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 의주군 압록강 유역.


"동무, 고조 뭘 기리도 뚫어지게 보고 있네?"


보초를 서고 있던 하급병사(이등병) 리춘성이 같은 고향 출신 하급병사 박휘구의 등을 장난스럽게 치며 물었다.


"아, 저어기. 중국 땅을 좀 보고 있었지비."


박휘구는 그러면서, 압록강 너머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단둥시를 가리켰다. 가장 가까운 건물 몇몇개도 불이 나며 검은 연기를 뿜어대고, 다리는 이미 폭파하여 끊어놓았어도 계속해서 중국인들이 강을 헤엄치며 몽골군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이곳 의주에서도 보이는 단둥의 큰 건물은 푸른 바탕에 흰 문양이 새겨진 몽골의 깃발이 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몽골어로 뭐라 하는 소리 역시 들려왔다.


""""агуу эзэн хаан эрхэм дээдэс мандтугай!(대황제 폐하 만세!)""""


""""мандтугай!(만세!)""""


""""Екэ Монгол Улус мандтугай!(대몽골국 만세!)""""


""""мандтугай!(만세!)""""


""""агуу эзэн хаан эрхэм дээдэс мандтугай!(대황제 폐하 만세!)""""


""""мандтугай!(만세!)""""


""""Екэ Монгол Улус мандтугай!(대몽골국 만세!)""""


""""мандтугай!(만세!)""""


승리를 기념하며 황제를 찬양하는 수만 명의 몽골군이 그들의 깃발을 흔들며 쩌렁쩌렁 외치는 함성소리는, 압록강을 넘어 이곳 의주까지 그 소리가 들렸다. 


두 하급병사는 그들이 무어라 하는지는 전혀 몰랐으나, 적어도 그 목소리에 새겨진 승전의 기쁨은 느낄 수 있었다.


"고조 나는 어째 저 소리가 살벌하게만 들리는구나야."


"동무도 그렇네? 나도 썩 좋지는 않네."


다만, 어째서인지 두 하급병사에겐 저 기쁜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공포에 질려 도망치고 있는 중국인들과 한껏 기쁜 소리를 질러대는 몽골인들이 서로 대비되었기 때문일까.


"야이 간나새끼들아! 지금 일 안하고 뭐하는기야?!"


"이크, 멧돼지가 또 지랄하는구나야, 거 다음에 만나자우!"


성격이 워낙 더럽고 화가 나면 마치 멧돼지마냥 달려든다 하여 '멧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상급병사(병장) 오국환이 그들의 농땡이를 발견하여 곧장 욕을 날리며 소리를 지르자, 두 하급병사는 서둘러 헤어지며 중국인 난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다가갔다.


그들은 단둥이 불타는 것만 빼면 늘 있던 일상이라 여겼다.


이것이 폭풍이 다가오기 전의 고요함이라는 것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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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중구역 금수산태양궁전.


"지금 이따위 늑약을 우리 공화국더러 받아들이라는 거요!"


얼굴이 홍시처럼 새빨개진 조선로동당 총비서 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몽골의 사신이 요구한 내용이 적힌 종이를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쳤다.


몽골 사신단은 국무위원장의 행동에 당황하기는 커녕, 오히려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거만하게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 그들의 태도에, 국무위원장의 분노는 더해져 국무위원장은 주먹을 쥐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살찐 돼지가 분노한 모습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위압감도 주지 못했다. 되려 그들은 대놓고 피식거리며 국무위원장을 비웃었다.


"이보시오, 어차피 받아들이셔야 하지 않소?"


가장 앞에 있던 몽골 사신이 빈정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 뒤에 서 있던 사신도 앞으로 나오며 말을 보탰다.


"이미 우리 군은 지난 주에 만주의 반란군을 완전히 평정했습니다, 당신이 중공에게 빌붙을 구석도 없어졌다. 이거지요. 그런데 대체 뭘 믿으시길래 요구를 거절하시는 겁니까? 당췌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만.


몽골 사신들이 요구한 사항은 이러했는데, 첫째는 북한으로 도망을 온 중국인들을 환송시키는 것, 


둘째는 중국을 정벌할 물자를 바칠 것과 국무위원장이 직접 몽골의 수도로 와 몽골 황제의 신하가 되었음을 공표할 것.


셋째는 몽골군이 북한 내에 주둔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 비용을 모두 북한 측에서 부담할 것, 


넷째는 현 북한 내부의 정세가 좋지 아니하니 이에 대해 대책을 마련할 '자문위원회'를 설치할 것 등이 있었다.


국무위원장은 첫번째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나, 그 이외의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두 번째 요구는 그의 집권 명분과 정당성을 지각을 뚫고 내핵까지 처박히고도 남는 것이고, 


세 번째 요구는 안 그래도 한계까지 다다른 있는 공화국의 경제를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쿠데타로 축출당할 것도 각오해야 했다. 식량을 착취당해 더 늘어날 인민들의 봉기는 덤이고.


네 번째는 볼 것도 없이 자신의 권력에 큰 타격을 줄 것이 분명했기에, 국무위원장은 결코 그것을 택할 수 없었다.


그가 권력을 잃는 날은 곧 제삿날인 까닭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것을 거부하면 어찌될지 알면서도, 거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공화국의 인민들은 당신네가 강요하는 이따위 늑약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당신네들이 쳐들어 온다면 최후의 한 명까지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여 우리 조선민족의 용맹함을  알릴 것이오, 월남을 침략한 미제 놈들처럼 지옥을 경험하고 싶다문, 기꺼이 그리 하기요."


국무위원장이 그렇게 말하자, 사신단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이내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섬으로 도망치지도 못하실 텐데, 참 이해가 안 가는구려. 뭐 어쨌거나, 거부한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지요?"


"그렇소, 빨리 가시는게 신상에 좋을 거요, 내래 참는거이 한도가 있어."


돼지가 짖는 소리는 맹수에게 조금의 두려움도 줄 수 없었으니, 맹수는 어리석은 돼지를 비웃으며 어떻게 죽일지를 궁리할 뿐이었다.


"다시 만나면, 뭔 꼴을 할지 참 기대가 됩니다 그려, 언제까지 그리 당당할 수 있는지 한번 보십시다."


몽골 사신단은 그렇게 말하고는, 문을 열고 집무실을 나갔다.


이날, 대몽골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전쟁을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