尊敬の心を込めて


0.


인류의 외우주 진출 이후, 격동을 예상했던 우리의 삶은 의외로 큰 변화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르테미스 계획의 성공과 화성 개척, 이어지는 세이건 미션에서의 유인 외우주 탐사는 몇몇 기업들이 이익을 독식하는 결과만을 낳았을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발견된 우주괴수의 사체는 나름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지만, 결국은 피상적인 위협으로 그쳤고.


아직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찾아온 먼 재앙.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당장의 삶에 급급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그저 다른 세상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크게 다를 것이 없어서, 그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삶을 이어갔다.


적당히 지잡대에 진학하여 군대를 갔다오고, 졸업한 뒤에는 일용직을 전전하는.


그런 비루한 삶을 말이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내게도 한때는 국제연합 우주군 장교라는 원대한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적잖이 노력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가졌던 그 꿈이 과연 실현 가능한 미래였는지, 아니면 단순한 허상이었는지 지금의 나로선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 때는 그런 꿈이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었고, 별 볼일 없는 내 삶에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해 줬었다.


그리고 그 꿈의 중심에는 한 사람.


단 한 사람의 젊은 장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국제연합 우주군 대위 이찬우'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때 그 사람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떠오르곤 한다.


어린 시절 내가 아버지를 잃고 방황할 때, 그 사람은 내게 꿈을 선물해 주었다.


내 주제에 무슨 그런 높은 꿈을 꾸냐며 하나 남은 가족마저 등을 돌릴 때, 그 사람은 내가 그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도록 응원해 주었다.


내가 하나씩 꿈을 향한 작은 목표들을 달성해 나갈 때, 그 사람은 이미 나와 함께 설 자리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언젠가 함께 끝없는 별의 바다를 항해하는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끝에 내가 선택했던 것은 다시 익숙한 무기력함에 취해 주저앉는 것이었다.


그 때는 그게 정답인줄 알았으니까.


'전 그냥 지잡대 나와서 해외취업 하기로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자기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고 도망치듯 선택한 목표를, 진정으로 이룰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사관학교 출신들이 다 해먹는데 뭐하러 거기서 인생을 낭비해요.'


그러나 그 때의 나는 그저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해서는 안될 말까지 입에 담고 말았다. 


'애초에 바깥에서 할일 없는 것들끼리 남은 밥그릇 갖고 싸움질 하는 직업이잖아요.'


나보다도 훨씬 열악했던 환경에서 끝끝내 그 꿈을 이루어낸 사람의 인생을 폄하했던 것이다.


'자신의 미래는 자기 손으로 직접 선택하는 거야.'


하지만 그 사람은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것이 네 결정이라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렴.'


아니, 오히려 그런 나의 거짓된 앞날마저 응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 때 나를 욕했더라면 그나마 마음이 편했을 텐데.


자신의 초라한 자아를 숨길 일말의 여지조차 없는 상황에서 마주해야 됐던 현실은 한없이 냉혹하기만 했다.


턱걸이로 입학했던 지잡대는 취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억지로 끌려갔던 군대에서도 시간낭비 이상의 의미를 얻지는 못했다.


졸업 이후에는 지방 중소도시 원룸촌에 기거하며 택배 상하차 따위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을 이어갔고.


그렇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삶을 억지로 연명하던 도중, 이변은 찾아왔다.


'올드린 함대, 1년 전 오르트 구름 외곽 항행 도중 항성 플레어 직격.'

'구축함 존 폴 존스 대파. 현재 사상자 집계 중.'


그것은 7년 전, 태양계로 접근 중인 우주괴수 군집을 격퇴하기 위해 지구를 떠났던 올드린 함대의 소식이었다.


1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온 그 충격적인 소식에 전 세계의 언론에선 연일 보도를 이어나갔다.


불과 5년 전에 무사히 힐스 구름을 벗어난 최초의 유인 외우주 전투 함대라고 대서특필 했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을 것이다.


