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챈뿐만 아니라, 페미니즘/남녀문제에 관심 있고 남초커뮤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류의 주장을 여러 번 본 적 있을 거임


"페미들/여자들은 사소한 일이라도, 논리가 없더라도 똘똘 뭉쳐서 목소리 내니까 성과가 나오는데
남자들은 욕하면서도 행동에 나서지 않고, 서로 누가 맞네 따지기만 하고 행동에 나서는 사람을 조롱이나 하니까 계속 당하는 거야"


이렇게 누구 한명이 일침을 놓으면 -> 다들 "하 그래 맞아... 한남이 그렇지 뭐" 하면서 자조적으로 수긍하는 분위기가 형성됨.


근데 나는 예전부터 이게 잘못된 책임 전가라고 생각했어.

가만보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남녀/페미 이슈에서 여자들이 단합을 잘하고 남자들이 못하는 이유를 

단순히 '남자들의 본성'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임.

"여자들은 원래 서로 공감을 잘해주고 집단주의적으로 행동을 잘하는데, 남자들은 개인주의라서 뭉칠 줄 모른다"

이런 식으로.


근데 내 생각에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고, 반례도 많아.

진짜 핵심적인 조건은 "전문적인 조직의 존재 여부"임.


커뮤니티에 알바나 특정 세력이 들어와서 테라포밍하는 과정을 생각하면 쉬움.

수만 명이 쓰는 커뮤니티라도, 수십명 단위의 작은 세력이 교묘하게 작업치면 분위기를 완전히 바꿀 수 있음.

커뮤 이용자의 대부분은 현생을 사는 사람들이고 커뮤에 적은 시간만을 투자하기 때문에, 

아무리 머릿수가 압도적으로 많아도 커뮤에 인생을 묻은 전문적인 작전세력의 행동력을 당해낼 수가 없어.

지금 대부분의 여초 커뮤니티들이 페미화된 과정도 그런 식이었음.


이 원리는 현실 정치에서도 똑같이 적용됨. 

한국의 여성운동은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녔고, 전국 각지에 운동조직이 심어져 있음.

체계화된 이론과 지적인 권위도 갖고 있으며, 언론과 정치권에도 진출하여 공론장을 주도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어.

이런 조직들, 즉 밥먹고 페미니즘 생각만 하는 직업 페미니스트들이 (때로는 일반 여성들을 동원 및 지원해가며) 운동을 이끄는 것이지, 무슨 개별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뭉쳐서 뭔가를 이뤄내는 게 아니야.

물론, 이렇게 전위조직이 우호적인 토양을 깔아주고 나면 일반 여성 개인들의 입장에서도 목소리를 내거나 서로 뭉치기가 훨-씬 편해지고 부담이 적어지는 것도 사실이지.


그러니까 커뮤에서 글이나 싸는 일반 남자들에게 "왜 너희는 페미들처럼 단합하지 못하냐?"고 하는 건 무리한 요구라는 거임.

개인이 그런 식으로 나서기에는 지원해줄 조직도 없고, 무엇보다 정치사회적 환경이 너무 적대적이야. 개인이 짊어지기엔 부담이 너무 커.


밥먹고 반페미니즘만 생각하는 조직? 존재하긴 하지만 여성운동에 비하면 개 좃밥 수준으로 역사도 짧고, 세력도 미약하며, 그 때문에 성향도 극단적이거나 마이너해. 이런 조직들은 일반 남자들을 설득해서 뭉치게 할 능력이 부족해.

그나마 그런 소구력을 보유한 정치세력은 이준석 계열? 하지만 얘네는 어디까지나 제도권 정치인이지 운동세력이 아니기 때문에, 밥먹고 반페미니즘만 생각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야. 그래서도 안 되고.


결론: 페미들/여자들이 뭉쳐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전문적이고 단결된 여성운동 조직의 힘 덕분임. 
걔네들처럼 못한다고 남자들을 비판하는 건 지나치다.

누구 말마따나 남자들이 뭐 진짜 롤이나 하는 롤대남이라서 뭉치지 못하는 게 아니야. 

생각해봐, 젊은 세대에서 정치적 무관심은 오히려 여성이 남성보다 더 심하잖아. 여자들도 다 생각이 다르고, 개개인이 전부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진 파편화된 사람들이야. 그걸 뛰어넘어 특정한 이슈에서 한 집단을 단결시키기 위해서는 (1)설득력 있는 사상체계와 (2)깃발을 들고 다닐 기수들이 필요한데, 여자들에게는 그게 있고, 남자들에게는 그게 없음.


이상 KXF 취소 사태를 보다가 문득 한남을 변호하고 싶어져서 끄적여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