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론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사상은 없다. 모든 사상은 이론적으로는 완벽하다.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독재주의도, 심지어 무정부주의도, 전체주의와 식민 제국주의도 이론적으로는 완벽하다. 그러나 세상 그 어떤 사상도 현실에서 완벽하게 기능하지 못한다. 그것은 모든 사상이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서 어떤 가정을 전제하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가령 공산주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 비약하자면) 자본가들은 철저하게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이득을 보는 존재, 노동자는 착취당하며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선량한 다수라고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처음 태동한 러시아에서는 이게 사실이었다. 러시아 제국은 산업화되었기는 했지만 여전히 중세식의 봉건제가 남아 있었던 나라였고, 적어도 산업 시대에 봉건제보다는 공산주의가 사람 살기엔 낫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노동자 자체가 절대적인 권력을 독점하기 시작하자 그 노동자를 대변하는 공산당에서도 절대 권력자가 나타났고 결국 총체적으로 속에서부터 썩게 되었다. 만약 노동자가 공산주의의 전제대로 "완벽하게 선량한 존재"라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가가 이득을 보기 위해 돈을 투자하고, 이 투자를 통해 공장과 회사가 지어지며, 여기에 노동자가 고용되어 자본을 분배한다고 설명한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했지만, 자본가가 이득을 보기 위해 돈을 투자했는데 그게 투자 종목이 망하면 자본가 밑에 있던 노동자들이 일제히 실업해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모두 한꺼번에 자본을 상실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것이 20세기 초 세계를 휩쓸었던 대공황이다.


민주주의에게도 이런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그 세 가지의 변수를 민주주의는 계산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략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선거에서 전략이 등장한다.


실제 정치 선거 전략은 매우 복잡하지만, 좀 단순화시키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우리에게는 25%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 국민 중 이 콘크리트 지지층을 포함해 74%는 버려도 된다. 나머지 26%만 잡아두면 이 26%가 우리를 찍을 것이고, 저 25%는 손해를 보건 말건 버려지건 말건 우리를 찍는 존재이므로 51%의 득표율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26%를 잡을 만큼만 돈을 쓰면 된다."


이런 식으로 전략을 짜니, 총 국민 중 실제로 이 정당을 통해 혜택을 보는 국민은 고작 26%다. 그리고 여기서 이 26%의 계층이 단순한 무작위 선출 비율이 아니라 집단 이기성을 띠는 집단이 된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26%의 국민이 살고 있는 대도시가 있다면, 이 정당은 그 대도시만 집중적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했을 때, 이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전 국토를 키우겠다고 선언한 후보를 이겨버릴 수 있다. 저 26%의 국민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대도시에만 개발을 강행하면 나머지 계층은 매우 강력하게 반발하지만, 이 26%가 (정당이 직접 해명할 필요 없이) 다른 계층의 비판과 반론을 알아서 철저하게 받아쳐준다. 이것이 집단 이기주의다.


대한민국의 문제점 역시 이런 곳에서 나온다. 어느 지방이기 때문에, 어느 대학 출신이기 때문에, 어느 부모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어느 사회 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인해서 무능한 사람을 맹목적으로 지지한다. 무능한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일을 했어도,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훌륭한 사람의 자식이라도 안 찍는 게 민주주의에서는 합리적이다. 하지만 광기가 그걸 현실화시킨다.


각 계층이나 정치적 집단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더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설명하겠지만, 일단 민주주의에서 이렇게 비이성적인 패턴이 보이기 시작하면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과가 과정을 삼켜 버린다. 정치인들에게 당선되는 것이 목표인 것은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없으나, 이러한 비이성적인 패턴을 이용해서 당선되는 것은 틀림없이 당선 이후에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이다. 즉 당선을 위해 비이성적인 패턴을 이용하는 정도까지는 눈감는다고 가정해도, 그런 비이성적인 패턴을 직접 일으키는 경우에서부터는 국론 분열과 사회의 불신만을 불러일으키는 악재로 작용하게 된다. 이렇게 직접 비이성적 패턴을 불러일으켜 자신의 지지층을 확보하는 행위를 이른바 갈라치기라고 한다.


쉽게 말해, 1,000명이 999명의 재산을 빼앗아 달라고 징징거리는 상황을 이용하는 것까지는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묻기 곤란하지만, 1,000명에게 999명을 가리키며 "저들의 재산을 뺏어주겠다!"라고 선동하는 것부터는 정치가 국가를 삼키는 악재라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자체의 모순이고, 국민 스스로의 자정작용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다. 다른 해결책이 뚜렷하게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이 엄청난 문제점을 감수하면서도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하는 이유 역시 이런 비이성적 문제를 막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