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 https://www.fmkorea.com/4367466075


기축통화국 논란이 한바탕 나라를 흔들고 난 다음, 어젯 저녁 아버지와 기축통화 논란으로 약간의 언쟁을 벌였다.


여전히 낙관적인 아버지의 입장은 곧 민주당을 지지하는 기성세대들의 입장이기도 했다.


기성세대들에게 빚은 혜택이었다. 열심히 일하면, 은행은 노동의 가치를 판단해 돈을 빌려주었다. 빚도 재산이라는 말은 경제학적으로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고 가라는 의미는 아니다. 언젠가는 갚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은 젊을 때는 동기부여이자, 희망의 의미였을 지 몰라도 나이 먹은 분들에게는 현실에 대해 내리는 안일한 진단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사회가 예전처럼 그들을 바라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빚은 돌고 돈다. 악습의 대물림이 법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금지되어 있더라도 돈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기 때문이다. 물적이든 심적이든 간에, 상속이라는 개념이 유효한 이상, 빚도 사는 그 날까지 돌기 마련이다. 빚이 쌓이는 가계는 사상누각과도 같아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악착같이 벌어서 메우다가 어느 순간 지쳐서 끈을 놓으면 빚이 재산처럼 여겨지는 일종의 현실 순응 단계에 오게 된다.


이재명의 기축통화국 발언도 마찬가지다. 가계부채와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적당히 튼실했던 하체 근육을 벗삼아 등짐을 짊어지던 나라의 기틀이 이제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돈을 찍어내고, 돈을 빌려주는 일은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돈은 공문만 띄우고 윤전기만 줄창 돌리면 언제든 조폐가 되고, 서류 몇 장에 서명만 올바르게 기입하고 검증만 잘 거치면 돈도 쉽게 쉽게 빌릴 수 있다. 요새는 소액 대출이 각광이라 서명도 필요없이 터치 몇 번이면 스마트폰으로 대출하는 건 참 우스워진 세상이다. 편리가 편익을 낳는 구조 아래, 우리는 손익을 분간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축통화국에 진입하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경제의 숨통은 대외적으로 트일 수 있게 된다. 대외적으로 유발되는 직간접적 경제효과만 113조라는 달콤한 장밋빛 미래도 기축통화국이라는 지위를 한없이 선망하게 만든다. 하지만 기축통화국이 된 나라들의 이면을 살펴보자.


 미국은 은본위제, 금본위제를 거쳐 달러라는 독보적인 세계 화폐시장의 선두 지위를 얻었다. 본위제도의 과실과 폐해를 모두 목격했고, 실로 나라의 경제 근간이 나락에 떨어진 적도 숱하게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화가 시장의 지배적인 화폐로 자리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신뢰였다. 저 나라에 내가 돈을 차고 넘치게 빌려주어도, 이자까지 든든하게 쳐서 갚아나갈 수 있다는 신뢰가 자리했기에 달러가 기축통화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엔화는 어떨까? 미국의 경제가 흔들거리고, 서방 사회의 냉전 위기가 고조될 때 아시아는 신흥자본세력들의 도전의지를 불태우던 곳이었다. 급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룩하던 일본은 서방 사회는 물론 제 3세계까지 마치 마수를 뻗치듯 외채를 빌려주었고, 그 덕에 중국과 미국을 제외하면 달러 보유고가 가장 많은 나라가 일본이 되었다. 적어도 이 나라의 자산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내 돈을 잃더라도 남은 돈은 온전히 거둬들일 수 있다는 신뢰가 기저에 깔린 것이다.


