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라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짚고 시작하자. 일단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 그러니까 최소한 민주주의를 법에서 표방하는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의 사회 계약론을 그 근간에 두고 있다. 홉스의 사회 계약론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의 저서이자 지금은 고전이 된 [레비아탄(Leviathan)]을 읽는 것이 좀 더 좋겠으나,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국가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장치이자 개인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면 사고실험이 필요하다. 우선 사고실험실에 지구를 그려 넣는다. 지구 안에는 인간이 있다. 인간에게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따라붙는다. 첫째, 인간은 대부분 비슷하고, 둘째, 인간은 합리적이며, 셋째,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며 우리는 그런 이들을 "천재", 혹은 "성인", 혹은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들은 무수히 많은 인간의 사회 자체를 개인의 힘으로 뒤집을 능력은 없다. 따라서 이런 거대한 군체를 놓고 하는 사고실험에서는 배제하는 것이 옳다.


처음에는 모든 인간이 다 능력이 비슷하고, 이기적이기에, 서로 상대방의 것을 완력이나 속임수로 빼앗으려고 한다. 그것이 직접 구하는 것보다 쉽고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합리적이기에,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아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것을 타인이 힘으로 빼앗거나 속임수로 갈취하는 것을 싫어한다. 결과적으로 모든 인간은 남의 것을 빼앗는 동시에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서로에게 "투쟁"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라고 부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합리적이기에 어떤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남의 것을 아무리 많이 빼앗아도 결국 남과 능력이 비슷하므로 남이 나만큼 나에게서 똑같이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대부분의 인간은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자신의 것을 지키는 것이 더 이득이 된다고 판단하였으며, 이로서 대부분의 인간 사이에서 "서로 빼앗지 않고 뺏기지도 않는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의 것을 빼앗는, 말하자면 분위기를 깨뜨리는 '별종'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이런 별종을 통제하기 위해 자신의 것을 조금씩 떼어 모아서 별종을 쫒아가 때려 주고 물건을 도로 가져다주는 사람, 현대식 언어로는 "경찰"을 만든다. 공권력이 탄생하는 것이다. 실제 [레비아탄]을 읽어 보면 이보다는 좀 더 복잡하지만 아무튼 이것과 비슷한 논리로 국가의 존재를 설명한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것을 공권력에 주고, 공권력으로부터 보호와 안전을 보장받는 이른바 "사회적인 계약"을 하게 된다. 이 계약으로부터 벗어날 경우 안전과 보호의 혜택을 누릴 수 없으며, 언제든지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개인에 의해 재산, 혹은 생명까지도 빼앗길 수 있다.


실감이 안 난다면 소말리아를 보면 된다. 소말리아의 현 정부는 붕괴되었고 국가는 국가로서의 능력을 상실했다. 북부에서 소말릴란드라는 신흥 국가가 자신의 지배권에서는 능력을 행사하고 있으나, 여전히 빈민가, 해안 슬럼, 혹은 망망대해에서는 강도와 해적이 활개를 친다. 그곳에 떨어지면 재산이나 생명을 멀쩡히 간수한 채 빠져나올 능력이 되는 사람이 몇 없다.


즉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국가라는 것은 무수한 개인들의 권익과 생명,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소셜 매커니즘이며, 좀 더 강하게 말한다면 형체가 없고 법이라는 이름의 글귀와 정치라는 이름의 인간 간 교류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계이다.


이 이론에 의거한다면, 국가는 철저하게 개인들 중 다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모든 개인들의 의견이 일치될 수 없는 이상, 가능한 많은 개인들의 의견이 가리키는 쪽으로 가는 것이 기계에게는 옳다는 이야기이다. 1명의 불만이 있더라도 100명의 권익과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기계가 100명의 불만을 자아내며 1명의 권익만을 보호하는 기계보다 더 합리적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숫자놀음이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대개의 경우, 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제도는 민주주의이며, 모든 국가가 민주화되는 것이 인류에게 있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이러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100% 부합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상술했듯이 민주주의가 현존하는 모든 제도 중 "가장 합리적"인 것은 틀림없이 사실이지만, "완전 합리적"인 제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모두가 0점인 교실에서 50점을 맞았다고 해서 그 학생이 시험 내용을 100% 다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이유는 상술한 이 국가라는 기계를 구성하는 강력한 요소 중 하나인 정치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