있게 된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이겠지.

다만, 불과 몇 개의 문자로 맺어진 인연은 그만큼 쉽게 끊어진다.

친구를 잃었다.

내 탓이 없었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이유를 몰랐던 나는 전부 내 탓으로 돌렸다.

부끄러웠다.

동시에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게 혐오스러웠다.

그래서 도망쳤다.

새로운 프로필을 만들고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서.


완벽을 연기했다.

실패하고 도망치기를 2년 동안이나 반복했다.

자기혐오와 인간 불신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마다 외로워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내 이상형은 외로울 때면 연락을 받아줄 만한 사람이다.

나를 이해해 주며 좋아해주는 사람.

절대로 불가능하겠지.

내가 남에게 허심탄회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 따위는.


나는 평생 독신으로 살지 않을까 싶다.

연애는 둘째치고 결혼도 하기 싫고, 애도 낳기 싫으니 말이다.


내게 불행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걸 왜 쓰기 시작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당장 새벽이라 정신이 혼미하다.

나를 알아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 익명의 호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