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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초기, 수백 대의 탱크와 APC로 구성된 러시아 기갑 부대가 파괴와 죽음의 흔적을 남기고 평화로운 거리로 돌진했다. 그러나 이 행렬은 많은 경우 며칠, 심지어 몇 시간 내에 초토화되고 버려지는 운명을 맞았다. 숙련된 기동을 통해 빠른 승리를 거두지 못해 사상자가 늘어나고 초기 전략 목표가 성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러시아군은 광범위한 포병과 공습을 통해 포위와 파괴에 초점을 맞춰 방식을 재고해야만 했다.




내가 방금 설명한 것은 우크라이나 얘기가 아니라, 1994년부터 1995년까지의 새해 전야에 그로즈니 전투에서 일어난 사건을 설명한 것이다.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가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간 이후에도 1996년에 전쟁은 카사부르트 협정에 서명하여 끝났고, 이는 (이치케리야)체첸 공화국에 사실상의 독립을 허용했다. 3년 만에 재무장하고 재조직된 러시아군은 1999년에 다시 체첸을 침공했다. 이번에 이들의 방식은 점령으로 이어졌고, 충성스러운 군벌(카디로프)을 임명시키고 승격시켰다.




체첸 민족은 치열한 저항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대량 처형과 고문의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20년이 빨리 지나간 지금, 현재 카디로비치라고 불리는 그들 일부는 과거 러시아의 침략을 연상시키는 우크라이나에서의 행동에 연루돼있다. 크림 반도, 도네츠크, 루한스크 지역 출1신의 우크라이나인들도 비슷한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 불과 8년 만에 징병된 우크라이나인으로 구성된 새로운 군대가 등장, 이웃, 친척, 옛 친구를 침공할 준비를 마쳤다.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의 일부를 포함, 최근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도 비슷한 운명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마리우폴이 완전히 파괴된 후 러시아인들이 최초로 건설한 대규모 건물 중 하나는 학령기 아동을 위한 군사 기숙학교로, 러시아군과 법 집행기관을 위한 간부 예비인력을 신규양성하기 위한 노력이다.




...체첸의 사례를 숙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복된 국가는 단순히 경제적 속국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많은 경우 소수 민족이 높은 사상률을 치르게 되는 러시아군에 사람을 댄다. 크세르크세스의 페르시아군이 그리스인들을 정복하기 위해 신민들을 징집했던 역사적 사례와 유사한 이 패턴은, 역사적 허구가 아니다.



번역출처: https://m.dcinside.com/board/war/3848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