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류가 있다면 ㅈㅅ함. 댓글로 적어도 좋고, 오류가 많다면, 새 글을 파셈.

현대사가 얽키고 설켜있음. 역사채널에 올리고 싶지만, 정치성이 가득해서... 


- 해방정국에서 현대 건국절 논쟁까지 -


1) 송진우: 한국민주당(한민당) 소속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참여 요청에 임시정부가 먼저라며 거절함.
'반탁 운동에 신중해야함 + 미군정과 충돌을 피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가 1945년 12월 암살

[한국민주당 발기선언문 발췌]
나중엔 군국주의 撲滅의 일익으로 당당한 명분 아래 盟邦 中·美·蘇·英 등 연합군에 끼어 빛나는 무훈까지 세웠다. 오늘의 기꺼운 광복성취가 이 어찌 우연한배랴.

우리는 맹서한다. 重慶(*중경)의 大韓臨時政府(*대한임시정부)는 광복 벽두의 우리정부로서 맞이하려 한다. 그리고 또 우리는 약속한다. 군국주의의 戰壘을 爆滅하고 세계평화를 확립시키는 세기적 건설기를 當하여 자주독립을 회복한 우리는 맹방제국에 최고의 사의를 표하는 한편으로 국제평화의 대헌장을 끝까지 준수확충하려 한다.




2) 미군정: 임정? 그딴 단체가 무슨 정부야 HAHA, 미국이 까라면 까야지.
하지 장군: 어라, 반소반공이 싫은 건 아닌데, 니들이 뭔데?, 주제에 반탁 운동까지 하네? Fucking Idiots!

3) 김구를 비롯한 충칭(중경) 임시정부 인사들: 
ㅅㅂ 미군정은 우릴 왜 인정하지 않는 거야! OSS랑 같이 훈련도 했는데... 중화민국하고 프랑스, 폴란드, 소련도 우릴 인정했는데...





4) 안재홍(중도우익, 좌우합작파): 민족주의가 중심이 되고, 사회주의가 보좌하는 새로운 조선을 꿈꾼다.

임시정부를 지지한다. 임시정부는 임정대로, 건국준비위원회는 건준대로 서로 협력할 가능성을 모색하면 어떨까

(+쳇, 건준 내에서 강경한 박헌영 파벌이 날뛰는군? 내가 그냥 당을 하나 만들어서 임시정부 인물들과 얘기해야겠다.)

좌우합작파 + 우익 민족주의자라 그런지, 47년에서 48년까지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1942년 12월 일제가 의도적으로 꾸민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남 홍원경찰서에 수감되어 제9차 옥고를 치렀다. 이 사건은 안재홍의 마지막 옥고였지만 심한 고문으로 너무 고통스러워 감옥에서 순국을 결심하고 절명시를 쓰기도 하였다. 1944년 가을 일제의 패망에 대비하여 민족주의 조직을 결성하려고 하였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고 1944년 12월 일제 핵심 지도부와 시국 수습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몽양 여운형과 함께‘민족자주’,‘호양협력’,‘마찰방지’의 3원칙을 제시하였으나, 일제는 이러한 주장을 거부하고 이때부터 안재홍은 일제의 암살위협을 받아 서울시내에서 도피 은신하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조선건국준비위원회>조직에 참여하여 그 부위원장으로 독립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과도적기구를 통하여 국내 치한을 유지하고 건국사업의 기초를 닦는 일에 노력하였다. 1945년 9월 건준탈퇴성명서를 발표하고 <중경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건국정부 수립방안을 제시하고 자신의 정치사상을 구체화한‘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를 발표하였다. 이것은 초계급적 통합민족국가를 지향하는 것으로 계급대립과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급좌와 급우의 계급독재를 부정하며 노동자와 자본가의 협조를 포함한 계급통합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안재홍은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우리 한민족의 진로가 초계급적 통합민족국가를 건설하여 전민족의 해방 및 독립의 완성을 꾀하는 것이 역사의 명제라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민족내부의 모든 계급 대립을 해소하고 경제균등을 바탕으로 정치, 교육, 문화의 평등을 실현한 만민공생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안재홍은 진정한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에 대한 자기 식별이라고 단언하였는데 경제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순수 사상으로서 공산주의는 인정하였지만, 계급투쟁 무산독재를 추구하는 공산주의체제는 반대하였다.


