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한국 대선이 사상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 될 거라는 말이 많지만, 사실 그 원조격은 2016년 미국 대선입니다. 한국 선거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게 바람직하다는건 당연히 아니지만, 그래도 이 글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그나마 한국은 양반(?)이라고 느껴지실 겁니다. 2016년 미국 대선은 좀 과장을 덧붙이자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선거라고 할 만 합니다. 힐러리와 트럼프의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은 민주주의를 채택한 전세계 문명국가들 중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막장 드라마였습니다. 
 
 
후보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힐러리-트럼프 조합과 이재명-윤석열 조합의 공통점에 대해서 잠깐만 짚고 넘어가자면,
 

<힐러리와 이재명의 공통점>
 
- 집권당의 대선후보였습니다. 
 
- 집권당의 대선후보 지지율이 현직 대통령 지지율에 미치지 못했던 상황. 그 당시 오바마의 임기말 지지율은 55~60%였는데 힐러리 지지율은 그보다 한참 낮은 40~45% 정도였습니다. 
 
- 힐러리는 이메일 게이트 FBI 수사로 목줄이 묶여 있었고, 이재명은 대장동 의혹으로 검찰에 목줄이 묶여 있습니다. 이메일 게이트가 터지면서 힐러리가 외교안보를 책임지는 유능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는 박살이 나버렸고, 대장동 의혹이 터지면서 이재명의 유능한 행정가라는 이미지는 크게 타격을 입었습니다. 
 
- 당 지도부가 경선 과정에서 편파적으로 유리하게 경선 룰을 운영. 미국의 정당은 원내대표 중심으로 당이 굴러가는 대신, 한국의 당대표가 하는 역할을 전국위원회에서 주관하는데, 민주당 전국위원회 (DNC)는 대놓고 편파적으로 힐러리 편을 들면서 경선에 개입했습니다. 민주당 송영길 지도부가 이재명을 위해 사사오입해준 것과 비슷한 상황. 
 

<트럼프와 이재명의 공통점>
 
- 말도 안 되는 정책과 공약을 남발하는 포퓰리스트입니다.
 
- 일단 찍고 나서 모든걸 부수고 리셋하자는 정서가 지지층을 지배합니다. 
 
- 여성 비하적인 내용이 담긴 육성 녹음파일이 공개되어 곤혹을 치렀습니다. 
 

<힐러리와 윤석열의 공통점>
 
- 경선 초기까지만 해도 무난하게 대선후보가 되는 줄 알았는데, 청년층의 지지를 받는 다른 대선후보가 뜨면서 (힐러리의 경쟁자는 샌더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가까스로 겨우 승리하고 본선에 올라온 상황이 비슷합니다. 
 

<트럼프와 윤석열의 공통점>
 
- 말을 막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윤석열은 그냥 말을 필터링거치지 않고 막하는 실언에 가깝고, 트럼프는 철저한 표 계산에 의한 의도적인 특정집단 비하 발언이라는 점.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트럼프의 막말은 어나더 레벨입니다. 
 
- 정치와 선거 경험이 없는 아웃사이더가 갑자기 정당에 들어와서 경선을 치르고, 정당의 기존 지지자들을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만들면서 경선에서 승리합니다.
 
- 트럼프의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도 과거에 성매매를 했다는 의혹과 황색 언론의 흑색 선전 때문에 큰 곤혹을 치렀습니다. 그래서 임기 동안에도 나대지 않고 뒤에서 숨는 스타일이었고, 오히려 진짜 영부인 역할은 이방카가 맡아서 했습니다. 
 
 
본론으로 넘어갈게요.
 

힐러리의 가장 큰 족쇄는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을 공적인 일에 사용했다는 내용의 이메일 게이트였습니다. 국무장관이 보안용 이메일을 쓰지 않고 개인용 이메일을 쓰다가 해킹을 당하면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 때문에 기소되면 실형을 살 수 있는 혐의였습니다. FBI는 수사에 착수했지만, 수사 개시 직전에 힐러리의 측근들이 이메일을 전부 검토하고 일부 내용을 지운 채로 제출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고, 수사 도중 빌 클린턴이 FBI 요원과 회동을 나누는 장면이 포착되어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FBI는 수사 끝에 힐러리가 극도로 부주의한 실수를 저질렀으나 고의성은 없었다고 결론을 내고 불기소를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힐러리가 사법 특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트럼프는 본선에 진출하기 전부터 이메일 게이트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힐러리를 사기꾼, 위선자로 몰아세웠습니다. 그래서 트럼프의 유명한 선거 캠페인 구호 중에 하나가 Lock Her Up (그녀를 감옥으로) 였습니다. 아마 Make America Great Again 다음으로 많이 써먹은 구호가 Lock Her Up 이었을 거에요. 
 

