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9일, 국민의 힘의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혹자는 이명박 정권의 재림이라 하고 성향에 따라 비난 또는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실제로 이명박 정권 탄생의 배경과 몹시 흡사한 부분이 있기에 당시 상황을 현재와 비교하며 최대한 미사여구나 드립은 제한 채 담백하게 쓰려 한다.








노무현 정권은 낮은 경제성장률, 상승하는 부동산 등 실정으로 지리멸렬 했다. 여당후보는 참여계가 아닌 동교동계에 가까운 정동영이 나왔다. 하지만 정권심판 여론을 이길 수 없어 07대선은 개표 4% 만에 이명박 당선확실이 뜨는 등 너무나 쉽게 결정됐다.








이명박 본인은 노무현에 대한 악의나 라이벌 관계가 없던 것 으로 보인다. 정쟁 보다는 실리를 추구한다는 이명박의 기조에 따라 그동안 참여정부, 국민의 정부 등 미사여구를 붙혔던 것과 달리 간단하게 이명박 정부로 이름을 달고 2008년 2월 25일 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초반에는 일산 경찰서 방문 사건 등 으로 전임과 다르다는 기대로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이 끝났다 해서 노무현 정권이 하던 일이 없어진게 아니라 인수해 작업 했는데 가장 큰 이슈는 한미FTA 였다.









한미FTA 중 농산물 관련 부분이 가장 예민 했었고 특히 광우병 발병 전력이 있던 미국산 소고기에 대해선 의견 간격이 쉬이 좁혀지지 않았다.








이 부분은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고, 광우병은 치사율 100% 에 이명박 정부가 반미면 어떻냐는 전임과 달리 종미 라는 프레임이 씌워졌고 취임 3개월 만에 광화문에 광우병 촛불집회가 열렸다. 또한 이때 버스로 통로를 막고 전경을 투입해 명박산성 이라는 밈 과 폭력적인 정부라는 인식이 생겨 정부출범 반년도 안되 비토여론이 조성되었다.








정치권 에서도 민감하게 받아들였는데, 87년 호헌철폐 운동 이후 처음으로 광화문 전체가 점거될 정도로 큰 시위였어 국회에서도 민감하게 받아들였고 특히 이명박의 가장 큰 정적이자 07대선의 경선에서 이명박과 맞붙었던 박근혜는 이명박을 비난하였고 전임자 이자 FTA 협상 자체를 시작했던 노무현도 이명박의 잘못이 분명하다는 기조를 낼 정도로 이명박은 위기에 빠졌다.









결국 소고기 수입은 유예하고 대신 한국산 자동차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미국과 딜, 광우병 사태는 잠잠해진다. 하지만 정치보복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이명박은 생각을 바꾼 듯 현직 대통령의 권한을 어느정도 사용하기 시작한다.









당시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의 대표격으로 대선에서 낙선한 정동영을 비롯 비문 민주당 계열 정치인들이 노무현을 정권유실의 원인으로 비난했고 국민 여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때 노무현 곁에 남아있던 인물은 문재인, 유시민, 안희정, 김경수 등 극소수 였다.










노무현은 검찰개혁을 대놓고 공약으로 세웠을 만큼 임기 내내 검찰과 사이가 나빴고 특히 사법고시 철폐, 로스쿨 설립 등 기존 구조를 타파하려 해 법조계 전체랑 척을 졌다고 할 수 있었다. 이명박은 그런 검찰이 노무현을 수사하는 것을 허락했고 본격적인 '정치보복' 이 시작됀다.








비록 대통령 으로서 노무현은 실패했지만 김해로 낙향해 살던 노무현은 현지 주민과 가깝게 지내며 노간지 라는 별명을 얻었고 유례없이 퇴임 후가 더 인기좋은 대통령 이었다. 또 노무현이 무능했지만 그래도 사람은 착했고 청렴했다는 이미지는 이때 생성이 된다.








하지만 검찰이 노무현과 측근 수사를 개시하자 숨겨놨던 노무현 정권의 비리가 속속들이 드러났고 착한 대통령 할아버지의 신화는 깨지게 된다. 특히 노무현의 혈육인 노건평, 노정연, 아내인 권양숙 까지 비리가 존재하는 것이 밝혀지고 본인도 거기에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로 본인은 물론 친노계도 멸족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여담으로 이때 노무현의 변호사는 문재인이 맡았다.










노무현이 검찰에 소환되었고 우병우가 면전에 당신은 전 대통령도, 선배 법조인도 아닌 일개 피의자다 라는 모욕까지 했을 정도로 검찰은 노무현을 압박했고 이명박도 상황이 너무 극단화 된 것을 우려했지만 검찰을 막기엔 역부족 이었다. 사실 초기 대통령 이라 권력은 있었지만 광우병 사태로 망가진 이미지를 노무현 한테 전가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 으로 보인다. 국민들 사이에선 노무현에 대한 이미지가 더더욱 악화되었고 노무현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노무현은 2009년 5월 23일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 투신해 자살했다. 전 국가원수의 자살은 세계사를 따져도 유례가 적은 일 이라 당시 정국은 큰 충격에 빠졌고 전국이 추모분위기에 휩싸였다. 특히 노무현의 소박한 퇴임 후 생활과 임기 중 정책들은 누군가의 보정과정을 거쳐 재조명 되었고 뇌물 피의자 비리 정치인 에서 단숨에 악한에게 암살당한 선한 영웅의 위상으로 떠올랐다. 