1945 년 9월 국민당을 조직하여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었고 그 정당에서 급좌 급우를 모두 배격하고 국력을 통합하여 신민주주의의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것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는 국민당을 창당한 의도가 이승만,김구,김규식등 해외 독립운동가들이 들어오면 이들 가운데 어느 한사람을 당수로 삼아 이들의 일부 또는 총망라한 일대 민족정당을 만들려는 것으로 특히 김구의 중경임시정부를 영입하고 이를 보강하고자 하였다.


1946년 1월 신탁통치 반대운동 국민 총동원 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반탁운동에 참여하였고, 한성일보를 창간하여 사장에 취임하였다. 1946년 3월 20일 국민당과 김구의 한독당이 합당하였고, 1946년 7월 11일 좌우합작 교섭대표 10인 가운데 우측대표로 선임되었다. 


안재홍은 좌우합작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만약 좌우합작으로 통일정부가 수립되지 못하면 극좌와 극우의 갈등으로 한국은 내란적 항쟁으로 동족에게 피를 흘리는 참극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계하였는데 불과 몇 년후 마침내 남북은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겪고 말았다. 1947년 2월 민정장관에 임명되어 대한민국 건국에 정치, 경제, 토지, 행정제도등에 기틀을 마련하였다.

(*민세 안재홍 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주요활동에서 발췌)



5) 여운형(중도좌익, 좌우합작파): 임시정부=애국지사, 하지만 정부로 인정해야할 필요는 없다.
신탁 통치라는 것도 조선인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고, 조선 내에 확실히 정부가 구성된다면야 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준만, 현대사 산책에서 발췌)



6) 김구의 갈등






07. 이승만: 임시정부 대통령 겸 구미위원부 위원장 + 남한 대통령 -> 탄핵 + 하야




1948년 대한민국 30년




1949년 대한민국 1년



08. 1948 북한: 너희네 임정 넉석들만 독립에 보탬된 줄 아니? 공화국도 애국지사 출신들 많다우.


21C 북한: 김일성 수령동지는 민족의 태양이십니다.
김일성 수령님은 어린 시절 3/1 김형직 선생께서 일으킨 인민봉기에 어른들이 놀랄 정도로 열렬히 참가하셨습니다.
김일성 수령님은 커서는 "대통령감" 도산 안창호의 허황된 말을 논파하시었습니다. 
김일성 수령님은 보천보에서 대승을 거두시고는, 일본 제국주의에게 수탈당해 울부짖던 인민대중에게 희망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김구와 김규식 선생은 김일성 수령님을 직접 뵙자, 지난 날의 반공 활동을 참회하고, 수령님의 가르침에 눈물을 흘리었습니다.
북한 역사 = 베충이들보다 더한 왜곡질





10. 2016년 JTBC 팩트 체크




11. 현 정권의 역사 인식: 반이승만에 기초한 임시정부 100주년

흥미로운 건, 현 정권의 역사관이 '북한이 싫어하는 것들'에 기초해있음.
역사관에서 딱 하나 일치하는 건 이승만이 싫어요! 임.

임시정부를 펌훼하고,
3.1 만세를 왜곡하고,
김원봉을 국민당 장개석과 내통한 첩자로 몰아서 쫓아내고 '김원봉' 석자 이름을 묻어버린

북한 정권의 역사관과는 대립되어 있음.







12. 건국절 논쟁 중심: 이승만




결론

개인적인 의견 = 반이승만 관점의 1948년 지지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결국엔
3.1 만세 대혁명(1944 임시정부 헌장)이라는 사건에서 시작한 거임.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20년대, 연통제와 교통국이 붕괴되면서 총독부 통치하의 조선인들과의 연계가 많이 끊겼음.

정신사적 큰 줄기는 3.1절임. 
일본의 통치에서 조선의 자주 독립으로 나아가겠단 의지 표명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나아간 줄기

반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작은 줄기임.
임시정부가 환국해서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다면 모를까. 
결국엔 실패했음. 임시정부는 육신(영토)이 없는 영혼 '임시' 정부에 머물렀음.

동시에, 임시정부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
상해에는 딱 1번 나타나고, 
대통령 직함만 가로채고
미국에서 꿀빤 이승만이 과연 국부인가?
해방 이후에도 독재로 쫓겨난 이승만이 과연 국부인가?




이승만을 제외한다면, 우익들 주장대로 1948년 건국은 쉽게 정리될 수 있을 확률이 높아짐.

개인적인 생각임. 그런데, 보수우익 진영 내에서 반공투사 국부 이승만 띄우기는 멈추기 어려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