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말이나 2000년 초 쯤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 윗방에서 살던 종길이 아버지가 출입문을 두드리며 “성하 어머니 우리 집에 특별한 것을 가져 왔으니 같이 먹읍시다. 예!”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홀로 나와 동생 대학 뒷바라지를 하다보니 그즈음엔 우리 집도 가세가 기울어져 방 한 칸을 종길이네 집에 전세로 주었다.


 


  참고로 내가 대학에 다닌 기간은 고난의 행군 시절. 아무리 돈을 아껴 써도 내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한달 쓰는 돈이면 우리 집이 두 달 먹고 살 수 있었다. 대학 졸업 즈음에는 결국 윗방을 전세로 주고 그 돈으로 내가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우리 식구 세 명이 종길이네 집에 갔더니 일본어가 가득 써 있는 ‘밥사발’을 하나 밥상에 올리고 종길이네 식구 4명 그리고 동네 아저씨 하나가 둘러앉아 있었다.


  “그게 뭔가요?‘


  “아~이거 일본 국수 같은데요.”


 


  사정은 이랬다.


  어부인 종길이 아버지가 바다에서 미역을 건지는데 눈길을 끄는 그릇이 하나 둥둥 떠가더란다. 그래서 얼른 갈고리로 건져 올렸더니 포장지가 완벽한 일본 그릇라면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라면인줄 모르고 이게 웬 횡재냐 하고 집으로 가져 왔다.


  그 ‘진귀한 것’을 모르고 먹을 수 없어서 일본어를 자습한 동네 아저씨를 불러다 번역까지 시켰던 것이다. 다행히 유효기간도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식구까지 모두 8명. 우리는 빙 둘러 앉아서 라면에 더운 물을 부었다. 기대와 호기심 속에 4분이 지나고 우리는 뚜껑을 연 뒤 돌아가면서 한 젓가락씩 맛을 보았다.


  그런데 8명 중에 더 먹겠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일본이 잘사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맛이 없는 걸 먹고 사는구만…그래도 귀한 것이니 내가 마저 다 마시겠습니다.” 그러고는 종길이 아버지가 물까지 싹 마셔버렸다.


진짜 실망이었다. 일본산 제품에 대한 우상화가 가득하던 우리는 일본 음식이 그렇게 맛이 없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훗날 한국에 와서 보니 일본 라면도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그때 그 라면은 유통기간은 지나지 않았지만 바다를 떠오다보니 분명 변해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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