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수는 참 이상한 놈이었다.

 

 헌책방 맏아들. 시장 바닥을 한참 걷다가 비포장도로 샛길로 빠지면 있는 허름한 상가 가운데 들어선 그의 책방은 늘 한적했다. 은은한 낡은 종이 냄새 가운데 먼지가 폴폴 날아다녀. 뭇사람들은 기침 속에 손사래를 치며 얼마 못 가 도망치듯 나가고 말았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끔벅대는 전등 아래 적막 속, 명수의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간간이 귀를 간질였다.

 

명수는 글을 쓰고 싶어했다. 장래희망을 발표한다면 으레 ‘작가’를 고집하곤 했다. 책 속에 파묻혀 살다 보니 자기도 누군가를 책 속에 파묻고 싶었던 것일까. 자기도 감동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고, 그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라고 명수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그에게 소설 노트는 가히 가보와도 같은 것이었다. 천금을 줘도 바꾸지 않겠다는 듯이, 옆구리 한편에 노란 공책을 상시 끼고 다니던 그였다.

 



 

 내 아버지는 문인이었다. 글깨나 쓰던. 그 나름 솜씨가 있는—하나 수입은 모자란—작가였다. 책방 문을 걸어잠그고 나면, 그는 등불을 켜놓고 정신없이 글을 써내려갔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이, 그때만큼은 그 무엇도 아버지의 주의를 돌리지 못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작가의 꿈을 키웠는지도 모른다. 소설가이자 헌책방 주인으로 식구 먹여살릴 돈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인생을 사는 그가 나는 내심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손으로 베를 짜듯 끊임없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그의 능력만은 부러웠다. 나도 그렇게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도 끊임없이 무언가 낳는 삶을 살고 싶었다.

 

 국민학교 때였을까. 책방 구석에서 주운 공책에 나는 처음으로 소설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고사리손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정신없이 소설을 쓰고 나서 오는 뿌듯함은 이루 견줄 데가 없었다. 그때부터 내 마음에 소설 쓰기 열풍이 불어닥쳤다. 내가 느낀 행복감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나 이렇게 준비된 사람이었소.’ 하고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나는 대문호가 되기를 꿈꾸었다. 길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만이라도 알아주는 대문호. 그때가 되어 자랑스레 이 공책을 펴 보이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문학도의 길까지 착실히 걸어나갔다. 그 자신 어중간한 문학도의 미래가 어떤지 아는 아버지의 가슴저린 반대도 무릅쓰고, 난 작가의 길을 닦기로 했다.

 



 

 책 속에 파묻혀 지내던 샌님 명수는 세상을 너무도 몰랐다. 강의실의 동기들이 서슬퍼런 제복의 장정들 손에 한두 명씩 끌려나가고, 나까지도 길바닥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 옥고를 치르는 것을 보자 명수는 불평조로 말했다.

 

“대체 세상에 웬 불만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단 말이야.”

“뭐?” 명수의 철없는 한 마디에 내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너, 신문은 읽고 있냐?”

“응, 철없는 대학생들이 틈만 나면 데모를 해서 나라가 어지럽단다.” 명수는 마치 뉴스 앵커처럼 신문 대목을 읊었다. “나처럼 가난에 쪼들리는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돈 벌 궁리만 하는데, 형은 데모도 하고 팔자도 좋다.” 과연 명수는 가난했다. 1년을 어찌저찌 넘기고도, 2년째에 도무지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는 군대로 도피하듯 떠났으니 말이다.

 



 

1980년, 그러니까 필광이 형도 어찌저찌 풀려나고, 대통령도 두 번 바뀐 뒤의 일이다. 1년이야 간신히 넘겼지먀, 헌책방 주인장 노릇하는 아버지에게 아들놈 학비로 부쳐 줄 돈이 더 어디 있을까. 고학을 해볼까도 했지만, 그 많은 학비를 벌고 언제 공부를 또 할까 하는 회의감에 곧 접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군대였다. 그 길로 나는 휴학 문학도이자 병사가 되었다. 후일 크게 후회하게 될 터였지만, 그때의 내겐 이것이 최선이었는가도 모를 일이다.

