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최북단의 백두산으로부터 뻗어내려오는 대간의 중간 자락에는 한봄에도 소복한 백발을 뽐내는 봉긋이 솟은 산 하나가 있다. 도시를 두어 곳이나 감싸고 솟아 하늘을 그 정상으로 찌를 듯이 보이는 그는 고산지방의 추위를 타고 한겨울에 하달받은 눈송이를 소복이 쌓아 둔다. 입춘이 가고 날이 풀리거든 그 밑의 밭고랑마다 눈 녹은 물 머금은 새순이 파릇한데, 소백산 봉오리마다 아직도 눈발을 희끗하니 감추어 두고 마는 것이다. 마침내 산 우에 흰 것이 보이지 않게 되거든 겨우내 아껴두었던 그 깨끗한 샘을 끌어다가 새순 돋을 자리에 대어 놓는다. 진분홍의 산철쭉으로 한껏 치장한 소백산은 일기가 좋은 날이면 탁 트인 지평선의 사방을 에워쌀 듯이 그 위용을 떨친다.
나는 소백산 자락의 산촌에서 자라났으나 실은 소백산의 그 꽃 피는 정상을 탐정해 볼 엄두는 여태 내지 못하고 있다가, 사진전에서나 보던 그 아름다운 경치를 글로 옮기어 본다. 냉골 같은 냇물은 그 산에서나 내려오는 것인가, 겨우내 단단히도 얼어붙은 수면 아래로 세차게도 흘러 남으로, 남으로 떠돈다. 허름한 벽돌집 앞에 흐르는 냇물 소리를 들으며 자라난 마음에도 냇물이 하염없이 흐르는 모양이다. 콘크리트 교각에 걸터 서서 흐르는 냇물을 지켜보노라면 가슴 한켠을 시원하게 씻기우는 느낌이 든다, 시큰해져 온다. 본가를 타향에 두었을지언정 나의 발은 그곳의 그 냇물에 묶였는가, 항시 졸졸 흐르는 냇물 소리를 머릿속에 들으며 향수에 흠뻑 젖는 것이었다.
그러나 타향에 살기를 수 년, 나는 인차 그곳의 말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가슴을 출발하여 혈류를 타고 돌던 소백산의 맑은 냇물도 이제 그쳐만 가고, 이따금씩 뇌리를 간질여 오던 잔잔한 냇물 흐르는 소리, 느티나무 잎사귀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도 잦아들어 가면, 나는 더 이상 마음의 고향에 대한 어떻다 할 연정도 없이 이 타향 땅에서 말라비틀어져 간다. 다만 아직 말라죽지 않은 마음의 천지, 작약 피고 패랭이꽃 피어 있는 외가의 앞마당에서 듣던 세찬 냇물 소리가 완전히 멎지 않은 까닭에 나는 사진전의 철쭉 핀, 철지난 마음 속의 소백산을 소설인지 시인지 모를 이 글월 속에 그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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