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골국이 기나긴 암흑기를 이겨내고 다시 성세를 되찾은 이후, 몽골인들의 오만함은 점차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칭기즈 카간이 받은, '영원한 하늘의 힘'의 가호가, 다시금 그들의 황제와 그들의 조국에 깃들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가호로 하여금, 그들 나라의 국성인 보르지기트 황실이, 다시금 세계의 지배권을 인정받았다고.


미국이 내전으로 안에서 무너진 지금, 그들 민족이 다시금 하늘의 선택을 받아, 세상을 통치할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여긴 것이었다.


"영국 국왕은 무릎을 꿇고 대황제 폐하의 조서를 받들라!"


그 생각은, 그들이 그들의 오만함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게끔 하게 만들었다.


이 즈음 몽골인들은 세상의 그 어떤 나라도, 자신들과 대등한 관계가 아니며, 오로지 자신들만이 황제를 칭할 자격이 있다 생각했다.


몽골 정부는 군주국의 군주를 불러주던 경칭을 자주독립국의 군주를 부르는 '폐하'에서 제후국, 번왕을 부르는 '전하'로 일제히 격하하였고, 황제와 동등한 의전을 해 주던 것을 자국의 친왕의 의전으로 격하하였으며, 


본디 황제가 한 나라를 방문하는 것에서 관료를 파견하는 것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이러한 태도는, 비단 가까운 동남아나 남아시아의 국가들뿐만 아니라 저 멀리 유럽과 아프리카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미쳤소? 당신네들이 뭔데 감히 우리 국왕 폐하께서 무릎을 꿇느니 마니 명령질을 하는 거요?!"


다만 그 반응은 거리에 따라 달랐는데, 몽골과 가까운 아시아의 국가들이 속으로 열불을 내면서도 몽골에 칭신하며 조공을 바친 것과는 달리, 유럽과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길길이 날뛰며 몽골 사신에게 면박을 주며 그들의 예법을 따르길 거부했다.


우선, 유럽 국가들이 황제가 국왕보다 높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럽권에서 황제와 왕은 동아시아와는 달리 그 격이 차이가 난다고 볼 수는 없었다.


물론 신성로마제국 내 왕국 제후국들이 있던 걸 보면 완전히 격의 차이가 없다고는 못 했으나, 그렇다고 프랑스 왕국 국왕이나 영국 국왕이 신성로마제국 황제, 혹은 러시아 제국 황제보다 낮게 대우받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둘째, 유럽의 국가들은 아직까지는 러시아라는 방패가 몽골을 막아주고 있었고, 아무리 세상이 개판으로 변했어도 대부분 개발도상국 등이 많았던 아시아 국가들보다는 여전히 국력이 상대적으로 건재하기도 했으며, 몽골이 유럽의 국가들에게 원정군을 보내기에는 이미 그 거리가 너무 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침략전쟁을 이어나가며 도시를 파괴하고 대규모 학살을 벌이는 몽골에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당장에 성난 국민들의 거센 반발로 왕정이 폐지될 것은 뻔할 뻔자였으므로, 유럽 국가들은 절대 몽골이 요구하는 사항을 따를 수가 없었다.


"우리 나라는 '영원한 하늘의 힘'의 가호에 힘입어 천하를 웅비하였고, 우리 대황제 폐하께서는 우리 나라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제후로써 마땅히 그 격에 맞는 대우를 하라는 것 뿐인데, 귀측을 어찌 이것을 거부하고 황제의 사신을 이리도 면박 준단 말입니까?"


이런 유럽 국가들의 태도에, 몽골인들은 불쾌감보다는 의아함을 느꼈다.


그들의 위대한 황제는 온 천하를 웅비하며 세계의 주인 될 자격을 여실히 드러내었거늘, 어찌 저들은 그것을 부정하며 황제 폐하의 품에 안기는 것을 거부하는가?


황제는 마땅히 왕보다 높은 존재이고, 왕은 황제를 성심껏 모시며 조공을 바쳐야 마땅하거늘, 어찌 저들은 그 당연한 것을 행하고자 하지 않는가?


라는 논리로 말이다.


옛말에 중국을 얻은 민족은 중국인이 된다 하던가.


중국을 얻은 지 20년도 되지 아니하였지만 옛 중국의 외교를 그대로 따라하니, 이토록 빠르게 중국화된 민족은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