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릇처럼 우체통을 뒤져 내게 온 편지가 있는지 확인한다.


지역 내에서 지난 전쟁의 발자취를 좇는 이들은 꽤 많았거니와, 내가 찾아 헤매는 사람들 특성상 나 같은 아마추어는 인터뷰는커녕 인사 한번 나누려는 것부터가 꽤나 고역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 하는 자칭 전쟁영웅들은 이미 진작에 회고록을 집필해 출간하거나 각종 대형 언론사에 머리를 들이밀어 자기 이름을 알린 지 오래였다.


물론 사람들이 밝히고 돈이 될 만한 건수는 그런 영웅님들 주위에 떨어지는 콩고물을 빌어먹는 과정에서 나오기 마련이었지만, 내가 찾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영웅담이 아닌 전쟁 이야기. 어디서 사람을 몇 명 죽였다는 얘기보단 그때 무슨 마음으로 전장에 섰고 전우들을 떠나보냈는지를 듣고 싶었다.


프리랜서 흉내나 내는 아마추어 주제에 뭘 그리 고결한 척 하냐는 말을 들어먹게 돼도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전쟁은 결국 사람이 죽는 문제고 그 사람을 죽이라 명령하는 것도 명령을 받아 방아쇠를 당기는 것도 결국엔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제31 보병사단 전우회’


그런 감상을 하기도 잠시, 각종 고지서들 사이로 포효하는 은색 멧돼지의 두상이 찍힌 편지 봉투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31사단. 전쟁 직전 창설되어 개전부터 종전까지 북부전선의 거의 모든 전투에 종군한 부대였으며, 동시에 여타 메이커 사단들에 비해 이렇다 할 활약상이 없어 전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 사이에서도 좀처럼 알려지지 않은 부대였다. 


1, 20년도 아니고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에서야 그런 부대의 전우회에서 편지를 보내왔다는 건, 자신의 무용담이나 부대의 공적을 알리려는 것과는 거리가 있을 터였다.


'시간이 된다면 이번 주 토요일에 아래 주소로 방문하여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합니다.'


편지를 뜯어보니 나의 예상대로 여타 사단들의 전우회와는 달리 상투적인 미사여구 없이 자신의 목적만을 알리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전우애니 전장의 영광이니 하며 드라마까지 만들어진 몇몇 부대들이었다면 동봉되는 내용물 이전에 편지봉투의 디자인부터 달랐겠지만, 수수하게 부대 엠블럼만이 찍혀있는 31사단 전우회의 편지는 그것대로 형언할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무슨 이야기를 남기려는 걸까. 비록 몇 안되는 사람들이었긴 해도 참전자들의 인터뷰를 할 때마다 느끼는 감상과 결과는 항상 한결같았다.


내가 다녀가면 그들은 항상 몸서리쳤다. 목놓아 울었다. 신경안정제를 먹었다.


전쟁을 겪어 본 적 없는 나로선 감히 재단할 수 없는 감정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었던 건, 알량한 위로의 말 한마디와 마치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인 양 행세하며 감사 인사를 건네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런 경험들이 쌓여갈수록 이 일에 대해 사명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비록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 일지라도 그것들은 분명 전쟁의 일부였고, 국방성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박제된 영광에 인간성을 부여했다.


그러니 나는 먼 곳에서 온 이 편지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아우구스타주 스카치 카운티 맥스 빌. 약속장소는 고속철도를 이용해도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수도 근교였지만, 부족한 내 경험이나마 비추어 보았을 때, 이번 여정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난 별 고민 없이 수화기를 들어 내일모레 아침 9시에 출발할 고속철도의 티켓을 예약했다.




2.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어느새 주말이 찾아왔고, 맥스빌의 커다란 역사를 빠져나와 발걸음을 옮긴 지도 20여 분, 빌딩의 숲 사이로 보이는 도시의 이면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30평 남짓한 건물을 열 개가 넘는 방으로 나눠놓은 쪽방부터 그것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형편의 고시원, 그나마 상황이 나아 보이는 건 다 쓰러져 가는 주제에 월세만 고시원의 두 배를 받는 원룸텔이 고작이었다.


구획 자체가 그렇다 보니 편지에 적힌 주소를 따라가 보아도 눈에 들어온 건 연식이 오래된 원룸뿐. 


이건 뭐, 지금까지 만나 뵈어 온 참전자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환경이었다.


아니, 여기선 당신을 만나게 될 장소가 쪽방이나 고시원이 아니라는 것에 만족해야 할 판인가.


“계십니까.” 

“네, 지금 나갑니다.”


