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이대남 우경화가 가장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시절이라 지금보다 운동권 비판 목소리가 훨씬 컸다는 점 감안하고 읽어야 함



이석 치사 사건 때에, 즉 1997년6월에 저는 국내의 한 사립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제가 다니던 그 학교에서도 총학생회가 피해자 이석을 추모하는 시설 같은 걸 만든 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사건이 발표된 후 며칠간 계속해서 이 사건에 대한 사석에서의 토론은 이어졌습니다. 교수들은 "이제 이걸로 학생 운동이 끝났다. 앞으로 운동의 중심은 아마도 노동 운동일 것이다"라고, 대체로 1950년대부터 굳어져온 "학생 운동이 주도하는 총체 운동의 패턴"이 이걸로 완전히 깨진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학생들의 분위기는 좀 달랐습니다. 소위 "운동권"이 아닌 친구들도 "학생 운동가들을 사찰하는 경찰의 잘못이 더 먼저 아니냐"라고 제게 계속 해서 물었습니다. 그나마 민주화된 분위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주고 받을 수 있었다는 것도 참 불행 중 다행스런 일이죠. 


저는 그 때 학생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경찰이 잘못하는 게 분명히 맞다고, 민주적 사회에서 운동가 사찰이란 인권 침해라고. 그런데 만약 그 운동가들이 경찰, 안기부 고문 기술자들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피의자를 무차별적으로 때려 죽인다면, 과연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운동"은 "구악을 그대로 닮아버린 신악" 정도로 인식되지 않겠느냐, 제대로 운동하자면 적어도 경찰이나 안기부 등 기존의 사회 주류보다 도덕성과 인권 이해가 좀 더 공고하고 넓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렇게 해서 토론이 이어지고 제가 그들을 설득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로서는 그 때에 이 사건이 가면 갈 수록 학생 운동에 대한 어떤 기본적인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느낌을 계속 주고 있었습니다. 노동, 민중을 위한다는 명문 수도권 대학 학생들이 바로 그 노동 대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지방 출신의, 대학에 다닐 형편도 안되는 실업자 선반공을 붙잡아 고문해서 죽인 것은, 이미 이 운동의 "명분"과 "현실"이 따로 놀고 있다는 걸 너무나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압권은, 사건이 발표된 뒤에 나온 가해자 측의 입장문이었습니다. 피해자가 "경찰의 사주에 의해서 계속 자해행위를 하려 했다"는 이야기이었는데, "딱치니 억하고 넘어졌다"는 딱 그 수준이었습니다. 1997년에 접어들어 1987년의 고문 기술자들을 이렇게 닮을 정도로 화석화된 "운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싶었습니다. 


문제 제기해도 이제 소용 없는 이유는, 그 때부터 제 동료 교수들의 예측대로 학생 운동이 완전히 망해서 거의 존재감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게 통탄스런 일이죠. 운동이 없는 이상 학생들의 권익 표방, 인권 침해와의 투쟁도 어려워졌지만, "운동"이라는 사회화 기제를 통과해 어느 정도 비주류적 내지 비판적 사고를 익힌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의 차이도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문제 많은 운동이라 해도 그 운동 속에서 일부 학생이라도 맑스를 읽을 수 있었다면 그건 정말이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학생 운동의 바람직한 '재건'을 바라는 만큼, 과거의 - 이제 몰락한 - 학생 운동의 문제점도 그래도 한 번 재검토할 가치는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들이 하도 많고 복잡해 짧은 글에서 다 담을 수 없기에 언젠가 이 이야기를 다음 기회에 계속 하기로 하고 지금은 딱 두 가지를 지적해두겠습니다. 


