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인근 거란군 막사.


황제와 거란군의 최고위관급 지휘관들이 모여 있는 이 막사에는 좋은 술과 고기가 놓여 있었음에도 그 누구 하나 그것을 들지 못했다.


"....."


황제인 야율융서가 굳은 표정으로 술만을 들이키니, 아무래도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초기에 점령하여 유일한 보급 기지로 삼았던 곽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이래, 고려의 주력군을 패퇴시키고 대도수의 동북면 군을 궤멸시키며 숭승장구하여 좋았던 초기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어졌다.


"...가만히 있지 말고, 다들 이야기를 해 보시오. 이제 어찌해야겠소?"


""......""


그러나 그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황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음식이 담겨 있는 그릇을 뒤엎었다.


캉그랑-


그릇이 뒤집어지며 음식이 막사 바닥에 떨어지고, 그릇도 돌아가며 핑그르르 하는 소리를 내고, 시끄러운 금속음을 내며 바닥에 멈추었다.


그러자 거란 장수들은 움찔거리며 고개를 더 숙였고, 그 모습을 본 황제는 드디어 분노가 폭발해 노호성을 질렀다.


"어찌 말들이 없소? 짐이 어찌해야겠냐 묻지 않았소?! 그런데 누구도 벙어리마냥 대답을 하지 않는구려, 짐이 정녕 이런 벙어리들을 믿고 전쟁을 했단 말이오!"


그러나 여전히 장수들이 감히 입을 열지 못하자, 황제는 결국 한 명을 짚어 말을 하도록 했다.


"도통(소배압)! 경이 이야기해 보시오, 어찌해야겠소?"


소배압은 얼굴 표정이 굳었지만 이내 그것을 숨기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이 생각하기로는, 이만 군사를 돌리고 회군함이 상책인 듯 하옵니다."


"무엇이?"


"폐하, 아군은 곽주 한 곳만을 의지하여 보급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런데 곽주가 함락되었다면, 더 이상 보급로를 유지할 수 없어 군사들이 먹을 군량미를 보급할 수 없사옵니다.


지금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입니다.


또한, 성을 함락시키는 데에는 적어도 다섯 배의 병력이 필요하옵니다. 헌데 이렇게 성이 빨리 함락된 것이라면, 적어도 적군의 수가 10배는 되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곽주가 빨리 함락되었다는 것은, 필시 적이 군대를 정비하였음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후방의 고려군이 아군이 서경에 묶여 있음을 안다면 서경으로 내려와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하오니, 우선 철군하시고 삼한을 정벌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심이..."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요!"


소배압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황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를 질러 그의 말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철군? 이따위 작은 나라를 이기지 못하고 철수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짐의 체면이 어찌 되겠소!


짐이 처음으로 임하는 친정이오, 그런데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이 작은 나라를 이기지 못하고 철군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다 알리란 말이오?


당항(탕구트, 후일 서하)과 여진을 비롯한 제후들이 짐을, 이 거란을 어찌 보겠소!"


"하오나 폐하.."


"듣기 싫소! 철군이니 무엇이니 할 것이라면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오."


소배압과 황제의 대화가 그렇게 마무리되자, 눈치를 보던 선봉(先鋒) 야율분노가 슬쩍 끼어들었다.


"폐하, 송구하오나 신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나이까?"


"선봉? 말해 보시오."


"예, 폐하.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차라리 개경으로 들이치는 것이 옳다 사료되옵니다."


"차라리 개경으로 들이치자?"


"그러하옵니다, 어차피 곽주가 함락된 이상, 방도는 두 가지이온데, 하나는 서둘러 군사를 물려 철군하는 것, 또 하나는 하루바삐 개경을 함락하여 고려 국왕을 잡는 것입니다. 또한 폐하께서도 철군을 원치 아니하시니, 방도는 오로지 이것 하나뿐입니다."


그러고서 야율분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도통께서 말씀하신 대로 고려군이 곽주를 이렇게 빠르게 탈환할 정도로 전열을 정비했다면, 이미 철군로에 매복을 시켜 놓았을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철군조차 어려워지니, 차라리 고려의 왕을 붙잡아 고려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만 못합니다."


야율분노가 말을 마치자, 이번엔 야율적로가 야율분노를 지원해 주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또한 한달 후에는 야루드 강(압록강)이 녹을 것이니,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서둘러 고려 국왕을 잡아야 하옵니다. 청컨대, 서경의 공략은 포기하고 군사를 움직여 개경으로 진군케 하소서."


황제가 흡족한 듯이 웃었고, 그것을 본 소배압은 다급한 듯 말했다.


"폐하! 남방으로 진군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옵니다, 설령 개경을 함락시킨다 하여도, 고려 국왕이 남쪽으로 도망쳐 군대를 모아 반격한다면, 그땐 어찌하시고자 하십니까? 청컨대, 다시 생각하여 주시옵소서!"


"도통, 그만하시오."


"또한 서경을 포기하는 것은 더더욱 위험하옵니다. 곽주가 함락된 상황에서 거점도 없이 진군하고자 하시옵니까? 정 남쪽으로 진격하고자 하신다면, 차라리 서경을 먼저 함락하시고 나서 진격 하소서!"


황제가 소배압을 죽일 듯이 노려보자, 야율분노가 서둘러 총대를 메며 말을 꺼냈다.


"도통께서 하신 말도 일리가 있으나, 서경에 발이 묶여 우리 군의 뒤를 고려군이  공격한다면 그것이 더 큰 재앙이 될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곽주를 잃은 마당에 거점도 없이 진군한다는 것도 상책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상황이 급하다 해도, 우선 거점을 만들고 나서 진군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도통, 어차피 속전속결이라면 차라리 모두 끌고 가서 한 번에 끝내는 게 옳습니다.


식량이 부족하긴 하나, 타초곡기(거란군의 약탈을 담당하는 부대)를 이용해 식량을 빼 온다면 어느 정도 충당할 수는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도통,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철군한다면, 황제 폐하의 체면이 바닥에 떨어질 것입니다. 도통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


더 이상 반박할 수 없는 무적의 말이 나오자, 소배압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간신히 수긍했다.


"..알았네."


이렇게 반대자조차 결국 그 의견을 꺾으니, 더 이상 철군을 주장하며 남진에 반대하는 자들은 나서지조차 못했다.


총지휘관이 도통조차 결국 수락했는데, 그보다 지위도 낮은 장수들이 무어라 말을 하겠는가?


"좋소, 그럼 모두 남진에 찬성한 것으로 알겠소."


황제는 일그러진 얼굴을 다시 피고서는, 갑옷을 고쳐 입고 말했다.


"전군은 속히 개경으로 진군할 준비를 하시오! 속히 개경을 함락하고, 고려 국왕을 잡아야 할 것이오!"


황제의 명령이 떨어지자, 장수들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합창했다.


""""예, 폐하!"""""



솔직히 내가 필력이 병신이긴 해도 궐안전쟁같이 고증이고 원작이고 다 씹고 지좆대로는 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