원룸 1층 103호의 문을 두드리니 얼마 안 가 현관의 안쪽에서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맨발이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는 소음이 다가왔다. 


“크리스 한 상사님 되시나요?”

“재작년까지는 그렇게 불렸었지.”

“보내주신 편지, 잘 봤습니다.” 

“그 얘기라면 일단 안으로 들어오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상사님께선 흔쾌히 현관문을 열어젖히며 안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실평수 다섯 평 남짓한 상사님의 원룸은 다 쓰러져 가는듯한 외관과는 달리 의외로 부엌과 생활공간이 분리되어 있었고, 그것 외에도 냉장고부터 텔레비전, 온수기, 에어컨까지 갖출만한 건 모두 갖추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 그나마 마음이 놓인 것은 아마 상사님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난 형편이 좋은 편이야. 연금을 하나 더 받고 있잖나.” 


짧은 현관을 지나는 와중에도 집 안을 기웃거리는 내 모습이 신경 쓰였던 건지, 상사님은 그렇게 넋두리하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재작년까지 군에 몸을 담고 있었다는 얘기를 미루어 보면 상사님께선 그 말씀대로 기초노령연금에 제대군인연금을 합쳐 생계를 이어나가고 계신 거였는데, 돌려 말하면 최소한 그 정도는 돼야 겨우 수도 근교의 원룸촌에서 먹고살 수 있다는 말이 됐다.


“그래서, 어디부터 얘기하면 좋을까.”


자리에 앉은 상사님은 지금까지 봐왔던 다른 참전자들과 마찬가지로 어디서부터 운을 떼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이 벌어졌던 기간과 그 기간 전체에 걸쳐 치열한 전투가 이어진 동부전선에서 종군한 31사단 소속 참전자가 인터뷰 대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고민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제게 모든 이야기를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물론 그런 점을 감안해도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었기에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50년 넘도록 이 얘기를 남들 앞에 꺼낸 적이 없어서 그래.”


나의 닦달도 있었겠지만, 그 말과 함께 마음을 다잡은 듯한 상사님은 한숨을 한 번 길게 내쉬더니 얼마 안 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확실히, 한두 해도 아니고 50년 넘게 풀어본 적 없는 경험담을 부외자 앞에 털어놓는다는 건 망설임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겠지. 


그 50년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삶을 살아온 게 고작인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그때가 아마 42년 5월이었을 거야.”


마음을 다잡은 듯 그렇게 운을 띄운 상사님의 모습에선 평온함을 넘어 초연함마저 느껴졌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선 오히려 그런 부분이 더욱 긴장감을 고조시킬 뿐이었다.


지금부터 시작될 이야기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세간은 물론 학계에서조차 언급된 적 없는 전쟁사의 뒷면이 될 테니 말이다. 




3.


4042년, 5월. 토르니아 주 노스엔드 카운티 인근 야산


토르니아 방면의 북부전선이 고착화된지도 13개월, 우방국의 참전을 전제로 수립되었던 ‘제비꽃 작전’은 당초의 목적이었던 시간 벌이를 달성하나, 5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한때 토르니아 산맥 이북의 국토를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시작부터가 육군 내 원리주의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감행된 작전이었던 만큼 그러한 결과는 충분히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시의적절하게 행해진 우방국의 군사 지원에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전통적 우방인 노라드 합중국은 식민지 방위군을 제외한 자국군 전력 절반을 리에넨에 파견하는 조건으로 통합사령부를 창설하여 리에넨 육·해·공군 전력 전체를 휘하에 두게 되고, 그 압도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잃었던 국토를 빠르게 수복해 나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했으니,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스토니아의 체제 아래 생활했던 국민들의 처우였다. 


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차별과 계급이 없고 천부인권사상이라는 권리를 몸으로 체득한 이들은 유스토니아 쪽으로 빠르게 돌아섰으며, 일부는 퇴각하는 유스토니아 군에 가담하거나 자생적 게릴라가 되는 등  처리하기 복잡한 골칫거리로 부상한다.


하지만 한창 유스토니아 군을 축출하기 바빴던 리에넨·노라드 연합군에겐 그런 그들을 일일이 구분하고 색출할 여유나 의지 따윈 없었고, 통합사령부는 그들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 그들에겐 불행히도 연합군의 총부리가 겨누어지게 되는데….


“탄약 더 가져와! 당장!”

“알겠습니다!”


퇴각하는 적의 등을 향해 기관총을 끊어쏘던 크리스 한 상병은 탄입대에 꽂힌 탄창들이 바닥을 드러내자, 부사수인 밀러 일병을 닦달했다.


