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에 앉아서 컴퓨터를 만지작 거린다.

구석이란 중앙의 반대이다. 이는 시류에 거스름을, 즉 메인스트림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의 대류에 속해 있는가?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 

적어도 나는 아니다, 나는 사회적인 명성도, 돈도, 친우도 없다.

그러나 우리네들에겐 거의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단 하나의 지음이 있는데, 이것은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우울이나 고독과 다르다. 이는 물과 기름같은 존재로써, 얼핏 섞이나 조용히 바라보면 아닌 것이다.

고독은 스스로에게 가하는 것이다, 가해자로써 스스로를 고독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이는 자의적인 것으로 

결코 괴롭지 않은 행위다,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혹은 여러분들이 느끼는 이 고독감은 무엇인가?

나는 이것이 외로움이라 생각한다.

외로움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대들을 외롭게 하는가? 

그것은 깨달음에서 온다. 안다는 것은 고통이다.

자신이 혼자라는 깨달음, 세상에 태어나졌다는 고통과 공포, 사람은 살면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운다.

이는 고통스러운 길이다, 고행자의 길이다. 가시밭길이로다.

모든 행위의 언어화는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준다.

피상적인 마음들을 하나하나 언어화 시켜보라. 의문을 가지고 사색해보라.

나는 왜 외로운 것인가?

"나는, 절대적인 나의 편이 필요하였으나, 세상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부모로써의 의무로 사랑을 바랬으나, 세상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이 피해자로써 세상을 원망했으나, 세상은 본디 그러했다." 


가해자는 없었다. 피해자만 있었을 뿐.

한 순간의 깨달음

한 마디의 문장들.


안다는 것은 고통이다.


마지막으로, 고통을 사랑하기 위한 기도를 하나 남기고 가겠다.


<고통을 사랑하기 위한 기도> -프란시스 잠-

내게는 고통밖에 없습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고통은 내게 충실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내 영혼이 심연의 바닥을 헤멜 때에도.

고통은 늘 곁에 앉아 나를 지켜주었으니

어떻게 고통을 원망하겠습니까.

아 고통이여, 너는 결코 내게서 떠나지 않겠기에 나는 마침내 너를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이제 너를 알겠다. 너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것을.

너는 가난한 내 마음의 화롯가를 결코 떠나지 않았던 사람을 닮았다.

나의 고통이여, 너는 더없이 사랑하는 여인보다 다정하다.

나는 알고 있나니 내가 죽음의 자리에 드는 날에도

너는 내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와

나와 함께 가지런히 누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