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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이거


지팡이를 빼고, 뚜껑을 덮고 레시피들을 다시 확인한다.

보글거리는 소리와 윙윙거리는 모터음이 아틀리에를 지배하려 하지만, 그 침묵마저도 펄럭거리는 지식을 찾는 소리와 무심하게도 째깍이는 시간 속에서 지워진다.

화이트보드에 필요해보이는 레시피들과 이론들을 적은 메모들을 붙히고, 마지막 자석의 탁 소리와 동시에 멈춘 기계에서 플라스크를 꺼내 내용물을 확인했다.



일단 의성어 넣은거 좋았어요. 현장감이 느껴진달까. 안넣는 것보다 감각적으로 풍부해요.


템포를 늦추려고 하신단 건 많은 생각을 집어넣고 싶으시단 건데, 중요한 건 가독성이예요오. 


가독성에는 두 종류가 있서요오. 형식적인 가독성이랑 아닌거에요오. 형식적인 가독성은 그냥 띄어쓰기랑 줄 바꿈, 문단 나누기 같은 거라서 특별한 테크닉 필요 없음 인것이예요.


여기서 저어가 공유하고자 하는 팁은 비형식적이고 애매모호한 가독성 개선 방법이에요오. 


일단 문체는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서 잘 썼다 못 썻다를 논하는 건 의미 없음 이예요. 그 점을 유념하고 제가 개선해 본 걸 다시 볼게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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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를 빼고, 뚜껑을 덮고 레시피들을 다시 확인한다.

보글거리는 소리. 그리고 모터의 윙윙댐이 아틀리에를 지배하려 하지만, 지워져 버린다. 펄럭이며 지식을 찾는 소리와 째깍이는 시간의 무심함에 묻혀버린 것이다.

화이트보드에 자석을 붙였다. 필요해보이는 레시피들과 이론들이 적힌 메모들이 차례로 거기 매달렸다. 마지막 메모를 고정하는 자석의 탁 소리와 동시에. 멈춘 기계에서 플라스크를 꺼내 내용물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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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느낌?

저어는 짧게 호흡을 끊거나 서술어를 앞에 제시하는 편이예요오. 문장의 서순을 반대로 두면 더 이미지의 표현력이 선명해질 때도 있거든요. 나머지는 쉼표로 페이스 조절하는 편이에오. 


원리가 뭘까요?


뇌의 매커니즘이에요!!


원래 문장의 순서대로 단어들을 인식한다면


화이트보드->적었다->메모->자석 순으로 인식하게 되어요.


화이트보드에 메모를 적었는데 갑자기 자석이 나오네? 


하고 해석할 여지가 생겨버리는 거예요.

이걸 막고자 저는 처음부터 자석을 붙이는 식으로 시작해 봤어요.


윙윙거리는 모터음도 마찬가지예요. 윙윙거리는 물건은 수도 없이 많고 그갈 상상한 이후 그 정체가 모터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모터를 상상하면 바로 윙윙댈 거라는 직감이 와요. 그래서 윙윙거리는 모터 소리. 라고 안하고 모터의 윙윙댐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의미가 모호한, 포괄적인, 추상적인 단어 -> 의미가 정확한, 구체적인, 직접적인 단어 순으로 문장을 구성하면 생각을 해야만 문장의 의미를 잘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피곤해져요.


즉 의미가 정확한, 구체적인, 직접적인 단어 -> 의미가 모호한, 포괄적인, 추상적인 단어 순으로 구성하는 것이 미묘하게도 더 잘 읽혀요.


추상적인 단어와 연관된 구체적인 단어를 떠올리는 것보단 구체적인 단어를 떠올린 뒤 그 느낌을 추상적인 단어로 재해석하는 것을 우리 뇌는 훨씬 편안해 해요.


예시를 들어 볼까요.


투명질의 액체 속에, 휘황찬란히 등무늬를 나풀대며, 금붕어는 지나간다. 


vs.


투명질의 액체 속에, 금붕어가 지나간다. 등무늬는 휘황찬란히 나풀거린다.


문장의 정보 전달 서순을 바꾸거나 끊어내는 것으로 이렇게 미묘한 차이가 난다는 것이에요.


문장이 길어진다는 것은 생각이 그만큼 구체적이라는 거예요. 절대 자책할 필요 없어요. 정보 전달 서순을 바꾸거나 문장을 적당히 끊어서 가독성을 확보해 보아요.


물론, 예술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문체는 단순히 취향에 불과하고 뭐가 더 잘 썼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분명 뇌 비우고 봐도 잘 읽히는 글과, 열씨미 읽어도 의미 파악이 힘든 글은 분명히 있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