사흘 전, 노스엔드 카운티의 시청소재지인 녹스빌 함락을 목표로 투입되었던 31사단 301연대 2중대가 맞이한 상황은 연합군의 춘계 대공세 이후 벌어졌던 전투들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병력 투입 전의 공격준비사격, 그 전에 이루어지는 항공폭격. 해안선이 근접해 있으면 전함의 지원포격이 날아들었으며, 그런 압도적인 화력지원이 끝난 후에도 적 방어선을 파고드는 최선봉에는 항상 아군의 중전차가 따라붙었다.


“밀러, 이 개새끼야! 너 때문에 저놈들 놓치면 책임 질 거야?!”

“죄, 죄송합니다, 상병님!”


그러니 크리스가 속한 31사단과 같이 이미 형성된 교두보를 타고 넘어 붕괴된 적 방어선에 육박하는 부대들은 일방적으로 전투를 주도하는 것이 보편적인 양상이었다.


“넌 씨발 항상 반박자 느려서 탈이라고.”


툴툴거리며 밀러 일병이 건네는 탄창을 받아든 크리스는 기관총 우측에 위치한 탄창멈치를 눌러 빈 탄창을 제거하고 곧바로 왼손에 들린 새 탄창을 꽂아넣었다. 


“뒈져, 씨팔! 뒈져!”


사심 섞인 욕지거리와 함께 불을 뿜는 크리스의 기관총은 그의 바람대로 퇴각하는 유스토니아 군 병사들의 뒤통수를 향해 총알을 쏟아냈고, 얼마 안 가 그자리엔 앞으로 거꾸러진 시체들 위로 붉은 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것에 비례하여 크리스의 기관총은 총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고, 그건 빈 탄창들 옆에 대충 던져진 예비총열도 크게 다를 것 없는 형편이었다.


“상병님, 기관총 사수들은 전부 모이라는 소대장님 명령입니다.”

“한창 재밌을 땐데 그 양반은 왜 또 처부르고 지랄이야!”


애꿎은 밀러 일병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크리스였지만, 계급이 깡패라고 기관총의 양각대를 접고 신속하게 자리를 이탈하여 소대본부가 위치한 후방의 참호를 향해 내달렸다.


이미 아군이 승기를 잡은 전투인만큼 그가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총탄이 빗발치는 일은 없었으며, 다만 소대본부 근처에서 쏘아대는 박격포 발사음만이 이곳이 전장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상병 크리스 한, 부르셨습니까.”

“어, 그래. 일단 거기 서 있어.”


크리스의 인사에 건성으로 답한 소대장 파이필드 중위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로 손가락을 들어 참호 뒤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크리스와 같은 분대지원화기 사수들이 대열을 이루고 있었고, 그 숫자는 딱 소대 직할 화력지원조 소속 인원까지 합쳐 다섯 명이 모여 있었다.


아무리 승기를 잡은 전투라곤 하나, 보병부대 최일선에서 화력을 책임져야 할 분대지원화기 사수들이 자리를 비우게 한 것은 썩 전술적인 판단은 아니었으며, 그걸 증명하듯 그들은 저마다 초조하거나 불안한 표정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다른건 아니고, 연대장님 명령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파이필드 중위는 무심하기 그지없는 말투로 자기 할 말만을 늘어놓았고, 다른 것보다도 먼저 연대장 명령이라는 점을 언급하여 병사들의 반발을 차단했다.


“각 소대마다 한 명씩, 기관총 사수 차출해서 반국가세력 토벌을 지원하라신다.”


그리고 그런 권위주의를 앞세운 태도와는 별개로 명령의 내용은 충격적이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반국가세력 토벌. 전쟁 초반에 지리멸렬하여 1년 넘게 국토의 몇 할을 내줬던 상황에서 그곳의 주민들이 적성세력에게 부역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해서라면 그런 사실쯤은 몇 번이고 메워버리려는 것이 연합군 지도부의 방침이었다.


“그래서, 자원할 사람?”


파이필드 중위의 물음도 말이 좋아 자원자 운운하는 것이었지, 실상은 알량한 연줄 하나 없는 불행한 병사를 색출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네 집안이 어느 높으신 집안의 가신으로 있는 누군가의 가신이라던가, 이름난 기업가가 운영하는 사업체의 직원이라던가, 하다못해 중대 보급관의 지인이라는 식의 연줄 말이다.


“없으면 내가 무작위로 뽑는다.”

“상병 크리스 한, 지원하겠습니다.”

“좋아, 1600시까지 연대 선점중대 집결지로 가면 돼.”