트럼프가 경선 초반에 유명해진 건 여성을 향한 수많은 막말 때문이었습니다. 트럼프가 선거에서 이기고 나니까 과거 발언들이 사이다 발언이다, 페미니즘이나 PC에 대한 저항이다, 이렇게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트럼프의 여성 비하 발언들은 그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폭스뉴스 여성 앵커에게 머리가 비었고, 피가 나오면 객관성을 잃는다며 여성의 생리를 조롱했고, 자신을 비판한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에게는 개의 면상을 하고 있고, 여성 코미디언에게는 지방 낀 게으름뱅이라고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트럼프는 경선때 경쟁자인 테드 크루즈의 지지자들이 자신의 부인인 멜라니아의 누드 사진을 선거 캠페인에 사용하니까, 그에 대한 반격으로 테드 크루즈의 부인 면상이 더 못생겼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습니다. 공화당의 다른 경선 경쟁 후보인 칼리 피오리나를 향해서는 "저런 얼굴에 누가 투표를 하냐"면서 또 외모 비하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경선 유세장에서 트럼프는 자신을 공격한 린지 그레이엄 후보의 휴대폰 전화를 공개해서 지지자들한테 사실상 전화 테러를 지시합니다. 그거 듣고 빡친 린지 그레이엄은 휴대폰을 골프채로 때리고, 칼로 자르고, 믹서기에 넣어서 갈아버리는 엽기적인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경선을 통과한 트럼프는 본선에서도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했습니다. 때마침 민주당 경선 전당대회 직전에 위키리크스가 힐러리와 민주당 지도부의 이메일을 해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위키리크스는 DNC 인사들이 샌더스한테 불리하고 힐러리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경선에 개입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공개했는데, 이에 분노한 샌더스 지지자들은 전당대회장에서 항의 시위를 열었고, 트럼프는 힐러리한테 복수하려면 자기한테 투표하라고 샌더스 지지자들을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힐러리 측은 이게 러시아 쪽에서 힐러리의 낙선을 사주하기 위해 트럼프 측과 짜고 해킹 공격을 한 거라고 반격하면서 트럼프-러시아 유착설을 제기했고, 이는 트럼프 집권 이후 특검과 탄핵의 단초가 된 러시아 게이트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대선 전에 이슈가 된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가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서 매춘부에게 소변을 누는 골든샤워 성관계 동영상이 존재하고 그걸 러시아 정보기관이 갖고 있는거 아니냐는 음모론 성격의 의혹이 당선 직후 제기되었습니다. 트럼프는 집권하자마자 러시아 게이트 특검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선에서 트럼프가 힐러리의 이메일을 정조준했다면, 힐러리는 트럼프의 막말을 정조준했습니다. 트럼프의 막말은 여성만을 향한게 아니었고, 히스패닉, 아시안, 무슬림, 심지어 군인 전사자 가족에게도 향하고 있었습니다. 트럼프의 가장 심각한 막말은 이라크 전쟁에서 숨진 무슬림 군인 전사자 가족을 향해 퍼부은 조롱이었는데, 이게 엄청난 역풍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군인 전사자 가족에 대한 막말이 터지자 트럼프의 지지율은 크게 휘청였고, 타임지는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이 녹아내리고 있다 (Meltdown)이라는 표현을 쓰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대로 힐러리가 승기를 잡았냐 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힐러리의 클린턴재단 관련 비리 의혹이 터졌습니다. 국무장관 시절 인맥을 맺은 전세계의 독재자들, 재벌들, 사업가들이 클린턴재단에 수억 달러의 기부금을 출연하는 대가로, 외교적 특혜를 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었습니다. 최순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의 글로벌 버전이라고 보면 됩니다. 미국 내 대기업들의 고액 기부금과 강연료 논란, 바레인 왕실과의 유착 관계, 러시아 기업의 우라늄 광산 채굴권 특혜 문제 등 온갖 부정부패 의혹들이 제기되었습니다. 트럼프는 힐러리가 사적 이메일을 쓴 이유가 공용 이메일을 쓰면 클린턴재단으로 뒷돈 받아먹지 못하니까 그런거 아니냐면서 두 의혹을 묶어서 맹공을 가했는데, 실제로 이메일 게이트와 클린턴재단 의혹이 한데 묶여 시너지를 일으키니까 파급력이 엄청났습니다. 클린턴재단 의혹이 터졌을때 힐러리의 비호감도는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2016년 미국 대선 네거티브의 한 축은 외곽에 있던 황색 언론들의 네거티브였습니다. 그때까지는 가짜뉴스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고, 그냥 닥치는대로 다 보도하고, SNS로 퍼나르고, 지지자들이 믿어 버리는 그런 구조였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 쪽에선 트럼프의 부인인 멜라니아가 모델 시절 성매매를 했다는 내용의 의혹이 돌았는데 대선이 다 끝나고 나서야 허위사실로 판명이 났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 역시 힐러리와 민주당에 대한 수많은 네거티브를 쏟아냈는데, 힐러리가 레즈비언이다, 사탄신봉자다, 오바마도 동성애자다, 미셸 오바마는 사실 남자다, 이런 황당한(?) 공격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건 트럼프 지지자들 중 상당수는 그걸 믿었다는 겁니다. 
 