유로화 역시 마찬가지다. 사분오열된 유로존의 화폐가 유로화로 통일된 후, 빠르게 화폐 시장의 흐름을 잠식하더니 이제 전 세계 화폐 시장의 2할을 차지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서양 상권의 큰 축을 자리하던 유럽 시장이 하나로 통합된 것은 경제 시장의 큰 의미라 할 수 있다. 증권과 수표 등 신뢰 기반의 거래 방식이 탄생한 것이 바로 유럽이듯, 유럽은 역사적으로 경제가 곧 신뢰의 산물이었다. 잠깐 휘청여도 다시 일어설 수 있기에 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생각의 기저에는 튼튼한 경제적 펀더멘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여전히 밑빠진 독이라 불리는 남부유럽의 취약한 경제구조들을 보고도 여전히 유로화에 매력을 느끼는 건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세 단락에 걸쳐 꾸준히 강조한 것이 있다. 바로 신뢰다. 투자의 핵심은 첫 번째, 내 돈을 불릴 수 있는 곳인가? 두 번째, 내 돈을 잃지 않을 곳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내 돈이 안전할 곳인가? 로 결정된다. 요약하면 이렇다. 수익을 낼 수 있는 곳, 본전이라도 챙길 수 있는 곳, 공중분해될 위험요인이 없는 곳. 달러화가 여전히 유로화, 엔화, 심지어 무역의 패권을 넘보는 중국의 위안화보다도 몇 곱절이나 매력적인 이유는 하나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더라도 미국은 여전히 수익을 보장할 수 있고, 적어도 잃을 걱정 없이 플랜 B~Z를 마련할 수 있는 다양한 투자처가 있으며, 그 어떤 나라보다도 경제적 기반과 안정성이 튼튼하다. 신뢰할 수 있는 나라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소위 코리안 리스크라는 개념은 이미 중학교 쯤되면 사회 교과서를 설명하는 사회 선생들의 입에서 한 번은 오르내릴 법한 용어일 만큼 일상적인 개념이 되었다. 모 후보는 코리안 리스크를 덜기 위한 방책으로 북핵 리스크를 덜기보단 금융 시장의 규제를 풀어서 해소하고자 한다는 솔루션을 제시했다. 이미 친중 마인드로 한 번 혹독한 코리안 패싱을 겪었고, 친북 마인드로 동맹국 간의 균열마저 유발했으니 어쩌면 더 이상 쓸만한 카드란건 규제라는 이름의 국가적 개입 밖엔 없을 지도 모르겠다. 집에 수도꼭지가 여러 개 있을 때, 수도세를 덜 내는 방법은 (물을 안쓰고 살 수 없다면) 모든 수도꼭지를 잠그는 방법이 유일하다. 자칫 어느 정도로의 수도세를 감내하고서라도 물을 쟁여놓고 쓰겠다면, 그것은 그 나름의 또 다른 리스크를 안긴다. 리스크는 결국 신뢰를 깨뜨리는 핵심이 된다. 자유시장 경제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은 자칫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핵심적인 요인이 된다. 가장 쉬워 보이는 카드가 나라를 우습게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건전해 "보이는" 나라다. 달러보유고가 역사상 최대치를 찍고, 경제 성장률을 코로나 시국 이후 빠르게 바운스백 해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살인적인 가계부채와 폭등하는 국가부채비율, 청년실업률과 세계 최저치를 매해는 커녕 매달 경신하는 출산률이 자리하고 있다. 당장 건전해보이는 경제적 건실함은 자칫 오만함과 안일함을 초래할 수 있다. 부국이 빈국으로 떨어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음을 베네수엘라가 보여주고 있고, 브라질이 보여주고 있다. 더이상 지금의 규모를 감당할 수 없는 국가적 미래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나는 필연적으로 다음 정부부터 차차기 정부, 그 다음 정부에 이어서까지 국가의 재정 규모는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필연적으로 증액되어야 하는 예산 규모는 감당하더라도 부채를 양산하는 추경과 적자국채 기반의 예산편성 계획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다가올 연금이라는 재정적 압박이 자리하고 있다. 연금개혁을 함부로 부르짖지 못한다면 우리의 재정계획은 연금고갈 이후를 바라봐야 한다. 공적연금 자본에 자칫 한해 나랏돈이 2할 가량 투입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는 나라 경제의 신뢰가 무너지는 경종이다. 기축통화국? 당장은 짜릿한 소리일지 모른다. 2021년 선진국이 되었다고 온 세상에 들불 번지듯 떠들어댄 나랏님의 선전만 보더라도, SDR 편입은 기축통화로 인정받는 첫 신호탄이라며 짜릿해! 놀라워! 매일 매일이 새로워!를 절로 외칠 이슈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자리한 우리 경제의 뒷모습과 뿌리를 보아야 한다. "그런다고 나라 망하냐?" 고 넋놓고 자랑스럽게 선진국의 대열을 관망할 게 아니란 의미다. 선진국 대열에서 벗어나더라도 저 나라를 밀어줄 가치가 있다는 신뢰는 남겨야 하지 않을까?


나라는 쉽게 망하지 않는다. 다만, 나라가 망하면 그 나라가 무척 쉬워 보일 뿐이다. 다신 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는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를 향해 있어야 할 신념이 아닐까...? 쉬운 나라가 되고 싶지 않다면 정답은 간단하다. 새나가는 수도꼭지를 더 크게 열어서 욕조에 물을 받고 샤워를 하자는 고대 로마시대 목욕 찬미주의자의 발상을 멈춰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이제 새고 있는 수없이 많은 수도꼭지를 하나씩 잠그고, 절약을 외쳐야 할 때다. 투자와 낭비는 다르다. 사람에 투자한다고 낭비한 재정 규모가 이번 정부 들어 무려 400조다. 사람과 기계가 저물어가고, 기술이 뜨는 시대에 여전히 사람만 찾으며 허비한 돈이 400조라는 의미다. 심지어 다음 주자는 이보다 더 사람을 좇고 있다. 인본주의자라고 치부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사람과 기술을 동시에 챙길 수 있다는 허황된 소리를 밥먹듯이 늘어놓는다.


CEO의 이미지도 기업에겐 기회이자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대외적으로 소외되는 지도자를 9년 간 겪은 대한민국은 CEO 리스크를 온몸으로 감내한 대표적인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가 소위 10만 전자를 바라볼 수 있었던 이유는 펀더멘탈의 힘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펀더멘탈이 이대로 가다간 와르르 무너질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고조된다. 기업인들도 알고 직장인들도 아는데 국뽕튜브와 일부 정치인만 모르는 위기감... 덕분에 나라 곳간은 셀 수 없이 많은 수도꼭지 틈으로 시원하게 물줄기를 뻗치며 비어나가고 있다.


차기 정부의 역할은 간단하다. 누차 얘기하듯 수도꼭지를 잠그고, 원칙을 세워야 한다. 변변한 기조 없이 외풍에 흔들리다가 망국의 위기를 떠안았던 김영삼 정부의 사례를 극복하는 데 장장 10년이 훌쩍넘는 세월이 걸렸다. 이번 정부 역시 코로나라는 핑계를 대기엔 임기 초반부터 원칙없이 휘청였고, 외풍은 애써 무시하기 바빴다. 다시 원칙과 기조를 세우는 데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 지 모른다. 이번 정부가 시작과 끝이 될 수 없는 이유다. 확장적 재정정책 기반의 나라살림은 거둬들여야 한다. 최소 5년 단위의 3개년 계획으로 나라 살림을 경쟁과 투자 중심으로 탈바꿈 해야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두 챙겨주겠다는 발상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핵심은 다른 데에 있다. 단 한번도 인류사 이래로 성공한 적 없는 발상이라는 점. 긴장의 끈을 놓치는 순간 망국행 롤러코스터는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