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한강 이남 한강대교 너머. 


-빠앙 빠아앙


-빠앙 빵


-삐이이이익


"거, 앞에 빨리 좀 갑시다! 지금 몇 시간짼데!"


"아니 씨발 앞 차가 안가는걸 왜 나한테 지랄이야!"


"뭐 씨발? 야! 너 이리 나와봐!"


한강 이남으로 피난을 가려는 피난민들의 차량이 몰린 한강대교는 1시간째 정체 현상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각지의 차량들은 경적을 빵빵 울려대며 빠르게 갈 것을 재촉했고, 때로는 이것 때문에 감정이 격해져 곳곳에서 욕설과 주먹다짐이 오가기 시작했다.


피난민들은 듣도보도 못한 강력한 적에 대한 공포로, 자신들을 버리려 했던 정부에 대한 분노로, 무능력한 군대에 대한 한심함이 가득한 불안정한 정신 상태에 놓여 있었다.


휴전선에 있던 모든 국군 부대들이 개전 후 8시간 만에 전멸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당장 대통령은 혼절하고 입법부와 행정부의 전 부서가 패닉 상태에 빠지며 행정부가 거의 붕괴되었고, 서울은 반쯤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그나마 정말 간신히 국방부가 붕괴되지 않은 것이 천운이긴 하였으나, 결과를 보면 이것도 마냥 천운이라 보긴 어려웠다.


국방부 역시 다른 부서에 비해 덜했다 뿐이지 전방 주력군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8시간만에 궤멸당한 전례없는 사태에 혼란에 빠진 것은 매한가지였고,  


그 탓에 국방부의 수뇌부들도 이 전례없는 사태를 맞이하여 역시 패닉 상태에 빠져버려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국방부장관은 격렬한 반대에도 한강 이북을 포기하고 각 교량들을 폭파하여 최대한 몽골군의 진격을 저지시키고자 독단으로 수도방위사령부 병력을 한강 이남으로 이동시키고, 김포 지역에는 김포지구전투사령부를, 한강 이남에는 한강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여 각각 김포와 한강 이남 서울의 방위 임무를 부여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국방부 장관의 계획 자체는 지연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나쁜 계획은 아니었다. 


당장 휴전선의 주력군이 싸그리 궤멸당하고, 경기도와 강원도의 군 부대들도 전투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몽골군과의 전투를 벌이고 있었으니 충청, 전라, 경상 지역의 동원사단들을 완편시킬 시간이 필요하긴 했다.


문제는 바로 이 작전의 부도덕함 그 자체였다. 이건 아무리 포장해도 군이 시민을 보호할 의무를 포기하고, 시민을 고기방패로 쓰는 것과 다름없었다. 


파국은 시민들이 김포대교에 폭탄을 설치하는 것을 발견한 것부터 시작되었다. 


보다 정확히는, 시민들 중 하나가 핸드폰으로 군인들이 다리를 통제하고 다리에 가림막을 설치한 것을 찍은 영상을 SNS에 올렸는데, 나름대로 영향력이 있던 이 시민의 글은 곳곳으로 퍼지고, 살이 붙여지며 마치 정부가 유사시 한강 이북을 포기하려는 듯한 것에서 당장 한강 이북을 포기하려는 것으로 과장되어 전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전방병력의 전멸 소식을 전해들은 시민들은 이미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거기에 국방부 장관의 명령대로 서울에 주둔했던 병력들이 속속 한강 이남으로 이동하는 것이 포착되자, 더욱더 흥분한 시민들이 대교로 몰려들어 다리를 통제하는 군인들을 때려눕히고 하나 둘 씩 다리를 건넌 것이, 지금 이 상황이었다.


이렇다 보니, 원래 다리를 사람 하나 남기지 않은 상태로 둔 후에 폭파하려던 국방부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설상가상으로 몽골군이 춘천과 홍천을 함락시키고 남양주, 고양, 동두천 세 방면에서 서울로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국방부가 마침내 완전히 붕괴하면서, 한국은 최소한의 명령 중추조차 사라진 상태였다.


장교들은 명령이 내려오지 않자 휘하 부대를 이끌고 독단으로 남쪽으로 후퇴하거나, 혹은 다시 한강 이북으로 원대복귀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저 자리를 지키며 어떻게든 시민들을 통제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