그러니 결국 자원한 건 그런 알량한 연줄조차 없는 크리스뿐이었다.


경우야 어찌됐던 위의 토벌 임무는 결국 자국민을 상대로 총부리를 들이미는 일이었고,


그런 일에 좋다고 자원하는 이들이 있을 리 만무했으니 해당 집결지로 모여드는 병사들은 모두 크리스와 같이 뭐 씹은 얼굴을 하고있었다.


"우리가 무슨 목적으로 여기 모였는진 따로 설명 안해줘도 된다고 간주하겠다."


파이필드 중위가 알려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 중대 집결지에 다다르자, 크리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늙수구레한 행색의 대위 하나가 병사들 앞에 서서 무어라 훈시하는 모습이었다. 


크리스는 버릇과도 같이 그 대위의 계급장이 붙은 견장에 무슨 장식이 달렸는지를 확인했고, 그가 아무런 장식을 달고있지 않은 별 볼일 없는 위관급 장교라는 걸 알아채는 대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연줄이 없어서 강제로 차출된 건 병사인 자신들 뿐만이 아니었다. 


문제는 중대장부터가 저런 인물이어서야 유사시 연대 지휘부는 입 싹 닫고 자신들을 털어내 버리겠다는 속내가 뻔히 보인다는 것.


"일단 마을로 들어서면 대문에 X표시가 된 집들을 우선적으로 심문하라."


더 큰 문제는 지금 중대장은 자신이 처하게 된 이 상황을 출세를 위한 발판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거였다. 


"심문 과정에서 도주 우려가 있거나 조금이라도 수상한 모습을 보이면 즉시 사살하고."


주민들을 사살해도 된다는 내용을 전달하는 와중에도 눈하나 깜짝 안하고 비릿한 웃음마저 지어보였다는 건, 그에게 군사적인 재능이나 군인으로서의 자질 운운하기 전에 사람됨을 먼저 의심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1소대가 마을 서편, 2소대는 동편을 맡고, 3소대와 중대본부가 나머지를 맡는다. 이상."


하지만 불행히도 토벌작전은 그대로 진행됐고, 그들로선 재수없게 민간인의 피를 자기 손에 묻힐 일이 없기를 바라며 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4.


"저새끼 쏴버려!"


중대장의 외침에 여느 병사들이 그런 것처럼 시체구덩이를 넘어 달려나가는 소년의 뒤를 겨냥한 크리스는 망설였다.


이제 겨우 일곱, 여덟살 밖에 안되는 어린 아이다.


그것도 자신의 아비는 유스토니아 군에 가담하고 어머는 그 조력자로 몰려 처분당한 고아. 상식적으로 국영 고아원 내지는 보육원으로 보내져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중대장님,"

"이 병신아! 방아쇠 하나 당기는 게 그렇게 힘들어?!"


크리스와 마찬가지로 그 아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걸 망설이던 병사 하나가 중대장에게 항변하려 했지만, 결과는 참혹하기만 했다.


"이리 내, 이 새끼야!"


중대장은 강압적으로 크리스의 왼편에 있던 병사의 기관총을 빼앗아 소년을 조준했고,


'드르륵-'


그의 손에 들린 기관총은 경쾌한 발사음과 함께 총탄을 쏟아냈다.


계속해서 소년을 겨냥하고 있던 크리스는 총탄이 소년의 뒤통수에 꽂혀 편지봉투 열리듯 피와 뇌수를 쏟아내는 걸 그대로 목도했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중대장의 얼굴을 살피니 아까와 같은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아무리 전쟁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지만 이건 그 궤를 벗어난 행동이었다.


대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길래 이런 처분을 받는 건지 크리스로선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누구 하나 중대장의 행동을 지적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앞으로의 상황이 악화일로를 걸은 것이란 건 너무도 자명했다.


"뭐해, 계속 하던 일 하라고."


중대장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병사들을 향해 덤덤한 어조로 그리 말했고, 그에게 압도되어 명령을 거스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크리스는 다른 병사들과 함께 대문에 X표시가 칠해진 집을 찾기 시작했다.


녹스빌은 노스엔드 카운티의 정문 소리를 듣는 마을이었던만큼 전쟁 초기부터 쭉 유스토니아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건 곧 그들의 체제 아래 협조하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걸 의미했으나, 작금의 상황에서 중대장을 비롯한 진급에 목마른 연줄 하나 없는 장교들에겐 그저 더러운 부역자들이 살기남기 위해 핑계를 대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희 아버지는 왕립해군 기관병이라고요!"

"닥쳐, 이 부역자 새끼야."


