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3일

 

짙은 바다 안개가 낀 강릉의 해변.

 

해변에서 작업하던 마을 주민들은, 오전 11시 40분경에 3발의 총성을 들었다.

 

그로부터 약 1시간 30분 뒤,

 


 

 

후번 근무자 2명(상병, 일병)이 근무 교대를 위해 

 

해변의 한 초소에 다가서고 거기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만다.

 


 

 

몸통에 2발의 총을 맞고 죽어 있는 k201 유탄수 상병 최00(20)

 

머리에 총을 맞고 이마가 날아간 채로 죽어 있는 M60부사수 일병 박xx(20)

 

사건발생 보름 후 군은 중간조사 결과를 내 놓았다.

 

박일병이 최상병을 쏘고 난 후 자살을 했다는 것.

 

피해자가 된 최상병은 2003년 3월 7일에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박일병은 가혹행위로 인한 자살로 인정되어서 

 

2018년 12월 1일에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사건원인

 

 

후임병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최상병.

 

그는 후임병들에게 구타와 가혹행위를 일삼았다고 한다.

 

박일병이 최상병을 쏜 원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에는 총 4가지의 의문점이 있다.

 

 

 

 

의문점 1

 


 

 

먼저 군의 조사 결과가 이상했다.

 

초소에서 박일병의 피는 다 검출이 되었는데

 

최상병 피는 한 점도 검출이 안되었다는 것.

                   

현장에서 검출된 피는 모두 박일병의 것이고.

 

최상병의 피는 모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더 이상한 것은 최상병의 피는

 

부패가 되어서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

 

피가 썩는 바람에 누구 피인지도 모른다는 희안한 조사결과.

 

 

 

의문점 2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최상병의 k2소총이 그의 총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최상병의 총은 시신을 발견한 후번 근무자 일병의 것이다.

 

그 부대에서 다른 사람의 총을 갖고 근무를 나간 것은 최상병의 사례가 처음이라고 한다.

 

또한 발견된 두 병사의 총에서는 그 누구의 지문도 검출되지 않았다.

 

 

 

 

의문점 3

 

 

초소에 3발 총성이 울렸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있으므로

 

3발이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범행에 사용된 박일병의 총에 꽂혀 있는 탄창은

 

15발이 들어 있던 탄창이었으나, 그 안에는 5발이 남아 있었다.

 

10발이 나간 것인데, 5발의 행방이 묘연했다.

 

그래서 군은 사건발생 다음날에

 

지뢰탐지기를 이용해 탄피를 찾을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초소 밖에서 4발의 탄피와 실탄 1발을 발견했다.

 

박일병의 소총에서 나간 10발의 총알을 모두 찾아낸 것이다.

 

당시 국과수 감식관은 밖에서 사격이 있었을 것이라고 새롭게 주장했다.

 

탄피가 밖에서 발견된 것에 대한 설명이다.

 

하지만 왜 마을 주민들은 3발의 총성만 들었던 것일까?

 

 

 

 

 

의문점 4

 

 

천장의 뇌수가 발견된 위치와 박일병의 자세는 조사 과정에서도 큰 논란거리였다.

 


시뮬레이션 결과.

(큰점-현장검증 당시 천장에 뇌수가 발견된 위치, 

작은 점- 박일병의 시신의 위치에서 나와야 할 천장의 뇌수)

 

초소 벽쪽에서 발견된 박일병.

 

하지만 초소 중앙에 뇌수가 튀어 있었다.

 

초소 중앙에 뇌수가 있으려면 박일병은 어떤 자세여야 할까?

 

결과는 놀라웠다.




 

박일병이 최상병의 배 위에 올라섰을 때만 뇌수가 중앙으로 올 수 있다고 한다.

 

법영상분석연구소장은 자살하는 사람이 분명히 옆에도 여유 공간이 있는데

 

그 사람 위에 올라타서 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가 좀 어려운 장면이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결론

 

 

초소 밖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인조차 되지 않는 탄피.

 

그리고 비상 경계 상황(서해교전)에서

 

다른 사람 총을 갖고 근무를 나왔다는 병사.

 

그 누구의 지문도 나오지 않았던 소총(최상병 박일병 모두).

 

사건현장에 혈흔조차 검출되지 않았던 한 병사.

 

설명하기 어려운 초소 중앙의 뇌수.

 

군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는

 

군 최초 조사가 비과학적이고 성급한 결론이었다며

 

사건에 대해 진상 규명 불가라는 결과를 내렸다.

 

사고 나기 3일 전에 휴가나간다고 좋아하면서 우표와 전화카드를 보내달라고 했었던 박일병.

 

정기휴가를 나가면 맛있는 것을 많이 해달라고 조르던 아들은 선임을 쏘아 죽인 살인자가 되었다.

 

마지막은 박일병 어머니의 꿈 이야기이다.

 

"꿈에서 아들을 세 번 만났어요.

 

한번은 눈이 부어오른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엄마 뭐해?' 라고 하더라구요?

 

이상하게도 그날이 최 상병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날이었어요.

 

또 한번은 꿈에서 '네가 정말 최 상병을 죽였냐'고 물었어요.

 

아들이 하는 말이

 

'여러 명이 죽였다' 라고 하더라구요.

 

출처:탐사보도 세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