뭐, 그들에겐 불행한 사고였겠지만, 솔직히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세간에서 인류의 명운을 건 전쟁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어봤자, 당장의 삶을 걱정해야 되는 내 입장에선 아무래도 좋을 따름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마음 속 한 구석에서 피어오르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Cpt. ChanWoo Lee - Killing in Action'


하지만 그런 내 노력을 비웃듯, 현실은 일말의 여지 없이 비극을 고했다.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그저 무미건조한 텍스트로 나열되었을 뿐인 죽음.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제 나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사람의 죽음이었다.


오히려 이제와서 자신이 배신했던 사람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다면, 그것 자체가 변명의 여지 없는 위선일 터였다.


순직 당시 그 사람의 직책은 구축함 존 폴 존스의 갑판사관이었다.


내가 어릴 적 꿈을 져버리고 무의미한 삶을 연명하는 동안, 그 사람은 보다 높은 뜻을 품고 보다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영달을 위한 길이 아닌, 우리들 인류의 미래를 생각했기에 내릴 수 있었던 선택이기도 했다.


결국, 그 때 도망치듯 선택했던 거짓된 꿈도 그 사람의 비호와 희생이 있었기에 좇을 수 있었던 셈이었다.


하지만 그 거짓된 꿈조차 이루지 못한 내가 진실된 애도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겠지.


그래서 그 때 두 뺨을 타고 흘렀던 눈물은 마치 변명과도 같아서, 나는 그것을 감추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최악의 방식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후린 변절자.


그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에 나는 그렇게 기억될 것이 뻔했으니까.


'제 37기 국제연합 우주군 사관후보생 모집요강.'


그렇게 변명이나 다름없는 눈물을 흘린 끝에 문득 든 생각은 속죄였다.


이미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이제 남은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 뿐이라는 강박이 들었으니 말이다.


"나이가 좀 있으신데……, 지원 동기를 알 수 있을까요?"


물론 옛적에 버렸던 그 꿈을 다시 좇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당장 한 사람이 아쉬웠던 상황에서도 날 상대하던 면접관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으니 말 다했지.


"존경하는 사람이 올드린 함대 소속입니다."


그래도 이젠 더 이상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제 제 나이가 그 사람과 같아지는데, 저도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포기와 소극적인 선택은 절대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면 그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제가 뒤늦게라도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기회를 주십시오."


그것이 내가 그 사람에게 속죄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길이었으니까.




1.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계절이 세 번 바뀌고 임관식과 초군반을 턱걸이로 마친 나는 태양계를 떠나는 제 31기동전단에 배치되었다.


제한적인 천광속 항행이 가능한 주력함 1척을 중심으로 각종 수반함 10여 척이 따라붙는 전형적인 구성의 기동전단.


올드린 함대와 같은 대규모 원정함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태양계 외곽 항로의 방위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전력이었다.

 

그 31기동전단의 선봉에서 경계 및 수색 임무를 맡은 313 호위함 전대 소속 UNSS 모닝턴이 내가 몸을 실은 배였다.


지구를 떠난 지도 어언 반년.


세드나의 궤도권에서 스윙 바이와 함께 5번째 가속을 마친 우리 함선은 시속 6.8 천문단위의 속도로 순항 중이었다.


우주괴수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그들의 모성인 세이건 581과 태양계 사이의 공역 확보는 모성 공략에 버금가는 문제로 떠올랐다.


여기서 국제연합 우주군 총사령부가 내놓은 전략은 다름아닌 분산된 위협.


원정함대와 같이 한 곳에 대규모 전력을 집중시키기보단 적당한 규모의 전단을 여럿 편성해,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즉응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시간벌이조차 안되는 전력으로 무슨 즉응성을 가진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뭐, 한낯 호위함 사격통제관인 내가 무어라 평가할 만한 사안은 아니겠지.


기세 좋게 오랜 꿈을 좇아 우주군 장교가 된 것 까지는 좋았지만, 군 내에서 OCS를 턱걸이로 나온 중고 신입의 위치는 빈 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나마 통합군 복무 시절 주특기가 가산점 대상이었던 덕분에 3급함 사통관 자리라도 따낼 수 있었던 거였고.