그걸 증명하듯 장교들은 주민들이 어떤 변명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았고, 그들의 그런 잔학한 태도는 병사들 사이에서 전염병과도 같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전 부역자가 아니에요!"

"유스토니아군 급양지원 134시간, 간호원 활동 280시간. 이렇게 기록이 뻔히 있는데 부역자가 아니라고?"

"그럼, 그놈들 아래에서 1년 넘게 살면서 굶어 죽으라고요?!"

"방금 자기가 부역자라고 인정했네. 끌고가."


주민들의 항변을 교묘한 방향으로 유도하여 억지 자백을 받아내는가 하면, 상식적으로 반박이 불가능한 부분들은 애써 무시해가며 이 말도 안되는 학살극을 이어갔다.


"이봐 상병, 이제 자네 차례야."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불행히도 중대본부에 소속됐던 크리스는 중대장의 직접명령을 받아가며 교대로 시체구덩이 앞에 세워진 주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었다.


제발 아이만은 살려달라며 비는 여인,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울고만 있는 아이, 지금 처한 상황이 개탄스럽기만 한 노인까지.


방아쇠를 당긴 채로 한번 쓱 가로로 훑고 나면 모두가 평등하게 피안개를 흩뿌리며 침묵했다.


사격이 끝나면 다시 자리로 돌아가 총기를 수입하고 소대 소속 인원들이 끌고 온 부역자들을 인계받아 시체구덩이 앞에 세워놓은 뒤, 중대장에게 보고.


반인륜적이고 비논리적인 학살의 장이었지만 같은 행위들을 몇번이고 되풀이하다보니 병사들도 점차 인간성이 마모되어 별 거부감 없이 덤덤하게 토벌작전을 수행해 나갔다.



"이 반동괴뢰들아! 자기나라 국민도 못지킨 주제에 무슨-"

'탕!'


개중에는 자신들의 불합리한 처우에 항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돌아가는 건 납 탄환 뿐이었다.


애초에 그런 비판을 수용할 정도로 이성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가능했다면 통합사령부나 예하 부대 지휘부에서 이런식의 토벌작전을 지시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좋아, 이제 마무리 해."


그리고 그 비이성적 행위의 끝을 장식한 건 방화였다.


중대장의 마무리 하라는 말 한마디에 병사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미리 준비해 두었던 휘발유 통의 뚜껑을 따 빈집들과 시체구덩이를 향해 들이 부었다.


이윽고 그것들은 시뻘건 화염을 토해내며 불타올랐고,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자들의 비명소리와 미처 데리고 나오지 못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는 마치 인세에 지옥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잔혹하기 그지없는 풍경은 녹스빌 뿐만이 아니라 노스엔드 카운티, 더 나아가 연합군이 진주하고 있는 전선 전체에 걸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모든 것은 리에넨 왕조의 번영을 위해.




5.


"지난 50년간, 그 때 그 일을 한 순간도 잊을 수가 없었어."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내려놓은 상사님의 눈시울엔 어느새 눈물이 고여있었고, 숨소리는 점점 가빠져 갔다.  


승전국의 작은 일탈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잔혹했던 역사의 뒷면. 


나같은 자칭 프리랜서 기자 나부랭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크고 무거운 진실이었다. 


"이런 나를 비난해도 변명할 생각은 없네."

"비난하지 않을겁니다."


나의 즉답에 상사님은 눈물을 거두지도 않은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남들이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진실을 상사님께선 있는 그대로 밝혀주셨습니다."


지금 상사님이 받아야 할 대우는 범죄자의 낙인을 찍는 게 아닌 양심을 간증한 내부고발자로서 보호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동안 부대의 명예니 군인으로서의 명예니 했던 것들도 결국은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얽힌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재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죠."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네."


아직도 떨리는 목소리로 그리 답한 상사님은 고개숙여 내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해야 하는 건 상사님이 아니라 바로 나인데. 


"내 이야기, 꼭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도와줘."

"저도 노력해보겠습니다."


원룸 밖을 나서는 내게 상사님이 건넨 말은 그게 다였다.


나도 마음같아선 반드시 신문에 실어주겠노라고 확답을 주고 싶었지만, 아직도 따라붙는 군 공보국의 간섭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미지수였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영웅담을 듣고 싶어하지 그곳에서 벌어졌던 비극에 대해선 눈을 돌리려 하고 전쟁에선 항상 고귀한 희생과 감정들이 흘러넘친다고 생각하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도 나는 버릇처럼 우체통을 뒤져 내게 온 편지가 있는지 확인한다.


아직 세상에는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