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래 광산의 갱내 취로는 원칙으로 14세 이상의 남자에만 한해 허가했고 여자의 갱내 취로는 금지되었던 것인데, 작금의 정세와 업계의 요망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있는 광산에 대하여는 조선총독의 허가를 얻어 만 16세 이상의 여자는 갱내에서 일을 시킬 수 있도록 함에 따라 19일부로 부령으로 이를 발표하고 즉일부터 시행하기로 되었는데 여자의 갱내 취로에 대하여는 보건, 위생, 풍기 등의 견지로부터나 또는 작업의 종류와 그 장소에 대하여 남자와 꼭 같은 취급을 하기는 곤란한 사정이 있다. 그럼으로 이 같은 특수사정에 대하여는 충분히 고려하기로 되었는데, 하여간 이 제도를 실시함으로써 현하 광산 노무 정세는 상당히 완화될 줄로 믿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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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4월 19일, 조선총독부는 기관지 매일신보에 식산국장 명의로 다음과 같은 '여자광부갱내취업허가제' 를 시행한다고 발표합니다.


엄연한 아동 노동 착취지만, 자기네들이 인심 깨나 쓰며 은혜를 베푸는 듯한 태도가 여러 의미로 인상적입니다.



참고로 14세 소년을 광부로 취업시킬 수 있게 한 것인 3년 이전은 1938년이었습니다. 이때 '광부노무부조규칙' 을 제정하며 미성년자 남자를 광산에서 일하게 하고, 3년 뒤엔 기어이 여자까지 광산으로 내몬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소년소녀들이 조선, 일본, 사할린의 탄광, 금광, 철광 등에서 노동착취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 악명높은 군함도(하시마 섬)에도 수백여명의 조선인 소년들이 끌려갔습니다.



이렇게 노동착취를 밀어붙인 이유는 단 하나, 노동력 부족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중일전쟁도 전면전으로 비화되고 장차 있을 미국과의 전쟁도 대비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석탄, 강철이 당연히 어마어마하게 갈려나갔습니다. 그래서 성인 광부도 모자라 이렇게 미성년자들까지 마구 광산에 넣는 짓거리를 저지른 겁니다.



당연히 갱내의 환경은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소년들은 그 작은 체구로 좁아터진 광산 '막장' 까지 가서 곡괭이 하나에 의지해 광석을 캐야 했으며,


소녀들은 이렇게 채굴된 광석을 손으로 일일히 분류해야 했습니다. 품질 좋은 것, 나쁜 것, 아예 써먹을 수 없는 돌덩이 등으로요.


기계화 따위는 되어있지 않고, 거의 다 수작업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안전대책도 거의 없어서 갱이 붕괴되어 매몰되거나 발파 폭발로 폭사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만 30여명이고,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도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애초에 이때는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닥을 쳤기에, 갱도에서 누가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습니다.


오히려 광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손가락을 깨물어 잘라버린 사례까지 나올 정도로, 죽거나 빠져나가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거기다가 일본인 고참 광부 사키야마(先山)들은 조선인 소년소녀들에게 폭행과 학대를 일삼았습니다. 화풀이 대상으로 때리기도 했고, 얼마 되지 않는 급여를 갈취해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한 사키야마는 조선인 소년 광부가 일본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곡괭이 자루로 두들겨패 죽인 사례도 있었는데, 다른 소년들은 오히려 그를 부러워했습니다.


죽음으로서 지옥 같은 고난에서 해방되었다고요.



이렇게 힘들게 일했지만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명목상의 임금은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많았지만, 미성년자라 수습 기간이라 적게 주는거고 나중에 많이 준다,


통장에 넣어줄 테니 나중에 찾아갈 수 있게 해준다,


이런 핑계로 실제로 돈을 받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돈을 제때 주는 곳도 몇군데 있긴 했지만, 조선의 가난한 부모를 돕기 위해 다 송금해버려서 제대로 쓰지도 못했죠.

징용 노무자, 광부 숙소로 이용된 '다코베야'


이렇게 끌려간 당시 소년소녀들이 이제서야 조명받는 이유는 어찌 보면 참 슬픕니다.


이제 일제의 만행에 대해 말해줄 사람이 이분들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인 때 징용의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이제 상당수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어서, 그나마 남은 게 10대 때 징용의 희생자가 된 1920년대 후반 - 1930년대 초반생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이들도 올해 기준으로 거의 90대인지라, 이제 진짜 몇 명 남지 않았어요.



물론 일제가 남긴 문서기록이나 이들의 가족을 통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는지라 당사자들의 증언을 최대한 많이 기록해놓는 게 역사의 진실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출처: 정혜경,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동원된 조선의 아이들', 섬앤섬, 2019.



김미정, '전시체제기 조선총독부의 여성노동력 동원과 실태',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블로그 출처: 무수천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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