첫째, 운동에는 분명한 '목표'가 필요합니다. 1980년대에 그런 목표는 '민주화'이었기에 운동에 힘이 넘쳤죠. 1990년대 한총련이 하다가 몰락한 운동의 목표는 '통일'이었습니다. 사실 그 자체로서 중요한 목표죠. 통일, 최소한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평화 공존 경협 체제가 잡히지 않으면 이 나라 대한민국, 이 땅 한반도는 계속해 군사 긴장, 군사주의에 시달릴 겁니다. 저 같이 민족주의자 아닌 평화주의자도 이래서 "통일주의자" 되는 거죠. 문제는, "통일"이란 엄청난, 그야말로 세대가 몇 번 교체돼도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웠다면, 그 만큼의 복합적 '사고'도 지녀야 하고, 그 만큼 고민들도 많아야 합니다. 통독의 경우에서 보듯, 민주적인 복지 국가인 서독과 그 1인당 GDP가 서독의 약 40% 정도 된 동독이 합친다 해도 동독인들이 이 새 구조에서 "약자"가 되어 여러모로 매우 불리한 입장에 처해기제 됩니다. 대한민국은 서독과 같은 복지 국가도 아니고, 북조선의 1 인당 GDP는 남한의 4-5% 정도입니다. 이 두 나라가 기계적으로 합쳐진다면 북한인들의 인권, 자존심, 생활 세계 등등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정말로 북한인들에게 해가 아닌 득이 될 통일로 가자면 우선 한국은 복지 국가가 돼야 하며, 그 다음에는 탈북자들을 강압적으로, 거의 고문하다싶이 신문, 조사하는 "대성공사"와 같은, 대한민국 국가의 반인권적인 현실부터 혁파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통일 운동에는 복지, 인권에 대한 고민과 의식이 우선적으로 필요한데, 과거의 한총련 운동에서는 그런 게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학생 운동이 재건되자면 그게 필수가 돼야겠죠? 


둘쩨, 운동에는 분명한 도덕적 규정력, 구속력 같은 게 필요합니다. 운동에 몸을 담아 지도적 위치에 도달한 이상 적어도 그 경력을 팔아서 출세하려 하면 안되죠. 다른 방편으로 출세를 하자면 당연히 본인의 "자유"지만, 좌파적 운동의 경력으로 보수 정당에 들어가 거기에서 "한 자리"를 꿰차는 것은, 누가 봐도 이 운동을 "수령들의 출세 발판"쯤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지금 한국에는 보수 양당제가 고착되어 극우주의 보수 정당과 자유주의 보수 정당이 서로 경쟁하고 있는데, 이 두 보수 정당의 지도부를 보면 과거 학생회 의장, 전국적 학생 조직 간부들로 가득차 있는 거죠. 심지어 부산에서 극우 정당 국회 의원으로 뽑힌 명문대 출신의 한 과거 좌파 민족주의 운동 출신은, 몇년 전에 "김정은을 암살하자"고 공개적으로 제안하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들이 종종 벌어집니다. 제가 한국에서 본 가장 광적인 반북주의자들은 대개 그 좌파민족주의 계열 운동가 출신들입니다. 동시에 자유주의 진영에 간 과거 "운동" 간부들은 너무나 쉽게 신자유주의자가 되고요. 이런 추태를 지켜보는 일반 시민들은 그렇게 해서 "운동"을 처움부터 "권력욕의 발로"이었다고 보기 시작합니다. 운동권이 재건되자면 적어도 이런 추태들을 방지할 수 있는 모종의 다수의 도덕적 공감대라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운동권"은 세인, 특히 젊은 아이들에게는 거의 "욕"입니다. 운동권이라고 하면 그들에게는 출세만 바라보는 지도자들, 권위주의적 선후배 서열, 폐쇄적 분위기, 성추행 사건, 나중에 서로를 밀고 댕겨서 출세시켜주는 저들만의 폐쇄적 네트워크 등등은 주료 연상됩니다. 운동이 다시 재건되자면 정말 "환골탈태" 정도 필요할 겁니다. 철저히 원자화된 신자유주의 사회에선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사회적으로 참 필요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