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노 유타카는 전쟁이 끝을 향해 달려가며 미국이 폭격을 퍼붓던 시기에조차 일본 본토에서는 '위안소'가 계속 운영되었으며, 도쿄에서는 무려 1945년 5월 15일에도 헌병대를 위한 '위안소' 신설 허가가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간자키 기요시에 따르면 미국의 1945년 3월 도쿄 대공습으로 요시와라 성매매 집결지에서 성매매 피해자 300명이 죽었다. 

당시 해당 집결지에 억류됐던 여자 중 3분의 1이 희생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요시와라 집결지는 단 3개월 후 7개 업소와 20명의 여자를 확보해 재개장했다.

 일본군은 1945년 8월 10일 건설 자재 무료 공급을 약속하면서 집결지 재건을 도왔다.

패전이 단 5일 남은 시점이었다.

8월 15일 패전으로 일본군이 체결한 모든 계약은 무효가 되었으나, 간자키에 따르면 일본군은 도쿄 주택 잔해에서 구한 건설 자재를 운송해 와 이 계약 하나 만큼은 지켰다. 

도쿄시 역시 성매매 집결지 재건에 매트리스 300개를 기부하기까지 했다는 게 이 이야기의 더없이 부조리한 결말이다. 이런 조각을 합쳐볼 때 전시 일본 남자들이 가히 희극적일 만큼 성매매할 여자를 계속 공급받는 데 열중했다는 큰 그림이 그려진다. 




출처: '위안부'는 여자다, 캐롤라인 노마 저, 유혜담 옮김, 열다, 186~187쪽, 2020년 




인간의 성욕이라는게 참.... 이런거 보면 생각보다 강력한 욕구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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