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7재보궐선거 당시 국민의힘은 ‘이대남(20·30세대 남성)’의 압도적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지 결론 내리지 못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이들은 30대 이준석을 당 대표로 만들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쓰러져 가던 보수당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신진 세력, 우리는 그들을 무어라 정의해야만 했다.


기존 세대는 간편하게 반(反)페미니즘으로 규정했다. 그리고선 이대남은 반페미, 이대녀는 친페미로 잡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뜨거운 아이스커피’를 만들겠다는 전략이었다. 그 결과, 이대남·이대녀 모두 지지율이 폭락했다. 이유조차 모를 것이다. ‘복어요리’가 어디 쉬운 일인가?


‘친페미로 이대녀를 잡겠다’는 당 선거대책위원회의 전략은 처참히 실패했다. 몇몇 여론조사를 보면,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영입한 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20대 지지율은 폭락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지지율은 올랐다. 이대남과 이대녀는 모두 공평히 윤 후보를 버리고 떠났다.


왜 그랬을까? 처음부터 잘못 분석했다. 이대녀가 모두 페미니스트일 것이라는 착각 말이다. 이대녀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20·30대 여성은 몰카·‘n번방’ 등 성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고 싶은 본능이 강할 뿐이다. 하지만 선대위는 이대녀가 바라는 안전과 보호의 요구를 일괄 페미니즘으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많은 사람이 여성을 보호해 줘야 한다는 주장을 페미니즘으로 오해한다. 틀렸다. 실제 페미니즘은 ‘여성보호’를 온정적 성차별주의라고 비난한다. 또 헌법상 모성보호 의무를 성차별적이라며 삭제하려 한다. 그래서 이대녀의 보편 정서는 정통 페미니즘 사상과 거리가 멀다.


다시 4·7 재보궐선거로 돌아가보자.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한 여성 표는 20대가 40.9%, 30대가 50.6%나 됐다. ‘박원순·오거돈 성폭력 사건’을 심판하기 위해 국민의힘으로 결집한 결과다. 여성가족부 폐지에 찬성한 여성도 40%에 육박했다. 진영 논리에 매몰돼 성폭력피해자 보호에 소홀히 한 부처의 무능 탓이었다. 모두 ‘보호 요구’의 문제였지, ‘여성해방 논리’와 하등 관계가 없었다.


20·30 여성의 보편적인 정서는 ‘확실한 안전과 보호의 요구’다.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남녀의 기계적 평등’이 아니다. 그래서 이대녀 절반은 4·7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을 심판했고 여가부 폐지에 찬성했다. 하지만 선대위는 그걸 몰랐다. 젠더 갈등을 단순히 이대녀의 친페미 대 이대남의 반페미 구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실패했다.


이대녀는 이미 페미니즘으로 묶기 힘든 커다란 공백이 존재했다. 단지 압도적인 이대남 현상에 가려졌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4·7재보궐선거는 반페미니즘을 통한 이대남만의 승리가 아니었다. 반(反)공정세력과의 싸움을 통한 청년 모두의 승리였다.


지지율 위기를 겪고 있는 ‘윤석열 선대위’가 반등할 방법은 하나다. 먼저 청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평가가 우선돼야 한다. 우리를 승리로 이끈 필승 공식을 깨우쳐야 한다. 그것만이 정권교체를 위한 유일한 해법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국회의원


역시 갓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