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전한 자유를 추구한다
하지만 현실적 한계 앞에선 완전한 자유는 누리기 힘들겠지
그렇지만 그 사실을 알지라도 움직이는걸 멈출 수는 없다. 그래야만 하니까. 때론 실패하리란걸 알아도 도전은 계속되어야만 하는것이기에.


나는 사람들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육체적, 정신적 자유를 되돌려주고 싶다.
그러나 육체적 자유를 주기엔 현재론 힘들다. 나 자신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데.
사람은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끊임없이 예속된다. 사람이 나고 살아가는한 끊임없이 외부 환경과, 사회와 타인들과, 심지어 삶 그 자체에게까지 끊임없이 휘둘린다.
사람은 선택하기 위해 대가를 바쳐야 하고, 살아가기 위해 먹고 자고 노동해야만 한다. 그게 싫은 사람도 어쩔수 없이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게 되니까. 나는 이걸 생의 압제 라고 부른다. 생의 압제가 있는 한 사람은 진정으로 육체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검열없는 세상을 꿈꾼다.
그들에게 정신적 자유라도 되돌려주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예속된 이들에게 다른 방법으로도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 모든 정치, 이념, 종교, 심지어 도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시각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터부, 금기조차도 막을 수 없는 진실이 세상 이면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나를 급진주의자, 익스트리미스트라고 불러도 좋다. 내지는 근본주의자, 펀더멘털리스트라고 불러도 좋다.
이게 내가 자유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자유와 부자유? 사슬의 유무. 얽매이던가, 아니면 얽매이지 않던가. 난 그것으로 구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