물론 3급함이라곤 해도 모닝턴 자체는 별로 흠 잡을 데가 없는 물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통합 지능형 사격통제 시스템이니 초 반응형 적외선 센서니 적응형 고출력 위상배열 레이더니 하는 고가의 체계를 아낌없이 발라뒀다.


최소한 동 체급의 우주괴수 5개체에 대응할 수 있는 성능.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것도 함내 인원들이 제몫을 해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구멍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지만.


"사통관, 뭘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나."

"필승! 근무 중 이상-"

"됐어. 편히 있게."


문제는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다 지금 당장 함장님께 안좋은 인상을 남기게 될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함장님은 나를 제외하면 함 내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내게 더욱 엄격한 사람이었다.


아마도 같은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누구 편의를 더 봐준다는 식의 구설수로 사기를 깎아먹지 않기 위함이겠지.


가뜩이나 1급함인 주력함은 물론 2급함인 순양함이나 구축함보다도 인원이 적은 3급함이다.


한 번 안좋은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번지는 환경.


더군다나 같은 OCS 출신이라 더욱 그런 얘기가 나오기 좋은 상황이었다.


"그 나이에 군생활 다시 하는 게 힘든 일이긴 하지."

"아닙니-"

"그런데 적어도 티는 내지 말게."


내 말을 자르며 그렇게 직언한 함장님의 얼굴은 한없이 무표정할 뿐이었다.


출항 이후부터 줄곧 들어왔던 말이었지만, 나도 어지간히 표정 관리가 안되는 모양이다.


"대답은?"

"예, 알겠습니다."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대답은 들은 뒤에야, 함장님은 함교 좌측 구석의 함장석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뒤에는 뭐, 당직 근무를 마친 부장을 내려보낸다던가, 견시 보고를 듣는 등의 업무를 보기 시작했고.


나는 나대로 미션 컴퓨터의 화면을 쳐다보는 것에 집중했다.


'현재 공역 내 확인 가능한 적 활동 징후 없음.'


모닝턴에 탑재된 통합 지능형 사격통제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인원으로도 통제가 가능한 편이성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시스템과 실시간으로 연동된 미션 컴퓨터는 수평으로 배열된 3개의 32인치 반투명 디스플레이에 각종 정보를 시현해주고 있었다.


레이더의 주파수는 물론 방사 간격, 획득된 표적의 RCS값, 상호 거리, 위험도, 이에 대응 가능한 함내 무장까지.


메뉴얼만 제대로 숙지하면 앉은 자리에서 버튼 몇 개 누르는 것으로 대부분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메뉴얼을 제대로 숙지한다면 말이다.


그게 잘 안돼서 출항한지 반년이 넘도록 PQS 하나 통과를 못하고 함장님 속이나 썩이는 상황이었지만.


다음 수시 평가에서도 합격점을 넘지 못하면 이번에는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 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3방향 4500 천문단위 내 이상 열원 접근 확인.'


또 그런 답도 안나오는 걱정을 하던 와중, 미션 컴퓨터의 2번 화면에 새빨간 경고 문구가 큼직하게 출력됐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미션 컴퓨터의 화면에는 시스템에서 처리한 교전에 최적화된 정보를 실시간으로 띄워준다.


당연히 그 정보에는 앞서 설명했던 레이더와 각종 센서들이 짧게는 0.1초에서 길게는 수십일씩 수집하는 데이터도 포함된다.


4500 천문단위면 약 26광일.


저것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라고 가정해도 접촉까지 최소 26일은 걸린다.


초장거리라는 수식어조차 초라해지고 교전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거리.


가스 혜성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잠시 들었지만, 시스템이 그거 하나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을 리가 없겠지.


"표적 예상 경로 띄우겠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조금 이르더라도 대응 절차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전체적인 상황 판단 및 교전 결심은 함장님께서 하실 테니 나는 제 시간에 화면만 띄우면 그만이었고.


"확대해봐."

"최대 배율로 당기겠습니다."


함장님의 지시대로 센서의 한계 배율까지 표적을 확대하자, 함교 중앙의 대형 스크린에 비춰졌던 표적의 윤곽이 흐릿해지며 한층 그 크기를 키웠다.


