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작가는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 石川啄木(1886-1912)이다.

본명은 이시카와 하지메 石川一


1886년 2월 20일 이와테현 조코지 주지의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스스로 중학교를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겠다’라는 치기 어린 일념에 냅다 도쿄로 상경한다.


다만 중학교 중퇴라는 초라한 학력의 그를 받아주는 곳은 잘 없었고, 그는 결국 각종 문예지의 편집자, 출판사 교정자, 지방 소학교의 대리교사 등을 전전한다.


보수가 넉넉지도 않을 터인데, 이시카와는 자신의 생래적인 낭비벽으로 재산을 헤프게 쓰고, 여러 벗들에게 빚을 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유흥가 창기들과 어울려 놀거나, 충동구매를 하거나 하는 등 그야말로 방탕한 삶을 살았다.


본인의 모난 모습, 회한과 씁쓸함, 무시받는 가인(歌人)의 삶…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보잘것없어 보일지언정 아름다움을 감춘 것들을 시로 풀어낸다.


그의 글재주는 일본의 정형시, 단카(短歌)를 짓는 데에 있었다.


단카란 일본 고유의 시가문학의 일종으로, 5행 5·7·5·7·7조의 정형화된 음보를 갖춘 시이다.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기존 단카의 5행 구조를 3행 구조로 바꾸어 쓰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자신만의 형식을 창조하기도 하였다.


당시 고위층 귀족들의 놀이 정도로 치부되던 단카를 대중적으로 전파하고 고답한 답습에서 벗어나 현실을 자유롭게 서술하는 단카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일본의 국민시인으로 추대되기까지 한다.


느지막이 세상은 그를 떠받들며 인정하였지만, 이시카와의 삶은 전혀 순탄치 않았다.


찢어질 듯한 가난으로도 모자라 본인과 가족 모두가 병에 걸린다. 1911년 1월 이시카와는 결핵성 만성복막염으로 수술을 받고, 그해 12월 어머니와 아내가 결핵에 걸린다.


<지저분한 손을 보네ㅡ

마치 꼭

요즘을 사는 나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는 듯하다>


<최근 사오 년

하늘을 올려 보는 일이라고는 한 번도 없었노라

이럴 수도 있는가?>


<“이시카와는 가여운 녀석이다.”

가끔 이렇게 스스로 말하면서

슬픔을 느껴본다>


이시카와의 단카 3수(首)를 통해 뼈저린

그의 마음을 시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결국 1912년 4월 13일에

폐결핵으로 요절한다.


그의 아내 세츠코는 그가 죽은 지 1년 후에 폐결핵으로

사망, 세 명 있는 자식들도 차례차례, 고작 나이 스물 다섯을 넘기지 못하고 전부 요절해 버린다. 안타까움조차 넘어서는 가정이다.


***



이시카와 다쿠보쿠를 존경했던 조선의 국민시인이 있다.

바로 백석(白石)이다.

필명의 석(石) 자는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이시(石)에서 따온 것이다.


***


백석이 사랑했던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정형시, 단카(短歌).


5·7·5·7·7조의 음보를 유념하며, 그의 단카 몇 가지를 살펴보자.


동쪽 바다의 조그만 섬 바닷가 백사장에서

나 울다 젖은 채로

게와 어울려 노네


뺨에 흐르는

눈물 닦지 않은 채

한 줌의 모래 움켜쥐어 보이던 사람 잊지 못하네


드넓은 바다 나 홀로 마주하고

이레 여드레

실컷 울어보고자 집을 뛰쳐나왔다


***


장난 삼아서 엄마를 업어 보고

그 너무나도 가벼움에 울다가

세 걸음도 못 걷네


***


이유도 없이 기차에 타고 싶다 생각했을 뿐

기차를 내렸더니

갈 수 있는 곳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