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과 6.25전쟁이 시작점이다. 

분단 이전 해방정국 때 한반도의 정치적 다양성은 지금 대한민국보다도 다채로울 정도로 풍부했음.

당시 여론에 따르면 상당수의 사람들은 갑갑했던 2차 대전 시절에서 벗어났으니

이참에에 정치적, 사회적 자유를 누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좌우 갈등이 심화되고 사태를 수습하려던 중도적인 지도자들이 죄다 암살당하거나 숙청당하면서 

한반도의 정치 구도는 김일성/이승만으로 양극화되고 분단이 확실해짐. 


이 때부터 사회 내부에서 지도자에 대한 의문을 표하는 사람은

'반동분자/빨갱이'라는 명분으로 탄압받기 시작했고

6.25 전쟁 이후 서로에 대한 위기의식과 적대의식이 뿌리깊게 내리면서 

사회 내부에서 '의문'을 금기시하는 권위주의가 형성되었다.


북한은 6.25 이후 8월 종파 사건, 도서정리사업으로 전체주의를 구축했고 

이후 김씨 돼지 일가가 전체주의를 강화해서 지금까지 도착했다.


대한민국의 경우 4.19 혁명으로 권위주의를 해소할 것 같았으나 

정국의 혼란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이 다시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게 되었고.


5.16 군사정변으로 박정희가 등장했고, 박정희가 성공적인 5개년 계획으로 백마탄 초인을 보여주니까 

사람들은 권위주의를 우호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동시에 권위주의 체제에 길들여졌다. 

박정희 세대들은 학생 시절부터 교련, 체벌에 시달리고

 남자라면 군대에서 군인 마인드로 개조당하며

여자라면 공장에서 일하다가 결혼하고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 복종해야했음. 

자기가 원하지 않든 원하든 간에 권위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스며들었다. 


이게 말이 안된다, 학생운동이나 부마항쟁 같은 것도 일어났는데 권위주의가 스며드냐?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근데 원래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사람이 알게 모르게 작용하는 법이다. 

그래서 내가 '스며든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고.


박정희 이후 한국은 물질적으로 발전하였지만 

결국 독재는 독재라서 국민들에게 '개인은 집단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살아간다' 라는 도구적 목적의식이 내재화되었고

전두환은 이를 더 강하게 강화시켰음.


그리고 6월 항쟁과 직선제 개헌 이후에도, 이 도구적 국민의식은 사라지지 않음. 

사람들 사이에서 권위주의적, 전체주의적 관념의식이 스며들대로 스며들었음. 

왜 질문 하느냐, 의문을 가지지 말고 복종해라, 말 들어라, 너도 자라면 다 이해할거다, 어딜 감히 나대느냐면서 

질문과 의문을 틀어 막았다. 


그래서 한국이 6월 항쟁 이후 소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룩했다고 한 들

이 스며든 권위주의 사회관념이 무너지지 않으면 국가의 제도와 체제는 도로 권위주의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한국은 민주주의라는 수단으로 수많은 권위주의적 법안들이 통과되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일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