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이 516 군사정권의 등장으로 전복된것을 유물사관으로 그 이유를 관념론에 빠져사는 좌파들도 이해할만하게 설명해보겠음


일단 우린 너무나 익숙한 민주주의에대해 조명을 해봐야함 어떻게 인류는 민주사회로 이행되었는지 따져보면 419혁명을 디테일하게 살펴볼수있다.


고대에 존재했던 도시상업국가들 아테네,티레,시돈같은 무역에 종사하는 도시국가는 자연스레 토지귀족의 영향력을 축소시켰는데 

고대에는 정교한 조세제도가 없어 관직에 오르는것은 곧 농노(소작농)을 부리는 토지귀족이 됨을 뜻했다

관직을 가지고있는 사람은 국가로부터 따로 녹봉을 받는것이 아니라 

토지를 소유함으로 그 토지에 소속된 가호(농노의 가구수)에서 세금을 징수하는 수조권을 행사할 권리를 부여받은것임 

고로 농노는 물론 왕이나 귀족또한 이러한 봉건제에 예속될수밖에없는데, 그 시절 고대의 "자유인"들이 있었으니 

왕과 지주놈들의 땅에서 생업을 찾지않고 주인없는 바다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어부들이다( 나는 이들을 "Fisher Of Freeman"이라는 개념으로 일컫음)

어부들은 그 누구의것도 아닌 바다에서 자신의 배로 어업에 종사함으로써 1인사업자나 다름이 없었고 

어업이 발달하자 어선으로 운수를 도맡고 운수를 하며 무역에 뛰어들다가 

무역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위해 각종 기구를 만드는 공장들을 고용하게되는 길드(출자조합)로 나아가게되는것,

그러한 무역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을수록 도시의 인구는 귀족(지주놈들)의 세력에서 벗어나 

자유인으로써의 의식화기 이뤄지면서 기존 토지귀족 지주놈들의 부조리로 귀족정에 반기를 들어 상업공화국이라는 필연적인 결과로 이어지게됨.

고대에 있어왔던 자유도시국가들 그리고 네덜란드혁명,청교도혁명,미국독립혁명같은 부르주아 혁명이 바로 그것임.

이런 인과관계를 보자면 인류사의 역사적 법칙성이 있음을 부정할수없고, 혁명을 통해 봉건제를 부수고 공화국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그 혁명 주체가 상업에 종사하는사람이란걸 알수있다. 

상업이 발달한 국가 혹은 도시에서 공화국이 시작되었음을 볼때,나는 아고라(상업시장)가 발달한 국가가 공화국으로 이행되는 중요한 인과관계라 지목함.

하여 반대로 충분히 아고라가 발전하지못한나라에서는 공화국이 좌초될수밖에 없는데,그 예로 프랑스혁명을 들수있음 

프랑스혁명의 기원은 삼부회에서 부르주아의 반기로 촉발되었지만 그 전체적인 양성은 시민혁명이라기보단 중국의 농민반란에 가까웠다.

그래서 혁명의 주체적인 운동력은 베르사유에서 호화롭게살던 부재귀족(봉토를 관리하는 사람을 지방에 두고 자신은 서울에서 따박따박 지대를 받아 사치를 부리는 족속)들에게 

착취당하던 농노들이였으며, 그렇게 세워진 혁명의 가치는 경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여 다원주의를 요구하는 지롱드파를 물리치고 

로베스피에르를 위주로한 교회와 귀족들에게서 몰수한 국유재산의 불하를 외친 극좌 자코뱅당의 정권장악으로 이어지게된다.

만약에 프랑스가 네덜란드나 영국처럼 소작농보다 도시 노동자가 많았던 나라였다면, 상업의 비중이 농업보다 컸더라면 자코뱅은 집권할수없었을것임 

그랬더라면 자본가,은행가 등 상업주체들의 이해관계가 혁명에 포함되어 부자와 빈자를 아우르는 다원주의 즉 자유주의정치로 나아갔을거라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아고라(상업)의 부재가 정치에 있어서 다원주의가 아닌 억압받고 핍박받았던자들의 전유물로 이어졌고 이는 뻔한 독선으로 이어져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라는 당연한 결과를 낳게되었다.

사실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라는 명칭또한 우수운것이 통령정부가 심각한 부패와 무능으로 지탄받았을지언정 인류의 최고선인 자유를 그 누구보다 보장하려했다. 

지롱드파가 자유라는 가치를 수호하기위해 자코뱅정권에 대항하는 쿠데타를 일으킨것이지 부정부패를 기치로 내걸고 일어난게 아님으로 나는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라는 명칭은 사적유물론에 맞지않다고 사료한다. 

쨋든 나폴레옹 제정에 이르면 대다수의 농민들은 국유재산을 불하받음으로 자영농이 되었는데 이들이 바로 나폴레옹 제정과 후에 있을 제2 제정의 충실한 지지자로 남게된다.

나는 바로 이러한 점이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교해볼만하다고 생각함 2월혁명으로 다시 왕정이 무너진 프랑스는 자영농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제2제정으로 집권하게되는데

이 부분은 마치 이승만왕조를 무너뜨린 4월혁명과 이후 등장한 군사정권이라는 필연적인 역사적 법칙을 증명하는 모양새를 띄기때문임 

특히나 8월 건국선포로 만들어진 대한민국헌법에서는 소작농을 금하고있어 표면적으론 지주계급이 완전히 사라지게된다.이 점은 프랑스대혁명기와 비슷하다볼수있음 또한 자영농층이 박정희를 지지했다는것또한 나폴레옹3세와 비슷하다볼수있다.

이제 결론을 내자면 프랑스와 한국의 양국에서 드러난 역사적 사례와 기타 개발도상국들에서 보편적이라 할수있을정도로 대거 출현한 군사정권들을 보았을때 

아고라(상업)가 미약하게 발달한 국가에서는 계층이 다양하지않고 그로 다원주의적인 성격의 자유국가보다 어느 한 계층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대변하는 전체주의적의 정권이 필연적으로 등장할수밖에없다고 사료되는데,

우리나라의 군사정권또한 우연이 아니오 이 또한 사적유물론이라는 역사적 필연성에 따라 등장한것이라 할수있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과연 역사의 심판대에서 용서받을수있을까???

이 점에서 박정희의 군사정권을 필연적인 역사적 산물로 이해하는 나는 군사정권이 필연적으로 도래했을것이며

박정희는 그러한 군사정권의 한계속에서도 미성숙한 대한민국에서 경제개발을 통해 아고라를 성숙시켜나갔던바를 평가해 

감히 용서해줄수있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