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골국 삼한등처행중서성(三韓等處行中書省) 한민국 호남로(湖南路) 고창군.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이 날강도 새끼들아!"


잔뜩 성이 난 농민들 중 나이가 많아 보이는 농부가 쟁기를 땅에 내려박으며 외쳤다. 


"다시 한번 말해봐라, 뭐가 어째?"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농부는, 나이 들어보이는 외모와는 딴판으로 대단한 기세로 콧김을 내뿜으며 잔뜩 흥분해 있었다. 


젊은 몽골군 장교는 그런 농부들을 잠시 뚱하니 쳐다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어색한 투의 한국어로 말했다.


"이해하지 못한듯 하니 다시 한번 말하겠다. 당신들은 국가총동원령에 의거한 합법적인 징발 행위를 방해하고 있다. 이는 최대 사형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범죄이니, 목숨이 아깝다면 방해하지 말고 비켜라."


"야 이놈의 새끼야, 어디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테 찍찍 반말이야! 그리고 뭐? 남은  곡식 징수한다고? 천원짜리 한장도 안 주고서?"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중공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완전히 잡은 몽골은, 이제 토번과 우한을 공격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곳곳에서 자원을 징발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지난 몽골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몽골의 속국이 된 한국에도 해당되는 말이었고, 강화총관부와 탐라총관부에서 파견된 징수관들이 한국 곳곳에서 농가의 남은 식량을 징발하고 있었다.


이곳 고창도 그러한 것과 유사하게 징수관이 도착하여 징수를 시작했고, 농부들은 처음에는 군말없이 판매하고 남은 곡식을 내 주었다.


그런데 한 농부가 징수관에게 징수된 곡식에 대한 값의 지불 시일을 묻자, 징수관은 '그런 건 없다.' 며 본국의 지침에 따라 값을 지불하지 않겠다 말했다.


당연히 농부들은 크게 반발했고, 징수관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들먹이며 애원하기도 하고, 없는 패물과 돈을 긁어모아 뇌물을 건네며 부탁하기도 했으나, 징수관은 그것을 무시하며 곡식을 예정대로 이송하려고만 할 뿐이었다.


결국 이판사판이라고 여긴 농민들이, 식량을 실고 가는 몽골군의 차량을 막고는 시위를 벌이게 된 것이었다.


"이전에도 강제로 헐값에 팔게 했으면서 돈은 한푼도 못주겠다고? 니놈들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이전에도 몽골 정부가 수확한 농작물들을 강제로 헐값에 내놓게 한 터라 형편이 곤궁해진 농민들은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단지 값을 받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몽골군 장교는 미간을 찌푸리며, 허리춤의 권총에 손을 가져다대고는 다시 어색한 한국어로 농부들을 향해 말했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지금이라도 해산한다면 이 모든 것을 불문에 붙이겠다. 해산하지 않을 시에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아니 근데 이 새끼가! 뭐, 그거 쏴보기라도 하게? 그래 어디 죽여봐라! 쏴봐 이 새끼-"


-탕!


농부의 고성 섞인 욕지거리는 끝마쳐지지 못했다. 인내심이 바닥난 몽골군 장교가 권총을 뽑아들어 농부의 미간에 구멍을 내었기 때문이었다.


그 농부의 초점은 이내 없어지고, 목이 앞으로 꺾이더니,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며 농부는 맥없이 쓰러졌다.


-털썩


"Чи хараал идсэн өвгөн...(이 좆같은 노인네가...)"


총성이 울리자마자 급히 농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엎드렸고,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엎드린 농부들 중 한 명이 조심스레 쓰러진 농부를 살폈다.


그러나 죽은 자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김 씨는 그저 차가운 몸뚱아리를 앞으로 향하고 누워 있을 뿐이었다.


"어..어어어어!"


"김씨! 정신 좀 차려 봐!"


농민들은 김 씨에게 달려드며 김씨를 마구 흔들었고, 그 모습을 본 몽골군 장교가 권총을 농부들에게 겨누며 다시 한국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노인네 꼴 나기 싫으면 당장 해산해라. 마지막으로 주는 기회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농부들은 오히려 분노를 터트릴 뿐이었다.


"이 짐승만도 못한 것들아! 우리도 죽여보겠다고? 그래, 어디 죽여 봐라! 다 죽여봐라 이것들아!"


그러고는 이젠 농부들은 땅바닥에 아예 드러누웠다.


결국, 인내심이 완전히 바닥난 몽골군 장교는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Бүгд бууна.(전원 하차.)"


장교의 명령에 따라 군용 트럭에 타고 있던 몽골군 병사들이 하차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모두 하차한 것을 확인한 장교는, 곧이어 농부들을 가리키며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Энэ бүх хөгшин хүмүүсийг ал!(이 늙은이들 다 쳐죽여!)"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몽둥이와 총을 꺼내들며 노인들에게 달려들었다.


-퍽 퍽 퍽


-빡 빠각


-콰직 콱


"..어이구..아아악..!"


"아악 이것들아! 뼈 부러진다, 컥!"


"끄르르르륵..."


농민들은 건장한 병사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그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10분 후.


가지각색의 색으로 멍이 들고 뼈가 부러진 농부들은 혼절하거나 이미 숨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몽골군 장교는 그 농부들을 길에서 치우라 명령하면서, 다시 차에 탔다.


"Боломж байсан бол шууд л тарах ёстой байсан. тэнэг залуус.(그러게 기회를 줄 때 꺼졌어야지. 멍청한 놈들.)"


장교가 출발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장교가 탄 차량이 출발했고, 그에 뒤따라 다른 몽골군 차량들도 길을 따라가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고창을 다 나왔을 때, 몽골군 장교는 궐련을 물며 라이터를 켰다. 


일을 마치고 하는 담배의 맛은 늘 그랬듯이 최고였다.


장교는 잠시 창문을 열고는, 후 하고 불며 담배 연기를 바깥으로 뿜어냈다.


호남로의 지평선이 오늘따라 퍽 아름답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