 

 “새끼, 전라도 음식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덩치가 산만해져서 오겠네.” 형은 내 머리를 툭툭 쓰다듬으며 말했다. “군대 가서 사람이나 되어 와라.” 군복의 중압감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셔, 몸성히 사람 돼서 올 테니깐.” 광필이 형이 걱정하는 만큼이나 나는 모자라지 않다는 것을 내비치기 위해서 의기양양하게 내뱉은 말이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시계를 들여다보았고, 시침은 남도를 향해 쉼없이 달려갈 때를 쳤다. “아, 이제 가 봐야겠다. 조만간에 보자고요.” 뒷편을 향해 손을 흔들며 나는 문을 열어젖혔다. 형과의, 그리고 일상과의 긴 작별이었다.

 

 남도의 햇볕은 따가웠다. 아스팔트 바닥에서는 쉴 새 없이 아지랑이가 일렁여 마치 바닷가의 파도를 보는 듯했다. 금남로 한켠에 길게 늘어선 바리케이드, 그 우편엔 자루의 총을 들고 서서 빳빳이 굳은 우리들이, 왼편엔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히 공을 차는 아이들이 있었다. 간간이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이쪽을 벌레 보듯이 흘끗 보고는 쏜살같이 어딘가로 사라졌다. 어제 저녁에야 이곳에 도착한 나로서는 억울한 노릇이었으나 구태여 맞서 째려보지는 않았다. 나름의 사정이 있으리라.

 

 “폭도들을 막아라.”라는 것이 높으신 양반들의 지령이었던 모양이다. 이 도시에 가득찬 저 사람들이 전부 폭도, 혹은 폭도의 싹수가 보이는 자들이라는 말이다. 폭도를 때려잡겠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고, 소요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이렇게 도로 복판에 진을 치고 앉았단다. 그래서 저 사람들이 우리를 그렇게 업신여기듯 쳐다본 것일 터이었다.

 

 “아저씨,” 도로 저편에서 잉잉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인 아저씨, 고 짝에 공 좀 차주시요!” 아까 저 앞에서 공을 차고 놀던 어린애들이었다. “너희는 겁도 없냐?” 이 모든 것이 재미있다는 듯 하염없이 손을 흔드는 아이들에게 공을 차 주며 소리쳐 물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엔 만사가 즐거운 모양이었다. “아저씨들이 우리한테 총을 한 방 쏘길 했소? 뭐가 무섭다고 그라요?” 하고는 다시 서로 공을 차며 뜀박질한다. 트럭에 등을 기대고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흑연가루처럼 날려보낸 나의 어린 시절은, 책이었다. 삐뚤빼뚤 날려쓴 글씨였다. 검은 잉크였다. 친구라고는 헌책방에서 함께 책을 구경하던 필광이 형과 빛바랜 옛날 소설가들의 얼굴뿐, 나는 어린 시절 햇볕에 살갗 한 점 그슬려 본 일이 없었다. 다만 이제야 여기 남도의 뙤약볕을 쬐며 군복에 덮이지 않은 살을 태울 뿐, 숨이 차도록 원없이 뛰어논 적은 없는 것이었다. 꺄르륵, 하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바람소리와 섞여 귀를 간질인다. 새로 포장되어 새까만 아스팔트의 바다 위로 일렁이는 아지랑이를 지켜보노라면 마치 시원한 파도 속에 헤엄치는 피서객들이 보이는 것만 같기도 하다.

 

 어디선가 중후한 배기음이 들려온다. 좌우로 붉은 글씨가 쓰인 흰 천을 펄럭이며, 빼꼼 내민 머리들을 빼곡이 실은 채 낡은 트럭 한 대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씨팔, 왔네, 왔어.” 선임병 하나가 잘근잘근 씹던 이쑤시개를 짜증스럽게 바닥에 팽개치고는 소총을 손에 잡았다. 트럭을 주위로 사람들이 빙 둘러섰고, 머리에 띠를 맨 젊은이들이 우루루 몰려나왔다. 내 또래나 되어 보이는 젊은이들이었다. “유신 잔당 물러가라, 광주 시민 함께하라.” 군중의 한편에서 터져나온 노랫가락은 이윽고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노랫말은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성토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를 꾸짖는 듯도 했다. “폭도 새끼들, 질리지도 않는가 봐.” 이 편에 선 카키색 군중들도 덩달아 불만을 쑥덕거렸다. 저편에서 구호를 외치면 이쪽에서 뻔한 경고의 말을 소리치는, 어색한 돌림노래 속 지겨운 대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다만 아이들만이 툭툭 공을 차며 서로 킥킥댈 뿐이었다. 그러나 맥 빠지는 긴장의 끈은 곧 끊어지고 말았다.

