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주석 만세!"

예전에 홍콩에서 일어났던 일임. 
요즘 생각해 보면 참...

1. 개요

1967년 5월부터 12월까지 홍콩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동. 처음엔 한 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쟁의에 불과했으나, 나중엔 영국의 식민통치를 타도하려는 공산주의자 및 홍위병의 선동과 테러로 인해 대규모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그 결과 경찰관과 폭탄 전문가, 소방관 등 수백명이 죽거나 다쳤고 폭동에 가담한 이들 중 수백명이 죽고 수천 명이 체포되어 법의 심판을 받았다. 이 사건은 홍콩 관리에 소홀했던 영국 정부가 경각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고 문화대혁명의 광기에 휩싸이던 중국 정계도 이 사건 이후 차츰 진정된다.

아무튼 이런 홍콩도 있었음.

묘하게 대깨문과 문치매정부까지 연상시킴.


P.S: 밑의 후일담 보면, 중국공산당은 해충 그 자체임. 저우언라이 같은 인물 빼면.

5. 후일담

  • 67 폭동은 홍콩 전역을 뒤엎을 기세였고, 노동 착취문제와 부정부패, 그리고 홍콩 정치의 비민주성을[4]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때문에 실제 나름대로의 지지를 받았기도 했지만, 친중단체들이 혁명이 성공할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하면서 중국 본토에서 떠나온 사람이 많은 홍콩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민간인들을 상대로 테러까지 감행하면서 민심에서 스스로 멀어진 탓에[5]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버렸다는 점이나 어찌되었던간에 공산당의 지원을 받았다는 점 때문에 반공 성향이 강한 일반 홍콩인들 사이에서 평가는 좋지 못하다. 67폭동 이후로 친중단체들의 세가 급속히 약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홍콩 사회의 변화에 이바지하면서 홍콩인들의 삶의 질을 크게 올리는데 큰 영향을 끼친 역사적인 사건임은 분명하기 때문에, 67폭동을 단순히 친중단체들의 폭동만으로 보기에는 부당하다는 재평가론도 있다.
  •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 홍콩 행정장관 퉁치화는 67폭동을 계획한 융퀑에게 대자형훈장(大紫荊勳章)을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융퀑과 함께 1997년과 1999년 사이에 이 상을 수여받게 되는 촹시핑(莊世平, Chuang Shih-ping), 응홍문(吳康民, Ng Hong-mun), 리착팀(李澤添, Lee Chark-tim)은 67폭동 당시 투쟁위원회 위원이었다. 67폭동 당시 투쟁위원회 위원에 훈장을 수여하는 것에 대해 몇몇 홍콩인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 2015년에는 홍콩 경찰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이전에 있었던, 67폭동 당시 친중 좌익들의 행패에 대해 기술한 내용을 삭제하고 폭동을 홍콩 전 주민들의 저항인 것처럼 기술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결국 예전 서술로 복귀되었다.
  • 2017년 5월 7일, 67운동 연구협회와 노동총연맹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폭동에 참가했다가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여했다.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우량싱 부총재도 이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폭동 참가자들을 영웅이라고 칭하며 "나는 사회가 67 운동의 역사적 진실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중앙위원회에게 "1967년 폭동"이란 단어를 삭제하자고 제안했고, 이 제안은 중앙위원회에 의해 "매우 가치있다."고 간주되었다.
  • 중국 교육부는 2017년 중학교 교과 내용에 대한 공공 상담을 시작했다. 행정부는 67폭동을 커리큘럼에 포함시키는 제안을 채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