검찰 수사는 피의자 사망으로 종결되었고 착한 대통령 할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명박은 전년 광우병에는 비할 수 없을 정도의 악당이 되어버렸다. 여러 정치적인 계산이 섞인 노무현 수사의 서사 였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래도 이명박이 못되게 굴어 노무현이 결국 죽었다 는 인식이 박혔고 특히 86세대와 당시 20대 였던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생 다수는 이명박을 거악으로 규정, 맞서 싸우는데 온 힘을 다했고, 노무현의 의혹으로 멸문지화 까지 갔던 친노는 이때를 기점으로 반 정권 세력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명박의 경제정책을 다루는 글은 아니지만 하필 이명박 시기에 미국 발 대침체가 벌어졌고 10여년 전 IMF 보다 더한 몰락 이라며 언론들은 대서특필 했다. 이미 광우병으로 한번 나쁜 이미지가 덧씌운 이명박은 몇달 뒤에 경제도 망친 대통령, 그리고 다음 해 노무현의 죽음으로 이젠 인간성도 결여됀 최악의 인물이 되어버렸다.







2010년에 들어서 천안함과 연평도와 같은 안보위기가 벌어졌지만 이미 반 이명박 여론이 거센 상태에서 이명박의 편은 적었고, 그나마 지방선거 서 서울시장을 오세훈과 경기도지사 김문수가 당선되는 선방으로 중간평가를 넘겼다. 하지만 이명박 비토여론은 쉽사리 사그러지지 않았고 2011년 오세훈의 사퇴, IT기업인에 교육자 였던 안철수의 정치 거물로서의 부상, 시민단체들의 대부인 박원순의 제도권 정치로 등장, 그리고 숨죽였던 친노계열의 거물인 문재인이 정계로 돌아왔다.








이명박은 이제 정권교체 한 지 5년만에 거세진 정권교체 여론에 맞서 싸워야 했다. 하지만 레임덕이 걸린 대통령은 쓸모가 없었고 여당인 한나라당은 당권이 모두 박근혜와 친박에게 넘어갔으며 2012년 에는 한나라당 이름 자체를 버리게 되어 이명박과 확실히 선을 긋는 박근혜의 새누리당으로 변모했다. 2012년의 대선은 이명박과 얼마나 끊어냈고 복수 할 지에 대한 대결로 치뤄지게 되었다.










결과는 역대 득표수 1위를 갱신한 박근혜의 승리로 정권은 유지되었다. 하지만 이명박의 세력은 노무현 수사 중 친노 이상으로 멸망하였고 새 정부에서 이명박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극히 적었다. 그나마 전임에 대한 정치보복이 전혀 없는 평화로운 퇴임생활을 보내는게 박근혜가 이명박에 줄 수 있는 마지막 예우였다. 그리고 박근혜는 세월호, 국정교과서, 사드 등 난항의 국정을 펼치며 최순실 사태로 탄핵 되었고 지난 대선 역대 득표수 2위를 얻은 문재인을 위시한 친노/친문 세력이 보궐로 치뤄진 17대선 에서 당선되었다. 이명박은 박근혜가 타겟 됀 2017년은 그럭저럭 보냈지만 2018년 구속되어 경호를 제외한 전직 대통령의 모든 혜택을 상실했다. 








윤석열의 당선은 경제와 부동산을 실패한 진보세력의 실정으로 이뤄진 것 이며 노무현 에서 이명박 으로의 레짐체인지와 상통한다. 하지만 이명박은 전임의 떠넘기기와 비협조 적인 여당 을 상대로 야무진 대응을 보이지 못했고 폭주하는 검찰로 살인자 이미지 까지 받아 5년만에 정권교체 위기를 맞은 이명박의 내치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할 수 있다. 2022년 현재, 40퍼센트 대의 지지율을 갖고 퇴임하는 문재인과, 그리고 또다시 갱신된 역대득표 2위의 이재명 이라는 두 중심을 진보는 갖고있고 2008년 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나마 윤석열은 40대 미만의 젊은 세대서 강력한 지지를 얻고있고 그 세대를 상징하는 당대표, 그리고 검찰을 완벽하게 통제하에 두고있다. 하지만 윤석열은 국민의힘이 국정운영에 협조적일 수 있도록 당을 장악 했는지에 대한 여부를 알 수 없고 170석이 넘는 거대야당은 아직 건재한 상태이다. 누군가는 모욕으로, 누군가는 기대로 붙힌 이명박 시즌2 라는 윤석열 정권은 이상하게도 15년 전 과 흡사한 부분이 많고 외려 난이도가 더 높아 윤석열을 지지하는, 그리고 싫어하는 세력 에게도  전편보다 나은 후속이라 보여지며 2022년 5월 10일 이후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