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반미가 등장하기 시작한건 80년대 초 김현장의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 부터임.

그런데 그당시에는 반미라니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사회분위기 였음.

그런데 그 당시 운동권은 두 부류가 있었는데 대충 말하자면 노동자 해방 중심의 NL계열과 

식민지 해방 중심 PD계열이 있다고 보면 됨. 반미는 주로 이 PD계열의 구호였고

결국 오랜 세력투쟁 끝에 PD가 대세가 됨.  그게 소위 주사파, 그리고 통진당 이석기 계열임.

 

그리고 PD가 이런 반미의식을 가지게 된데는 518과 전두환의 쿠데타와 독재가 결정타 였음.

결국 518이나 전두환은 미국이 묵인 승인한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그러니 그때까지 미국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고마운 보호자 이라는 인식에서

학살자 독재자의 후견인 남북통일을 막는 원흉으로 180도 격하된 것임.

 

내가 며칠 전에 썼지만 북한은 남한은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음. 북한의 주적이고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이고  남한정부는 미국의 괴뢰정부라는게 북한지도층및 북한주민의 일반적 인식임.

그러니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 꼬붕인 문재인이 자신과 미국과 중재를 하겠다니 우습게 보는 것임.

니네들이 미국이 한국정부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걸 거절할 힘이나 배짱이 있나고 비웃는 것임.

그러니 북한 입장에서는 담판을 해도 주적이고 결정권이 있는 미국과 담판을 지어야지

소작 마름에 불과한 한국정부와 무슨 협정이니 화해니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임.

 

이런게 북한의 인식이고 그러한 인식은 PD계열에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짐. 

즉 한반도 냉전의 축은 남한정부 vs 북한정부가 아니라 미국정부 vs 북한정부의

적대와 대립이 핵심적 갈등이라는 것임. 또 따지고 보면 일리가 있기도 하고.

만약 김일성 말기나 김정일 초기 88~90년대에 미국이 좀더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면 훨씬더 북미관계나 남북관계가 개선되었을 것임.

 

그러니 미국이나 미군은 북괴의 적화통일 야욕으로 부터 남한의 자유체제를 보호해주는 보호자라는 

인식과 함께 남북 통일이나 남북화해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짐.

그런데 현실적으로 적화통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남은 남북화해나 통일의 걸림돌은 미국만 남은 것임.

 

얼마전에 문재인이 자주국방을 강하게 강조한데는 미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입장에서는 

결코 미국에게 한국이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는 것임.

이걸 두고 보수에선 미군철수하려는 수작이다 하는데 그게 반미면 문재인도 반미 맞음.

 

그런데 이건 박정희도 마찬가지 였음. 박정희도 유신 이후 미국 몰래  (자신을 죽이려한)

김일성과 사바사바 해서  74남북 공동 성명을 내는 등 남북문제에 독자노선을 걸을

조짐을 보이자  그걸 꼴보기 싫어한 미국의 잔소리와 간섭이 심해짐.

그도 그럴게 프에블로호(미국 정보수집선) 나포 사건 EC-121 (미군 정보수집기) 격추사건

판문점 도끼사건(미군 습격) 이 나던 때이니 미국과 북한의 대립이 일촉즉발의 위기로 

동해에 미국항공모합이 집결하던 90% 미국-북한간 전쟁날 분위기 였음.

또 미국이 월남전에서 사실상 패배하고 배트남이 공산화되던 때였음. 

그런 때 북한과 화해을 추진하려한 박정희가 미국눈에 어떻게 보였을지 충분히 보이지?

 

그래서 박정희 말기에는 박동선 사건등 미국과 한국의 관계가 최악의 관계였음. 

심지어는 미국 NSA가 청와대 집무실을 레이저로 도청하던 시절임.

그때 내세운게 바로 박정희의 자주국방이고 남한의 핵무기 보유 구상이였던 것임.

즉 박정희도 자주국방으로 미국의 간섭을 벗어나 자주적 남북관계를 추진하려했음.

나중에 박정희를 암살한 김재규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소문이 돌만큼 한미관계가 나빴음.

즉 박정희도 반미주의자 였고 반미의 근원은 바로 박정희였던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