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매부리코 양반이 쓴 책에 나와있는 원문을 긁어왔음



애덤 스미스가 무노조경영에 대해 신뢰했던 것은 결국 산업사회의 발전에 의한 노동자 수요 증가, 즉 노동시장에서 노동력이라는 개념의 희귀화가 발생함에 따른 노동자의 상대적 권리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이고, 고용유연화라는 개념 또한 해고 이후 취직이 적절한 수준의 일자리에 대해 합리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음, 결국 그걸 해고하는 것이 자본가이니만큼 노동시간의 공백이 생기는 노동자가 그 짐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니. 자본가가 손해보면서 해고할 이유가 하등 없잖음?


문제가 뭐냐면 한국에서 애덤 스미스가 언급한 균형적인 상태가 이루어졌느냐 하면 전혀 아님, 오히려 더욱 그 추가 자본가에게 흘러가고 있지. 심지어 자동화와 AI의 부상으로 인해서 더더욱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고, 고용유연화 명목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이 갈 곳이 있는가 하면 새로 취업하고자 하는 이들도 일자리가 부족해서 아우성인데 다시 그 경쟁시장에서 혼란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불합리하고 불리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음.


 그 고용유연화 이야기하는 상황이 제대로 적용되는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인데, 미국은 지금 완전고용상태에 오히려 소규모 업체들이나 일반 기업들까지 일하는 노동자들을 얻으려고 법정임금이 올라가거나, 아니면 아예 자체적으로 임금을 올리는 행위를 하고 있고, 이것이 애덤 스미스가 예견한 '산업규모가 커졌을 때의 노동수요 증가로 인한 균형'상태라고 할 수 있음. 요컨데 공급되는 노동자의 수보다 시장의 수요가 더 큰 것임.


 결국 대한민국이 그러한 여건이 갖춰지지 않는 한 고용유연화 명목으로 노동자 쉽게 해고하고 쉽게 취직한다? 성립하기 심히 어려운 것이라는 뜻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