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공사업의 부족 

 

 

고려는 봉건제국가라 호족이라 일컫는 영주들이 영내의 영민들에게 

 

부역을 시켜 천수답을 관개답으로 바꾸는 치수작업을 하는것이 가능했음 

 

허나 조선부터는 봉건제가 무너지고 중앙집정이 시작되었지만 

 

시대의 한계로 봉건제보다 효율이 좋지않았고 잠깐 부임할뿐이던 원님들은 

 

지역을 힘써 가꾸고 발전시키기에 노력을 기울이질 않았다. 

 

결국 조선말 천수답에비해 생산량이 높은 관개답의 비율은 15%에 못미쳤다 

 

비 안내리면 마을사람들이 다같이 미개하게 무당불러 굿하는것이

20세기까지 이어진 이유임 

 

 

 

2. 유교의 교조주의 

 

 

사림의 거두 송시열은 사서삼경의 주석을 주자의 것이 아닌 

 

자체적으로 감수 해석하려는 훈고학파를 이단으로 지목하였고 

 

전쟁통에 권력이 실추되었다 느낀 인조는 북벌을 명분으로 

 

북벌을 실제 하지도 못할줄 알면서도 인민을 극한으로 착취하고 

 

자신에게 반대하면 친청주의자로 몰아 마구잡이로 죽이는 공포정치를 펴게된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청나라의 우수한 선진문명은 조선에서 받아들이질않아 나라는 날이갈수록 쇠락하게된다

 

 

 

3. 나라의 심각한 부정부패 

 

 

어느 나라건 과거에 존재하였던 권력은 오늘날보다 부정부패가 더 심했겠지만 

 

조선의 부정부패는 동시대 일본보다 심각했다 그 이유는 

 

봉건제가 아니였던 조선의 중앙집정제때문인데 

 

봉건제로 대를 이어 영지를 관리할 의무가있는 일본의 영주는 

 

자신의 영민들에게 가혹한 수탈을 자제할 여력이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시피 

 

영지와 영민은 다 영주의 것이기에 또한 가혹한 착취는 자신의 영지를 황폐케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았기때문이다

 

반대로 조선은 쿠데타를 의식해 봉건제를 무너뜨렸지만 시대적으로 

 

정교한 중앙집정제를 하기에는 어려웠고 중앙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부임한 원님들은 지역을 황폐케 하리만큼 착취하여 그 치부한 재물로 관직을 사는것이 당연하다 여기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