 

 잠잠한 허공을 뒤흔드는, 찢어지는 폭약 소리가 군중의 대열을 흩어 놓았다. 그러나 혼란스럽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들린 폭약 소리일까, 불꽃 한 점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나지막한 굉음은 거리의 모두를 혼비백산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개새끼들이 총을 쐈다!” 희끗한 머리의 아주머니들이 우리 쪽으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치자, 좌중은 혼란의 늪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쪽에서도, “폭도 새끼들이 총까지 쏜다!” 마찬가지의 반응이 들려왔다. 우리는 사격 태세를 갖추었다. 탄환이 든 묵직한 총구를 앞쪽으로 겨누고, 아까와 같이 경고의 호통을 쳤다. “폭도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진정하고 투항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반복한다! 폭도들은 무기를 버리고….” 우리가 쏜 총알이 아니었으니 저쪽에서 쐈으리라는 가정 하에 우리는 광명 찾기를 권유했지만, 냉소만이 메아리쳐 닿을 뿐이었다. “이 개새끼들아, 누가 폭도라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억울한 군중은 맞서 소리쳤다. “총은 네들이 쐈지, 이 새끼들아!” 그러나 고함치는 소리가 울려퍼질 때, 우리가 받은 것은 떨리는 대기만이 아니었다. 곧 조막만한 돌쩌귀까지도 서슴없이 날아오고 있었다.

 

 “이 씨발, 발포해, 발포!”

 

 중대장의 불호령이 끝나기가 무섭게 매캐한 화약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총구에서는 불꽃이 정신없이 일었고, 매서운 미제 소총 소리가 거리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나는 방아쇠를 당겨 허공에 몇 발을 갈겼다. 몇 명의 사람들이 픽 쓰러지는 것을 얼핏 보고 다시 눈을 떠보았다. 아이들이 쓰러져 있었다. 아까까지도 공을 차 주던 아이들이었다. 내가 허공에 갈겼다고 생각한 탄알들은 아이들의 등짝에, 다리에 박힌 채였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땐 다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바리케이드를 헤치고 시위대 쪽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저 놈 보소! 애들을 죽이려고 달겨드네!” 그때 어깨에서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나는 총을 그대로 들고 있었다. 오해의 골은 삽시간에 깊어졌고, 그들의 분노는 나에게로 떨어졌다. 손쓸 틈도 없이, 나는 총을 집어들었다.

 

 그 후의 일은 아직도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그 현장만큼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시위대의 시신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와이셔츠 차림에 넥타이를 맨 중년의 남성. 몸뻬를 입은 노인. 체크 남방 차림의, 머리에는 띠를 맨 대학생들. 처음에 봤던 그들이었다. 온몸이 떨렸다. 나는 사람을 죽였다. 흑연가루를 묻히며 꿈을 적셔보던 손에는 그들의 피가 묻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묵직한 느낌이 채 가시지 않은 것이었다. 절로 다리가 풀렸고, 나는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이들의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더없이도 끔찍했다. 나도 덩달아 바닥에 나자빠졌다.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으악, 으악.’하는, 비명인지 모를 으악새 울음소리가 시가지에까지 울려퍼지는 날이었다.

 



 

 나는 ‘폭도 잡는 최 일병’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이제 더는 이름없는 일병 나부랭이가 아니었다. 선임들은 나를 끌어다 맨 앞줄에 세워 놓았다. 나는 담배를 처음 피웠다. 그 모든 것이 쉽사리 잊어지지 않았다. 나는 총을 잡을 때마다 벌벌 떨었다. “새끼야, 그 놈들은 폭도들이야. 제일 잘 아는 놈이 왜 유난을 떠냐?” 폭도 때려잡은 것으로 소문난 놈이 그러고 있으니 그들은 답답했을 테다. 폭도 죽이러 여기에 온 것 아니냐고, 그들은 되려 나를 추궁했다.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똑똑히 봤을 사람들이었다.

