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유 노 가도?

가도는 광해군 시절 아픈 역사가 있는곳입니다.

일단, 가도는 
평안북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냥 한반도의 특별할거 없는 부속도서인 이 섬이, 한때 역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적이 있는데, 이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합니다.

때는 16세기서 17세기로 옮겨가던 때, 산해관에서 근무하던 모문룡이라는 사람은 이제 심양과 요동이 후금에게 점령되자, 휘하 군대를 이끌고 조선의 의주에 있던 명나라 패잔병들을 규합해 후금군과 소규모 승리를 거두었으나, 후금이 5천의 군대를 이끌고 공격해오자, 잠시 후퇴하여 전열을 다듬습니다.

이듬해 1622년, 광해군은 이 가도에 주둔하라고 권유하였으며, 모문룡은 흔쾌히 승낙하여 약 1만의 휘하 명나라 사람들을 이끌고 가도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가도에 들어간 모문룡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가도가 척박한 땅이라, 식량을 자급자족하기 어려웠는지, 명과 조선으로부터 돈과 식량을 지원받았는데, 이로는 부족했는지 조선에 상륙해 식량을 약탈하거나, 정묘호란 이후 변발당한 조선인들의 목을 베 후금인인척 속여 조정에 올려 명으로부터 전과를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악인이 있으면 영웅도 있는법, 명의 장군 원숭환은 1629년 그를 후금에 대해 의논한다며 토론에 그를 초청합니다.
그리고 모문룡이 회담장에 들어가자마자, 원숭환은 그를 체포하고, 그를 참수해버립니다.

모문룡을 참수한 원숭환은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를 격퇴시킨 명의 영웅임에도 불구, 모함을 쓰고 이듬해 1630년 참수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