음모론 중에서 제일 수위가 높고 자극적인 공격은 피자게이트였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을 비롯한 민주당 고위급 인사들이 워싱턴DC에 위치한 한 피자 가게에서 아동 인신매매와 아동 성착취, 성매매, 학대 및 살해를 즐기는 악마 숭배자들의 모임이라는 의혹이었습니다. 사실이 아니었지만 실제로 이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트럼프 측은 이 음모론을 퍼뜨리는 음모론자들의 트윗을 리트윗하는 방식으로 선거에 활용했습니다. 한 트럼프 지지자가 그 피자 가게에 난입해 총기 난사 테러를 자행하는 일도 있었고, 난데없이 피자게이트의 주범으로 지목당한 애꿎은 시민들 (ex. 피자가게 주인)이 살해 협박을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편, 대선을 2달 앞두고 힐러리의 건강 이상설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9.11 행사가 끝나고 차를 타는데,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이면서 쓰러지는 영상이 공개되었거든요. 곧바로 트럼프는 힐러리처럼 체력이 약하면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다면서 힐러리를 조롱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는데요. 
 

힐러리가 다시 공개석상에 나타나자 힐러리가 아닌 힐러리와 비슷하게 생긴 대역이 대신 돌아다니고 있는거 아니냐는 의혹이 추가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 심지어는 힐러리는 이미 사망했고, 힐러리 대역이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돌 정도였습니다. 레딧 같은 사이트에서는 힐러리가 한명이냐, 두명이냐, 4명 아니냐, 도대체 어느 힐러리가 진짜냐, 힐러리가 사람은 맞느냐, 뜨거운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며칠 뒤에 토론회에 진짜(?) 힐러리가 등장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됩니다. 
 

힐러리가 위기에 빠지니까 이번엔 친민주당 계열 언론들이 트럼프를 향한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10월 2일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거액의 세금을 회피했다는 탈세 의혹을 보도하면서 대선판을 뒤흔들었습니다.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한 재력가가 소득세를 0원 낸게 말이 되느냐면서 공세를 퍼부었는데, 트럼프는 "내가 똑똑하니까 그런거다", "탈세가 아니라 절세다", "힐러리는 여태까지 법 안 고치고 뭐했냐" 이런 식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실제로 그런 논리가 지지자들한테도 먹히더군요. 
 

그래서 언론들은 또 하나의 메가톤급 이슈를 터뜨렸습니다. 10월 7일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여성 비하(Grab them by the pussy) 음담패설 녹음파일과 & 유부녀 성폭행 시도 자백 파일을 폭로해 트럼프한테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트럼프의 음담패설 파일 내용은 미국 선거 역사상 언론에서 가장 많이 보도되고, SNS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논란이었습니다.
 
여태까지 트럼프는 수많은 여성 비하 발언에도 사과하지 않았지만 이 발언은 파급력이 너무 컸기 때문에 사과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었고 결국 트럼프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화당의 경선 후보들과 전직 대통령들이 대거 지지를 철회했고, 부통령 후보였던 마이크 펜스도 등을 돌렸고, 폴 라이언을 비롯한 공화당 지도부는 진지하게 후보 교체론을 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 직전에 트럼프의 지지율이 40% 정도였는데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터지고 나서 지지층의 3분의 1이 증발해 버렸고, 30% 이하로 지지율이 떨어진 조사들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타임지는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Total Meltdown)는 표현을 쓰면서 트럼프는 끝났다고 평가했습니다. 
 

