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이게 말이 되냐고.."


국군 병장 이태규는 전투로 인해 파괴된 해운대구 곳곳을 둘러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한 때 부산에서 가장 높고 화려했던, 어여쁜 유리가 입혀졌던 건물들이, 이젠 그 반의 반도 안 되는 높이로 낮아진 채 유리 껍질이 헐벗겨지고 콘크리트 조각과 철근만이 드러난 앙상한 모습으로 기괴하게 서 있었다.


그 앞에는, 포신이 부러지고 전면이 통째로 박살나 원래의 형태를 더는 알아볼 수도 없는 국군 전차가 불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바닷가 쪽을 바라보니, 한 때 젊은이들이 휴가를 즐기며 일광욕을 즐기고 더위를 피하고자 수영을 즐겼던 그 해변에서는 국군 장병들의 시체가 수북히 널려 있었으나, 몽골군 병사의 시체는 없었다.


아니, 비단 이곳에서만 아니라, 지금까지 부산 곳곳을 지나면서 몽골군의 시체는 단 한 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반신이 날아가서 내장을 토해내거나, 머리통이 완전히 박살나 뼈 조각과 뇌수가 튀어나오거나, 전차 무한궤도에 짓밟혀 한 몸이 인위적으로 찢어지거나, 기관총에 온 몸이 벌집이 된 시체들은 모두 아군, 국군의 것이었다.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씨발."


이태규는 총을 맞은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이제는 완전히 고장나 더는 쓸 수도 없는 소총을 지팡이 삼아 해운대의 도로를 걸어가며 그렇게 말했다.


"..받아들였어야 했어."


그는 무심코 그렇게 말했다.


차라리, 차라리 그 때 숙였더라면.


몽골 병사들이 판문점을 넘어 북한 주민들과 우리 장병들을 살해한 것을 그냥 넘어갔더라면.


대통령이 대도로 와서 황제에게 절을 하며  몽골 황제에게 사죄하라는 것을 받아들였다면.


그랬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대패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멀리멀리 도망이라도 쳤을텐데.


그렇게 후회하는 이태규였다.


"..."


하지만 이제 와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미 그의 조국은 패망하였고, 그저 지연전 한 번만 성공했을 뿐 다른 전투에서는 모두 궤멸당하거나 포로가 되거나 대패했을 뿐인데.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진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저 말단 병사인 그였는데.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그런 생각만을 하며, 이태규는 묵묵히 길을 걸어갈 뿐이었다.


[...칙...치지직...치이이익...]


그때, 어디선가 치직거리는 무전기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그는 곧바로 그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죽은 병사가 차고 있는 무전기를 볼 수 있었다.


무슨 소리가 나올까 궁금해하며, 그는 입을 틀어막고,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 무전기에 귀를 가져다댔다.


[..치직..치지지직...부산지구전투사령관 이신태는 전군에 하달한다. 우리 정부는, 금일 오후 17시 28분경. 대몽골 정부와의 전 전선에서의 전투행위의 전면적인 중지와 평화 협정에 동의하였다. 각지에서 전투 중인 장병들은 모두 저항을 중단하고 무기를 내려놓으라. 반복한다. 우리 정부는...]


이태규는 순간, 제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신태 장군이. 유일하게 대구에서 몽골군을 막아낸 그 장군이. 전투행위를 중지하라고 했다.


유일하게 몽골군을 이긴 적이 있는 그 장군이, 이제 다 끝났으니 당장 항복하라고 했다.


더 이상 희망은 없고, 정부는 항복했다고 했다.


"...허..흐흐흐.."


실소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실소는 계속 이어지더니, 이내 광소로 변했다.


"...허..허허..!"


이태규는 총을 계속 쥔 채로, 그저 미친놈마냥 웃었다.


"흐허허허허...! 흐흐..흐흐흐..허허허허!.."


계속해서 광소는 이어졌고, 그렇게 3분 정도 광소를 내뱉은 이태규는 어느새 꺽꺽대며 숨을 내몰아쉬었다.


"...끅끅끅끅끄...끄윽윽으윽으..."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었고, 웃음이 잠시 멈추면, 다시 자동으로 웃음이 나왔다.


멈추려 해도, 웃음이 도저히 멈추질 않았다.


그냥, 이 모든 것이 다 웃겨 죽을 지경이었다.


무력하게 무너진 우리 군도, 뭔 지랄을 해도 이길 수 없었던 적군도, 하는 것이라고는 없었던 정부도 그저 웃겼고,


주변의 널린 시신들도, 오로지 한국군만으로 이루어진 이 시체더미들도 그저 웃겼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웃긴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끄끄끄끄끄끄..."


동생 놈이 최전방에서 죽어나갔음에도 이무 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이.


누이가 놈들에게 능욕당한 뒤 처참하게 죽임당했음에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자신이.


부모님이 처참하게 살해당하셨을 때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자기 자신이 너무 우습고 한심했다.


그렇게 이태규는, 그저 웃고, 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