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정치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 존재다. 민주주의와 정치는 대척점, 그것도 완전히 정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이다. 오로지 국민의 뜻에만 맞춰서 권력 부여를 한다면 어떻게 권력을 놓고 암투하여 쟁취하는 개념인 정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으며, 권력을 놓고 개인이 암투하여 권력을 쟁취하는 개념인 정치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국민이 그들에게 권력을 부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아시다시피,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전술했던 "사회 계약론"에서는 모든 인간에게 "합리적"이고 "이기적"이고 "다들 비슷"하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모든 논리를 전개했다. 그러나 이 3가지의 가정에서는 강력하게 간과한 요소가 현실에는 있다. 바로 "광기", "집단 이기성", "사회적 권위"이다.


"합리성"에 대척되는 것은 "광기"이다. 이 광기는 단순히 미친 사람이 부리는 히스테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개인의 알량한 자존심이나 복수심, 분노, 그리고 심지어 어리석음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것이 개인의 철저한 합리성을 배재시킨다. 간단한 예시로, "나라 다 팔아먹어도 새누리당", "대가리 깨져도 문재인" 등이 있다. (정말로 그런 뜻은 아니겠지만) 나라 다 팔아먹었으면 다른 당을 찍는 것이 합리적이고, 대가리 깬다고 하면 그 사람 안 찍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집을 피우며 자신에게 손해가 오더라도 필사적으로 밀어붙인다. 이것이 바로 광기이다.


"이기성"에 대척되는 것은 "집단 이기성"이다. 분명 둘 다 이기성인데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면, 단순 이기성은 내 것을 빼앗기기는 싫은데 남의 것은 탐내는 것이고, 집단 이기성은 우리 것을 빼앗기기는 싫은데 저들의 것을 탐내는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는 보통 이기성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가벼운 문제로 넘어가지만,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다가오면 본격적으로 부작용을 일으킨다.  대표적으로 님비현상과 핌피현상이 있다.


"유사성"에 대척되는 것은 "사회적 권위"이다. 국가가 없던 시절에는 사회가 없었거나 아주 초보적인 것이었기에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어떤 개인이 등장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국가가 수립된 이후부터는 사회적인 권위가 생기게 된다. 1,000명의 개인이 말하는 것보다 1명의 개인이 말하는 것이 더 사회적 파급력이 크고 강할 때가 생긴다는 말이다. 1,000명의 개인이 각각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은 조작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간단한 해프닝으로 넘어가지만, 미국 하버드의 교수가 혼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은 조작이다!"라고 말할 경우 그 파급력은 전 세계에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그 한 명의 교수와 1,000명에 소속되는 개인 중 한 명이 결코 유사하다고 할 수 없다.


바로 이 세 가지가 민주주의에서 정치가 가능케 한다. 분명 정책을 훌륭하게 할 수 있는 인물이라도, 만약 선거 상대가 전체 유권자의 50%에 이르는 지지자들로부터 광기를 통해 지지를 받는다면 절대로 그 상대를 이길 수 없다. 이론적으로는 전 국민이 캐스팅 보트인 것이 민주주의인데, 왜 콘크리트 지지층이 존재하고 캐스팅 보트 계층이 존재하는가? 그것이 바로 광기이다.


집단 이기주의 역시 마찬가지의 문제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만약 1,000명이 999명의 재산을 원한다면, 정치인은 그 999명으로부터 전 재산을 강탈하여 나머지 1,000명에게 분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999표를 버리고 1,000표를 얻는 것이 더 합당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민주주의에서는 문제가 될 일이 아니다. 분명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상술한 광기와 겹쳐지면 무서운 현상을 일으킨다.


사회적 권위 역시 마찬가지이다. 10,000명의 시민이 맞는 말을 한다고 해도 명문대 교수 1명이 돈을 받아먹고 틀린 말을 한다면 100만 명, 1,000만 명이 틀린 말을 믿고 나머지 10,000명을 틀린 것으로 매도한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자신이 다수에게 득이 되는 말을 하는 것보다, 자신에게만 득이 되는 말을 한 다음 사회적으로 권위 있는 사람에게 돈을 먹이고 자신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로서 대중에 대한 "선동"이 이루어지며, 이는 유권자들의 광기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무기로 기능하면서 "포퓰리즘(Populism)"으로 이어진다.


정치인은 이 3가지를 무기로 휘두르며 정치를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대 민주주의의 실체요, 민주국가가 썩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