좁쌀만 하게 보이던 것이 농구공만 해졌으니, 확실히 비싼 장비가 돈값은 하는 편이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 -72'


그 표적의 정체를 알리는 함수의 번호가 72였다는 것이었다.


앞부분이 조금 뜯겨져 나가긴 했어도 숫자의 간격이나 함체의 형상을 고려하면 함종을 특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관."


무엇보다 우주괴수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 국제연합 우주군 소속으로 취역한 함선들 중 72를 가진 배는 단 한 척.


3년 전, 항성 플레어 직격으로 대파되어 끝내 폐함 처리된……,


구축함 존 폴 존스였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사고가 정지되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못다 정리한 감정의 응어리가  뒤늦게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변명과 위선으로 얼룩졌다곤 해도 이젠 더 이상 흘릴 눈물은 남아있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내 안에서 그 사람의 존재는 거대했던 모양이다.


"사통관."


9년이 아닌 2년 하고도 6개월.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 사람이 살아 숨쉬었던 때와 가장 근접한 시간축에 존재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미 너무 늦었지만 뒤늦게라도 그 사람에게 다가서고 싶었고, 그 사람이 가졌던 신념을 이해하고자 했으니까.


그 마음만큼은 진심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비록 나같은 변절자가 진실로 그 신념에 닿는 것은 평생 불가능하겠지만, 그 편린이나마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했다는 변명 정도는 하고 싶었다.


설령 그 변명을 들어줄 사람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여기 이렇게 당신과 함께 걸었던 지난날의 초상에 헌화하기 위해 달려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찾아오게 되니 옛날에 정리가 끝났다고 여겼던 감정들이 다시 고개를 들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사통관! 뭐하나?! 정신차려!"

"소위! 김원재!"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함장님의 일갈을 듣고 난 이후였다.


"관등성명이 아니라 보고를 해야 할 거 아냐?!"

"표적.., 현재 접근 중인 표적, 폐함 처리된 아군 DDG 존 폴 존스, 8방향 4500 천문단위 지점에서 아함 서편으로 접근중!"


장교의 자질을 따지는 것 이전에 전혀 군인답지 못한, 내용도 순서도 엉망인 보고.


함장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고, 주위에선 다른 장교와 부사관들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그나마 위안거리를 찾자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으니 이번 PQS를 말아먹어도 쪽팔릴 일은 없다는 것 정도일까.


아무래도 나는 군복 오래 입을 팔자는 아닌 모양이다.


"……됐네. 그만 들어가서 쉬게."

"죄송합니다."


내 대답에 함장님은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어서 나가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무래도 함장님께선 내가 정상적인 직무 수행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듯 했다.


뭐, 그렇게 여겨져도 이상할 건 없었다.


안 그래도 일 못하는 놈이 정신 상태마저 정상이 아닌데, 지휘관 입장에선 다소 업무 부담이 늘더라도 당장 치워버리고 싶겠지.


그 바람대로 함교 바로 아래의 사관실에 쳐박혀 시간을 확인하니, 일과 시작 이후 겨우 3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지금 이런 내 모습을 그 사람이 본다면 과연 뭐라고 생각할까.


그 사람에게 속죄하고 조금이라도 나 자신에게 떳떳해지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상을 좇는 마음가짐 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굳을대로 굳어버린 머리를 억지로 굴려가며 어떻게든 여기까지 달려왔건만, 현실은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폐급 장교 하나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알림. 소위 김원재는 지금 즉시 함장실로 이동할 것. 이상 작전관."]


그런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상념에 빠진 것도 잠시, 무미건조한 어투의 함내 방송이 귓전을 때렸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함장님의 직접적인 호출.


뭐, 오늘 있었던 일의 중대함을 생각하면 함장님께서 그걸 그냥 넘길 리가 없겠지.


오히려 걱정보단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앞섰다.


사람이 잘못을 했으면 징계를 받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니 말이다.


다만 함장실로 향하는 동안 마주친 장교와 부사관들의 모멸 섞인 시선을 받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었다.