 

 나는 정말 폭도를 죽였을까? 아니, 그 사람들은 정말 폭도들이었을까? 나는 사람을 총으로 쐈다. 글을 쓰는 손에 피를 묻혔다. 그날 그 일이 있은 후로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내 눈앞에는 그날 금남로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살이 두 배로 쪄서 보겠노라고, 필광이 형이 던지던 농담이 떠올랐다. 그러나 남도에서 살아돌아갈 것은 최명수의 몸이었다. 정신은 금남로의 지박령이 된 것만 같았다. 이제 글을 쓸 수도 없게 되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빈 머릿속을 돌아다닐 뿐이었다.

 



 

 명수는 약속했던 3년의 반을 못 채우고 6월께에 돌아왔다. 몰라보게 수척해진 그의 옆구리에는 공책 대신 목발을 끼고 있었다. 덩치는 그대로였지만 마치 정신나간 사람 같은 몰골을 하고 돌아온 명수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해 사이에 폐인이 되어 돌아온 그에게 나는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다. “아, 어떤 병신 같은 놈이 내 다리에다 총을 쐈어.” 명수는 움푹 패인 눈에 주름이 지도록 웃으며 말했다. “‘폭도 잡는 최 일병’도 다리가 다치니까 맥을 못 추지, 뭐 별 수가 있나요.” 애써 농담 섞인 하소연을 하는 명수의 미소는 마치 상갓집의 상주와 같았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일을 들추지 말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쓴웃음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방을 나섰다.

 군대에서 사람이 되어서 보자고 마지막 면회 때 웃으며 이야기하던 명수는 이젠 집안을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불구가 되었다. 그러나 그를 보고 있자면 마치 마음 어딘가에 큰 구멍이 난 사람처럼 보였다. 책을 들여다보며 밝게 빛나던 그의 눈에는 이제 초점이 없었다. 생기 잃은 눈으로 절뚝거리며 방을 나서서 끼니만 때우고 다시 돌아가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많은 일이 있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어디서 구한 총으로 스스로를 무장하기 시작했다. 폭도를 죽일 완벽한 명분이 생긴 것이다. 여전히 나는 ‘폭도 잡는 최 일병’으로 병들의 손에 떠밀려 맨 앞줄을 전전했고, 마구잡이로 총을 쏠 때도 나는 집을 생각했다. 그들은 폭도였다. 그래야만 했다. 총을 잡지 않을 때면 그들의 널브러진 시체가 내 뇌리에 자꾸만 스쳤다. 그래서 나는 맹렬히 돌진했다. 윗선의 이야기도 무조건적으로 믿기로 했다. 그것이 진실인가를 신경쓸 겨를은 없었다.

 

 남도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시위대와의 결전을 치르고 있었다. 해오던 대로 역시 나는 맨 앞줄에 있었고, 명령이 떨어지자 우리는 앞으로 달려나가며 마구잡이로 총을 갈겨댔다. 철모를 뒤집어쓴 깡마른 남학생이 나가떨어지고, 덩치 큰 남정네들도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나는 쓰러진 그들의 시체를 이 악물고 외면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종아리에 무언가 박혔다. 총알이었다.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나는 그 자리에 쓰러져 뒹굴었다. 뒤편에서 날아온 총알, 그러니까 우리 쪽의 누군가가 잘못 쏜 총알이 나에게 얻어걸린 것이다. 그 짓거리들에 대한 응보였을까, 아니면 나를 빨리 집에 보내려고 찾아온 행운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이제 나는 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집으로 가는 것이다.

 



 

 “명수야,” 명수가 힘없이 방문을 열고 걸어나왔다. “밥 때도 아닌데 웬 일이래?” 명수의 오랜만의 외출에 내가 더욱 들떠서 물었다. 밤이 깊었는데 뭘 찾아 나온 것인지 호기심이 들어 명수의 동태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탁자 쪽을 기웃거리던 그는 뭘 찾은 것인지 별안간 저는 다리로 뜀박질을 해 방으로 가더니 뭔가를 주섬주섬 챙겨 나온다. 그의 보물같은 공책, 연필, 어디서 숨겼는지 모를 소주 한 병이었다. 말을 꺼낼 틈도 없이 그는 현관문을 열어젖히고는 한 마디 단서도 없이 나가 버렸다.

