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미 신사의 주인이 고려에 건너가 야토(夜討)를 일삼고 재물을 훔쳐 돌아왔기 때문에 슈고가 자세한 내막을 캐묻기 위해서 범죄에 가담한 자들을 잡아들이도록 하였다. 아즈카리도코로가 슈고의 처벌을 피할 수 없음을 전하고 면죄없이 처벌하겠다는 뜻에 따라 오늘 결정이 있었는데, 아즈카리도코로에 잡아두지 말고 교묘에 적어 슈고에게 빨리 넘기도록 하였다. 승선과 장물의 일, 똑같이 처벌한다는 결정은 오키사에몬노뉴도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오처경, 정영 원년(1232) 윤9월 17일 갑자

 

 

 고려와 합전(合戰)이 있었다고 한다. 송포당이라 부르는 진서의 흉당(凶黨)이 수십척의 병선들을 모아 그 나라(고려)의 별도에 가서 합전을 하고, 민가를 멸하면서 재물을 약탈하였다. 그 소행을 보면 반 정도가 살해되고 그 나머지 도적들이 은그릇 등을 약탈하여 돌아왔다고 한다. 조정으로서 너무나 뻔뻔스럽고 무엄한 행동이 아닌가? 이 일로 인해서 고려가 크게 군사를 일으켰다. 또 우리(일본) 조정이 당선을 바다로 건너 서쪽으로 보낼 때에 반드시 고려에 기착하고, 돌아올 때 대부분 바람에 밀려 고려로 표류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 고려에 원한을 사게 되어서 송나라와의 왕래가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이때 당선 1척이 고려에 기항하였는데, 불태워지고 한 사람도 남김없이 불타 죽었다고 한다. 말세의 어지러움이 극에 달하여 멸망의 시기에 이른 탓인가? 너무나 뻔뻔스럽고 무엄한 행동이다.

-명월기,가록 2년(1226) 10월 17일조.

 

 

  작년 대마도의 악도들이 고려의 전라도로 가서 사람과 재물을 탈취하며, 백성들을 침탈하고 짓밟았던 일에 대해서 그 사유를 보고하라는 뜻으로 첩장을 보내왔는데, 다자이 쇼니스케요리가 상부에 아뢰지 않고 고려 사신의 면전에서 악도 90인을 붙잡에 참수하고 경박하게 반첩을 보냈다고 한다. 우리 일본의 수치이다. 고려의 첩장이 무례하였다고 한다.

-백련초, 안정 원년(1227) 7월 21일

 

 고려국의 사신이 가져온 첩장이 작년 9월경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이 첩장을 보여주는 바이다. 작년 2월 23일 일본국의 배 한척이 까닭 없이 그 나라에 건너가서 습격하였다. 연공미 123석과 세포 43필을 찾아서 취했다.

-청방문서

 

 해적선이 다른 나라(고려)를 침입하여 약탈하는 일은 모두 시코쿠와 큐슈의 해적들이 저지르는 소행이기 때문에 교토 조정에서 엄벌에 처하도록 한 것을 근거로 반첩은 보내지 않았다. 다만 사신의 답례로서 말안장 10개, 갑옷 2벌, 백태도 3자루, 아야 10단, 사이켄 100단, 부채 300개와 각 국에서 봉송사를 딸려 고려로 돌려보내고 매듭지었다.

-태평기

 

 오오스미국 악당들이 고려에 건너가 비법(非法)을 일삼는 일은 엄중하게 금지시켜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따르지 않으면, 엄히 처벌하기 위해서 상부에 아뢰어야 한다. 우(右)의 문서는 (장군의) 명령에 따라서 하달한다.

-예침문서, 무로마치막부 어교서

 

 

출처 : 한국무예사료총서 고려시대편

 

전통무예 관련 사료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기사 발견해서 공유함

 

대충 반응을 보면 일본 내에서도 왜구들이 그리 달가운 존재들은 아니었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