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태어난 아이는 빈 종이다.

이 종이는 너무나 작고 연약해서, 자기 자신말고는 그려나갈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에게는 너와 나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부처의 경지다.

하지만 아이는 좁디 좁은 종이에 여러것을 그려넣다가, 이윽고 뒤엉켜버린 다음. 크기를 키운다.

'나' 밖에 존재하지 않던 세상에 처음으로 다른 무엇인가가 들어 온 것이다.

순결한 세계에서의 첫 진입은, 거친 속세의 탁류에 휩싸이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는 이제 인간이 되어버린다.

어린 아이때 잃어버린 이 순수는 기억되지는 않으나 영혼에 남기 때문에, 종종 어린아이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이다.

목적성을 잃어버린 갈망이나, 이 그리움은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이제 평범해진 아이는, 성장한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것을 알아가며 기억한다.

아이는 이제 태양을 배우고, 달을 배우고, 별을 배웠다. 

그리고 상실을 배우고, 외로움을 배우고, 고통을 배웠다.

안다는 것은 고통이다.

아이는 별로 알고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알고싶다고 말을 하여도 이것이 본인이 원하는 것인지, 부모가 은연중에 바랬기때문에

그러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아이는 더 많은 것을 그려넣기 위해 점점 종이를 키운다. 

더 좋은 대학에, 더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서 점점 더 종이를 키우고 채워나가다가


문득,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그제서야 부랴부랴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찾으려 애쓰는 것이다.

그것을 무엇으로 불러야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것'의 명칭에 대해 많은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나는 '이것'을 

감히 외로움이라 명명하겠다." )


외로움은 결말이자 과정이다. 

어느날 문득 깨닫고, 헤매다가 길을 잃고 울면서 제자리로 돌아와서야 알게되는 것이다. 

나는 순수를 그리워 했었구나. 하고 말이다.

내가 채우려 했던 것들은 사실 가치가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종이는 비워진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공허


빈 허공속에서는 너와 내가 없었다. 

비워진채로 완성되어 있던 것을 끄집어내 강제로 무엇인가를 쑤셔박아 넣어버렸다.

나는 내 순수를 강간했다.

더러운 속세의 흙발로 짓뭉게면서 무시했다.

비로소 나는, 나 스스로가 가득 채워진 종이를 내려놓으며 사과한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내가 흩뿌려놓은 정액으로 뒤덮힌채 부서져있는 나의 순수에게. 


나는 자기만족의 사과를 연신 넋두리 한다.


하지만 너는 이제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는구나. 


"다들 그렇게 어른이 된다."


그렇게 말해오는 것은 나 자신인가, 말 없는 순수인가.

오늘도 외로움은 깊어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