사과를 하고 나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트럼프가 택한 전략은 선거를 역대급 막장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가는 것이었습니다. 2016년 미국 대선의 하이라이트는 음담패설 녹음파일 폭로 직후 전개된 트럼프와 힐러리의 네거티브 선거전이었습니다. 
 

트럼프는 자기는 여성을 말로 비하했을 뿐이지만, 빌 클린턴은 실제로 여성들을 성폭행하였으며, 힐러리 클린턴은 그 여성들을 입막음했다는 식으로 방어 논리를 만들었습니다. 트럼프는 빌 클린턴한테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을 데려와서 기자회견시키고, 토론회 방청석에 초대해 토론회가 난장판이 되기도 했습니다.
힐러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트럼프한테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을 공개하고 한명씩 인터뷰하면서 트럼프한테 반격을 가했습니다. 
 

선거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매일 매일 새로운 스캔들이 뉴스를 뒤덮었습니다. 하루는 트럼프의 성추문이 폭로되면, 그 다음날은 빌 클린턴의 성추문이 폭로되고, 그 다음날은 트럼프의 또다른 성추문이 폭로되고, 같은 날 힐러리의 성폭행 피해 여성 입막음 의혹도 폭로되고, 다시 힐러리 측이 또다른 트럼프 성추행 피해자를 인터뷰하고... 뭐 그런 식이었습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어디서부터가 허위인지 분간도 안 되는 막장 미투 폭로전. 힐러리 지지자들은 저렇게 많은 여성들을 겁탈한 트럼프를 악마라고 비난했고, 트럼프 지지자들은 저렇게 많은 여성들을 선거에 이용하는 힐러리가 더 악마라고 주장했습니다. 제가 살면서 여러 선거를 봤지만 살다 살다 이런 선거 캠페인은 처음 봤습니다. 
 
 
역대급 막장으로 치닫던 미국 대선은 어쨌거나 성추문 속에서 힐러리의 우세가 굳어지는 듯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선거를 불과 열흘 앞두고 FBI가 이미 무혐의 불기소 처분된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을 재수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선거의 모든 이슈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게임체인저급 핵폭탄을 터뜨렸습니다. 힐러리의 문고리 권력, 수양딸로 불리는 최측근 비서 후마 애버딘의 전 남편 안소니 위너가 미성년자와 음란 채팅을 주고받은 문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컴퓨터 안에 힐러리의 이메일이 대량으로 발견되어 재수사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선거 막판에 이메일 스캔들이 재점화되면서 힐러리는 다시 수세에 몰렸습니다. 힐러리는 FBI의 정치적 의도가 불순하다면서 방어에 나섰지만, 트럼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막판 총공격을 가했습니다. 음담패설 녹음파일 논란과 성추문 폭로전 이후 흩어졌던 트럼프 지지층은 다시 강하게 결집하기 시작했고, 선거는 예측불허의 초박빙 상황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기세를 올린 트럼프는 마지막 일주일 동안 접전주에서 힐러리를 역전하는데 성공했고, 대선에서도 최종적으로 승리하면서 이 역대급 막장 네거티브 대선의 주인공으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부정부패와 비리, 막말과 성추문, 네거티브와 인신공격, 가짜뉴스와 음모론, 극단적인 진영 결집과 수사기관의 선거 개입까지. 2016년 미국 대선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라는게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이 극한까지 갈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보여주는 선거였던 것 같습니다.  
 

힐러리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막말을 일삼고 말도 안 되는 포퓰리즘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끔찍한 광대 파시스트라고 생각했고,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이 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힐러리를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결탁한 차갑고 위선적인 악마라고 생각했고, 힐러리가 당선되면 미국이 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힐러리-트럼프 대선을 지켜보면서 미국인들의 다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호소했고, 실제로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대학가에서는 집단적으로 PTSD, 우울증 관련 심리 상담이 급증하기도 했습니다. 
 
힐러리-트럼프 대선은 미국인들에게 총기난사를 목격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겼다.
요즘 기사 헤드라인을 보면서 5년전의 헤드라인이 문득 떠올라 두서없이 글을 한번 써 봤습니다. 예전 기사들을 일일이 찾으면서 글을 다 쓰고 나니까 스트레스가 또 확 몰려오네요. 그래도 내년 우리나라 대선은 2016년 미국 대선보다는 좀 낫지 않을까 소박한(?) 기대를 해보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