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몽골과의 전쟁에서 대패하여 몽골의 속국으로 전락한 이후, 한국은 독립국가로써의 모든 권리를 상실했다.


사소한 것으로는 속국이 감히 대(大) 자를 사용할 수 없다는 몽골의 압박에 국호를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대(大)자가 빠진 한민국(韓民國)으로 고치고, 대통령(大統領)도 대(大)자를 뺀 통령(統領)으로 고쳐야 했다.


그리고 몽한종전조약에 의거하여, 한국의 외교권은 몽골에 넘어갔고, 주변 국가들과 체결한 모든 조약과 협약을 파기해야 했다.


한국군 이 여파를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이제 육군은 1개 보병사단만 유지할 수 있었고, 전차와 장갑차 등 중장비의 보유를 금지당했다. 해군은 1000명 이상의 병력과 고속정 이외의 전력을 보유할 수 없게 되었으며, 공군은 아예 해체되고 수송기 이외의 군용기 보유를 금지당했다.


사법권 또한 그러했다. 몽골인이 한국 영내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한국 정부는 그 몽골인에 관한 처벌권이 없었지만, 한국인이 몽골과 한국 영내에서 몽골과 관련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는 그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일가까지 몽골에 압송시켜야 했다. 


한국 내 행정구역도 몽골식으로 변경되었다. 특별자치도와 도(道)는 몽골의 행중서성 하위 행정구역인 로(路)로 변경되고,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 등은 부(府)로 변경되거나 아예 폐지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국체는, 반독립적인 속국조차 아니라 몽골의 행정구역 비슷하게 취급되었다. 한국은 몽골이 서울에 설치한 행정구역인 삼한등처행중서성(三韓等處行中書省) 휘하의 속국으로 편입되었으니, 한국은 형식적 성격이 강했던 정동행성보다도 더 강하게 통제되었다.


무엇보다 한국 통령의 취임 역시 한국 국민이 선거로 뽑는 것이 아니라, 몽골에서 임명하는 식으로 바뀐 것이 가장 큰 것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한국 통령은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아닌 몽골의 속국을 담당하는 몽골의 일개 지방관으로써 취급되었으며, 한국의 고위, 하급 정부 공무원들은 몽골에서 황제의 칙사가 올 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맞이해야 했다. 몽골과 한국은 결코 동등한 관계가 아니었고, 몽골도 오히려 자신들의 종주국으로써의 권리를 자주 행사하며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몽골 정부는 한국 통령의 임명과 폐위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했고, 심지어 유사시에는 아예 처형하는 것도 가능했다.


트집 하나로도 끌려내려와 목이 (진짜로) 잘리고 가족들은 한순간에 교화수용소로 끌려갈 수 있는 자리가 바로 한국 통령의 현주소였다.


"삼한등처행중서성 한민국 통령 이충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황제 폐하의 조서를 받들라!"


몽골에서 온 칙사가 경복궁 월대에 서서 황제의 조서를 펼쳐들자, 통령은 월대 밑에서 즉시 무릎을 꿇고 사신을 향해 큰절을 하며 고개를 비굴하게 숙였다.


불안감이 그를 덮쳤지만, 통령은 애써 작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설령, 설령 자신이 해임되겠냐고, 그렇게 몽골에 충성을 바치고, 온갖 뇌물을 바쳤는데 설마 해임되겠느냐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칙사가 내뱉는 조서의 내용을 들으며 산산조각났다.


"대몽골 황제는 삼한등처행중서성 한민국 통령 이충혜에게 다음과 같이 조유하노라! 경은 삼한을 다스리는 자로써 인민을 덕으로 위로하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인민을 착취하고 온갖 패악질을 부리며 인민을 억압하였으니 그 죄가 하늘을 뒤덮고도 남아 이제 삼한을 통치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안돼.


이럴수는 없어.


"..하여 짐은 너를 삼한등처행중서성 한민국 통령직에서 폐위하니, 너는 헛된 저항을 하여 죄를 더하지 말고 순순히 죗값을 치르며 반성하도록 하라!"


칙사가 조서를 다 읽자, 곧이어 칙사의 곁에 있던 몽골 병사들이 수갑을 들고 그에게 다가왔다.


다급해진 통령은 배운 지 얼마 안된 어색한 몽골어로 급히 말했다.


"Я-Ямар нэг алдаа гарсан байх,(무-무언가 착오가 있었을 것입니다,) Н-Намайг Эрхэмсэг эзэн хаан руу аваачиж өгөөч!(제-제발 황제 폐하를 알현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몽골군들은 그를 그저 붙잡을 뿐이었다. 다급해진 그가 몸부림을 쳐 저항하자, 몽골 병사 한 명이 개머리판으로 그의 배를 찍었다.


"제, 제발- 억!"


그가 고통에 괴로워하며 배를 부여잡으며 고꾸라지자, 몽골 병사들은 그를 발로 차고, 몽둥이로 후려갈기고, 개머리판으로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억! 악! 악! 제발!"


그는 추하게 몸부림치며 폭력에 몸부림쳤으나, 그럴수록 그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강도는 더욱더 거세질 뿐이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몽골 병사들이 통령을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것을 분명히 보고 인지하였으나, 그것을 말리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충혜(忠惠)' 라는 이름에 걸맞게 온갖 엽색질과 토색질을 일삼았기에, 그에 동조하며 같이 토색질을 일삼았던 측근 인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삼한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 통령을 혐오하고 있었다, 단지 그동안 몽골이 통령을 비호하고 있었기에 그것이 두려워 가만히 있었을 뿐.


결국,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한 그가 5분도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축 늘어지자, 몽골군 병사들은 그에게 양동이 속의 물을 끼얹으며 강제로 정신을 차리게 했다.


"..억! 허억! 억!"


몽골군은 그에게 수갑을 채웠고, 이제 더이상 몸부림치지 못하는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한 채 고개를 푹 숙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방금 전의 폭력으로 여기저기 부러진 곳이 많아 절로 신음소리가 나왔지만,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데엔 성공했다.


하지만 그 후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었다.


방금 전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다리든 팔이든, 성한 곳이 전혀 없었기에 간간히 조심하며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뻑


"억!"


그의 느린 움직임에 짜증이 난 몽골군 병사 한 명이 그를 발로 차자, 그는 고통에 허리를 굽혔다.


"끄아아아아아..."


"Новш минь, чи хурдан алхаж чадахгүй байна уу?(이 새끼야, 빨리 안 걸어?)"


병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발을 움직였다.


발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그에게 전해졌지만, 그는 어떻게든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고 열심히 발을 움직였다.


그런 그의 모습은, 한국 전역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고 비참하게 끌려가는 그 모습이, 단 한명도 지키려는 이 없이 끌려가는 그 모습이, 삼한 방방곳곳에 생중계 되고 있었다.


"잘 됐네, 다른 건 몰라도 저런 거 하나는 봐줄만하다니까!"


"어떻게 몽골 놈들이 정치 뭐같이 하는 새끼들 족치는건 우리보다 잘하냐?"


고려 충혜왕이 유배지로 가던 중에 죽었을 때 고려의 백성들 중 슬퍼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했던가.


하면, 지금 통령 자리에서 폐위되어 끌려가고 있는 이충혜(忠惠) 전 통령도 그와 같게 되리라.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충혜왕 같은 통령이 폐위되는데 두들겨 맞는다고 한숨쉬는 거보단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방관하며 무시하는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서 이리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