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도지사라는 관직은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해졌다.

시를 다스리는 사람은 시장, 군을 다스리는 사람은 군수인데

도는 왜 지사(知事)일까?

지방선거 시즌에 맞춰 한 번 araboja.


본래 지사(知事)라는 용어에서 지(知)는 안다는 뜻이고, 사(事)는 사무를 관장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관직명을 보면, 지(知)와 사(事)가 각각 따로 있었지, 지사라는 한 단어로 붙어서 쓰이지는 않았다.

이걸 이해하려면 조선시대의 직제를 살펴봐야 한다.


조선시대의 정부 직제 일부를 한 번 살펴보자.

• 정1품 영사(令事)

바로 영의정부사(令議政府事)가 여기에 해당한다.

훗날 영의정으로 이름은 바꼈지만, 본래 유래는 영의정부사다.

의정부를 다스려 관장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현대의 국무총리 급이다.

이외에도 영중추부사(令中樞府事)나 영돈녕부사(令敦寧府事) 등이 있었다.

영중추부사는 중추부(현대의 국가안보자문회의 쯤)를 관장하는 관직으로, 영의정처럼 영중추로 불리기도 했다.

영돈녕부사는 돈녕부(현대의 인사혁신처)를 관장하는 관직으로, 특이하게 영돈녕이 아니라 영부사로 불렸다고 한다.


• 종1품 판사(判事)

의정부에는 판의정부사가 아니라 영의정을 보좌하는 좌찬성이나 우찬성 등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종1품이다.

대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나,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등은 있었다.

판중추부사는 영중추부사의 바로 아래였는데, 중추부 자체가 실권이 그다지 없는 기구였다 보니, 영중추나 판중추나 위아래 할 것 없이 그냥 명예직이었다.

판돈녕부사는 영돈녕부사의 바로 아래, 현대의 인사혁신처 차장 정도 된다.

여인천하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문정왕후가 윤임(인종의 외삼촌)에게 판부사라고 부르는데, 판부사는 바로 이 판돈녕부사를 말한다.

판의금부사는 의금부(현대의 국가정보원)을 관장하는 관직으로, 의금부는 영사가 아니라 판사가 다스렸다.

일단 의금부 자체가 의정부보다는 급이 한 단계 낮았으니 영의정부사보다 낮은 급의 판사가 관할하게 한 것이다.


• 정2품 지사(知事)

판사보다 아래의 직급으로 판서와 동급이다.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등이 있었고, 세조 시기 전까지는 군수가 아니라 지군사가 고을의 수령이었다.

태종의 오른팔이었다는 이숙번이 바로 지안산군사(知安山郡事)였는데 지금의 안산시장이다.


• 종2품 동지사(同知事), 정3품 첨지사(僉知事)

지중추부사 아래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이렇게 내려가는데 동지사가 현대의 차관급, 첨지사는 4급 이상의 공무원이다.

특히, 첨지사는 영감(令監)처럼 일반적인 호칭이 되었는데, 운수 좋은 날의 김 첨지에서 첨지가 바로 첨지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보통 당상관이라고 불리는, 국무회의에 들어갈 수 있는 관료들이었다.

이렇듯 보통 조선시대에는 관직명을 지을 때, 급을 나타내는 영(令), 판(判), 지(知), 동지(同知), 첨지(僉知)를 먼저 앞에 적고, 중간에 부서 이름, 마지막에 사(事) 자를 넣었다.

이런 방식은 중국 송나라에서부터 시작해서 훗날 조선과 일본에서 차용해서 쓰게 됐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라면 경기도지사(京畿道知事)가 아니라 지경기도사(知京畿道事)가 맞을 것인데, 왜 경기도지사가 된 걸까?


일단 조선시대에는 도지사라는 이름의 관직이 없었고, 대신 경기도 관찰사(觀察使)가 있었다.

그랬던 것이 1910년에 일본식으로 도지사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 일본도 송나라에서 들어온 직제를 차용했는데 어째서인지 바다를 건너가며 '지○○○사'로 쓰던 것이 '○○○지사'로 바껴버린 것이다.

그래서 에도부지사(現 도쿄도지사), 가나가와현지사 등으로 쓰던 것이 조선에도 들어와서 13도의 최고 책임자가 도지사가 된 것이었다.


현재 서울특별시장을 제외한 모든 광역자치단체장들은 차관급의 예우를 받는데, 본래 장관급 예우를 받던 옛날에 지사에 비해서 위상이 동지사급으로 떨어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한성부는 종2품 부윤(현대의 특/광역시장)이 아니라 따로 정2품 판윤(判尹)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해주었는데, 서울특별시장은 현대에도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