 



 

 명수를 다시 찾은 것은 얼마 안 가서였다. 다리 하나가 불구가 된 명수가 어디 멀리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삼십 분을 돌아다니다가 헌책방 근처 공터에서 소주를 들이키는 그를 찾을 수 있었다.

 

 “오밤중에 무슨 난리래,” 나는 명수에게 넌지시 눈치를 주었다.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뛰쳐나가서는 하는 일이 공터에서 술 마시기라니, 여전히 이상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 “여기서 뭐 할 게 있다고?” 그러나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연신 술을 들이킬 뿐이었다. “...봤어.” 한참동안 허공을 바라보던 그가 나지막히 말했다. “신문에서 봤어. 다 잊고 있었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명수는 남은 술을 마저 들이키고는 공책을 펼쳤다. 빈 페이지를 한참동안 찾던 그는 이번에는 공책에 얼굴을 파묻고 무언가를 다급히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술기운 탓인지 연필을 잡은 그의 손이 연신 떨렸다. 달빛을 등불 삼아서 다시 한 번 글을 쓰는 명수의 눈은 그때처럼 빛나고 있었다. 홀린 듯이 소설인지 뭔지 모를 글을 쓰는 명수에게서 아저씨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도 했다.

 



 

 무슨 수를 써도 그날 그 광경이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정말로 정신은 아직 그날 금남로에 가 있는가, 연필을 잡노라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던 것이 생각나 글도 팽개쳤다. 잠깐 쉬려던 대학에도 다시 갈 수 없다. 아마도 작가의 꿈까지 전부 금남로에 두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신문에서 보여준 그 거리는 너무도 깨끗했다. 그러나 나는 그 사진에서까지 시체 더미를 보고 말았다. 으악새 울음이 귀에서 맴돌았다. 시끄러운 총소리가 멀찍이서 다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축축한, 피비린내가 풍기는 아스팔트 바닥의 감촉이 느껴졌다. 또 발작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서 느닷없이 펜을 잡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그렇다면 이 방법뿐이다.

 

 나는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을 공책에 떨굴 것이다. 토해낼 것이다. 술을 연료 삼자 손이 쉴새없이 움직인다. 그날의 모든 것을 나는 여기에 옮겨 적었다. 오랜 벗 같은, 내가 벗삼았던 이 공책에라면 나는 모조리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달리 누가 이해할 수나 있을까. 아마 영영 모를 것이다. 모르게 할 것이다. 기억 속 그날의 뙤약볕 대신 보름달이 비치고 있다. 으악새 울음소리가 어디선가 또 들리는 것 같다. 이제 그만 줄여야겠다.

 



 

 한참을 글 쓰는 데에 열중하던 명수의 손에서 연필이 떨어졌다. 벤치에 등을 한껏 맡기고 그는 다시 허공을 쳐다보았다. 뒷산 멀찍이서 으악새가 울고 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명수는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다 구겨진 성냥갑에서 성냥을 하나 꺼내 탁 튕겼다. 빠알간 불꽃이 일었다. 성냥 타는 것을 얼마간 지켜보던 그는 미련없이 그 불을 공책에 갖다 대었다. 바싹 마른 종이에 금세 불이 옮겨붙었다. “어, 야, 너 이것….”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방금까지 글을 쓰던 공책에 불을 붙이는 그를 보고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그렇게 불을 당기는 명수의 얼굴에는 다시금 생기가 돋고 있었다.

 

 그의 공책은 한밤을 붉게 비추며 활활 타오르다가, 곧 재가 되었다. “이제 가자.” 불꽃이 불씨가 되기까지 한참을 앉아서 지켜보던 명수는 가볍게 자리를 툭툭 털고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다리를 절며, 군가까지 흥얼대며 찬찬히 흙길을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영문 모르게 가뿐해 보였다. 가보라던 공책까지 태우고 무엇이 그렇게도 기쁜지, 나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작가의 꿈이 알게 모르게 그를 짓누르고 있었던 때문일까.

 

 명수는 여전히, 참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