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생존자의 주관적인 시선이 다분히 들어가 있습니다. 보기싫으면 꺼지던가.


지금 인터넷 커뮤니티의 수도는 어디일까? 

지금은 윾식이가 스스로 좆창질을 해서 고꾸라졌지만, 아직까진 디씨라고 해야할 것이다.

물론, 곧 아카가 따라잡을꺼라 믿습니다. 충성충성 ^^7


하지만 이 이야기는 디씨말고 웃대, 엽혹진 등이 디씨와 자웅을 겨루던 시절의 이야기며

그리고 루리웹이 근첩 소리를 듣기 전이자 오유와 일베가 부상하던 때의 이야기도 하며

지금은 익숙한 펨코나 뽐뿌 등은 듣보잡일 때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무위키가 아닌 엔젤하이로 위키였을 때 이야기이기도 하겠다.


근데 솔직히 이 이야기 하려면, 2008년이 아니라 그 전으로 더 가야함.

언제로? 바로 사챈 갤주 취임식 때로 가야한다.

왜냐, 바로 노사모란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노사모와 선거운동 중인 MC무현)



사실 노사모 이전에도 정치인을 지지하는 세력은 있었다.

그런데 왜 노사모가 계속 회자되는가? 노사모는 대한민국 최초로 인터넷을 통해서 창설된 정치인 팬카페였기 때문이다.

노사모는 여태까지 지지단체와 다른 행보를 보였는데, 

여태까지 수동적으로 홍보를 해왔던 타 지지세력과 다르게 이들은 능동적으로 노무현을 홍보했고

그 결과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됐다.



(취임식에 손을 흔드는 노무현)


근데 당시 인터넷 환경은 대체 어땠길래 노사모가 활동을 잘 할 수 있었을까?

이거 2002년인데 PC통신이었던건 아닐까?

2008년이 대한민국 커뮤니티의 분수기였다면, 2002년은 대한민국 포털 사이트의 분수기였다.

지금은 하라보지 따라간 야후가 존재했고 네이버는 2인자였다. 1인자는 누구였냐고? 사실상 카카오인 '다음'이였다.

사실 네이버가 잘 써먹고 있는 카페도 다음이 처음 만든거임 ㅋㅋㅋ

이 당시에 네이버는 카페? 어림없지 ㅋㅋㅋ

여튼 이 카페 시스템 덕에 노사모 그러니까 친노 네티즌은 쉽게 인터넷에서 활동하며 지지세력을 늘릴 수 있었지.

당시 라이벌인 이회창이야 그런거 신경안썼고...


자, 뭐 여기까지 보면 그냥 노무현의 성공스토리겠는데...

여기서 끝나면 인터넷 대전쟁이겠노? 

노사모의 절류한 위력 그리고 2003년 네이버의 카페 시스템 등장으로 인해 인터넷에는 온갖 시민단체가 둥지를 틀게된다.

근데 여기서 놀라운건 대부분 진보계열이란거야. 

봐봐 당시 겨우 2000년대 초반인데 컴퓨터를 만지는 계층은 10대에서 30대야.

40대부턴 좀 어려워했다고.

슬슬 답이 좀 나오지? 당시 인터넷에 둥지를 튼 시민단체 중 보수계열은 전무했지. 너무 낮서니까.

하지만 진보계열 시민단체는 자리를 아주 착실히 잡아갔고, 

그 결과 가카가 등장하기 전까지 대한민국 인터넷은 사실상 좌파 일색이었다. 라고 봐도 돼. 


1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