한번 폐쇄적인 집단에서 낙인이 찍히면 어지간해선 쓰레기 취급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함장님도 별로 다를 것이 없어서, 내가 함장실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마치 사람이 아닌 무언가를 쳐다보는 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 왜 그랬나."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함장님은 역시 시작부터 본론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왜 그랬냐고 물어도 사실대로 전부 털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서 내 개인적인 얘기를 풀어놓는다 해도 죽은 사람 팔아서 싸구려 동정심이나 얻으려는 쓰레기 취급 받을 것이 뻔할테니 말이다.


"잘 못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모른척 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사실을 밝혔다가 그 의지를 부정당한다면 정말로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었으니까.


"잘 못 듣고 자시고 할 게 아니라, 오늘 무슨 날인가?"


하지만 함장님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어라 거짓을 둘러댈 여지를 주지 않는 단호한 눈빛.


사실을 고하기 전까진 순순히 돌려보내 줄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래, 이 사람한테 뭘 숨겨봤자 좋을 것 하나 없겠지.


"……정말 존경하던 사람이 존 폴 존스에 타고 있었습니다."


계속 하라는 함장님의 턱짓에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을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오느라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고 있었던 일들.


이젠 영원히 속죄를 할 수도 약속을 지킬 수도 없게 된 흉터자국과도 같은 과거.


국제연합 우주군 OCS 10기 출신 이찬우 대위와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래, 그 사람 기수하고 계급,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 

"OCS 10기, 대위 이찬우입니다."


함장님의 물음에 나는 턱밑까지 올라온 감정의 응어리를 가까스로 집어삼키며 그렇게 답했다.


아직도 그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이 이렇게 괴로울 줄이야…….


조금은 나 자신에게 떳떳해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찬우가 골칫덩이를 하나 남기고 갔네."


내가 모든 이야기를 마쳤을 때, 함장님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무어라 감상을 읊조렸다.


"잘 못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네. 얘기 끝났으면 그만 들어가서 쉬게."


그것이 못내 신경이 쓰여서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알고 싶었지만, 미간을 짓누르던 함장님은 어서 나가보라는듯 손을 내저을 뿐이었다.


마음같아선 조금 강하게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 그 의문을 해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낱 폐급 장교에 지나지 않는 내게 그럴 자격 따윈 없겠지.


"……알겠습니다. 필승."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졌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본도 못하는 주제에 값싼 감정에 호소하는 쓰레기 취급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일 텐데.


건성으로 경례를 받아주는 함장님을 뒤로 하며, 나는 그런 뒤늦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


["실전. 총원 전투 배치."]


머리를 울리는 익숙한 경보음과 함께 다급한 방송이 귓전을 때린다.


잠기운을 날려버리기 위해 침대칸 모서리에 머리를 두어번 부딪히니 조금은 정신이 맑아졌다.


"전투 배치! 전투 배치!"


상황 전파를 위한 복명복창을 끝낸 나는 자기 전 미리 걸쳐 뒀던 근무복을 여미며 전투정보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함장님은 내색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날 향한 함장님의 태도는 누그러져 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것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빈말로라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단 하나.


함장님과 그 사람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더욱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시스템 전원 확인, 무장 연결 상태 확인, 탄도값 설정, 표적 예상 기동 범위 표정…"


함교의 전투정보실로 달려가는 동안, 나는 콘솔 앞에 앉아서 해야 할 일들을 끊임없이 되내었다.


모든 교전이 빛의 속도를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우주에선 순간의 판단이 생사를 가른다.


일단 콘솔 앞에 앉아서 어떻게든 하겠다는 식의 안일한 판단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전투정보실 사격관제소 소위 김원재 전투 배치 끝!"


사격통제 컴퓨터의 콘솔 앞에 앉는 대로 함교 내의 인원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전투 배치 보고를 올린다.


이미 전투정보실 내에는 부장님을 포함한 함교 인원 대부분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을 보면, 이젠 구보 속도까지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았다.


"함장님 들어오십니다."

"작전관. 보고."


잠시 뒤, 함교로 들어온 함장님은 군모를 고쳐 쓰며 작전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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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챕터 쓰는 중인데 너무 오래 걸려서 중간 보고 겸해서 새로 작성된 부분 같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