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쳐 도는 남한강 자락의 여주 고을에는 큰 절이 많이 있다. 가파른 마암의 절벽에 곧게 서서 지금도 여강을 바라보는 신륵이 유명하거니 그 언제인가 불에 탔는가 홀연히 사라진 고달사의 승탑 역시도 알아줄 만하다. 목조의 사원이 시뻘겋게 타들어갈 때조차도 고달사의 승탑만은 굳건히 남아 그날의 그 열기까지도 고스란히 담은 채이다.

나는 이 여주에 뿌리를 박은 나로서야 고달사지 이야기는 가는 귀에 알음알음 들어가며 마음 속에 떠오르게 되었으나, 다만 고달사의 그 세월 맞은 승탑을 쓸어보지는 못하였다. 그저 고달사지의 명성만큼을 들어보며 오가는 길에 눈길 주었을 뿐 직접 본 적은 없는 것이다.



불심 깊은 한 청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고달로, 노모와 아내를 모시고 독실히도 사는, 극성의 불자였다. 그러나 석조 금박의 대불 앞에 치성을 드리는 그조차도 마음으로는 속세의 영광을 빌고 있었으리라. 귀티가 나는, 두꺼운 귓불에 석조임에도 붉은 빛이 은은히 감도는 듯이 탐스러운 입술, 곱게 땋은 머리 한 가닥 한 가닥이 스승의 위엄을 과시하는 듯 빳빳이 선 인도 왕자의 모습에서는 어딘가 쓸쓸한 모습이 풍겨온다. 고달의 독실함도 알아주나 앞에만 서면 자연히 그 풍채에 압도될 만한 불상의 경건함에 그는 마음을 뻬앗긴 것이다. 문지르는 양 손바닥의 미묘한 감촉과 불상의 그 자태는 고달을 모종의 황홀경에 빠뜨렸다.

고달은 늘상 꿈꾸었다. 제 자신 석수장이 집안에서 자란 그는 인부들의 돌 쪼는 소리를 귀에 새기며 잠들고 깨었다. 망치로 말없이 정머리를 두들기며 돌부처며 석탑이며 찬찬히 닦아내는 인부들의 모습에서는 목탁 두들기며 경 외는 승려의 모습이 읽혔다. 경도 읽지 못하는 석수장이라고 업신여김도 받기야 받았으나 고달의 눈에는 새로운 경건함이 인부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따라서 고달 역시 석수장이로서 돌 쪼개는 정의 차진 감촉을 느끼는 것은 하나의 숙명이요, 불자로서 부여받은 길이었던 것이다.

하기야 그에게는 굳은살 박힌 손의 석수장이로서의 모멸감 같은 것은 단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금장의 위용을 떨치는 불단의 대불도, 또 대웅전을 나와 고즈넉한 사원의 언저리에 가지란히 앉은 석탑까지도 모두 그 거칠은 손에서 나왔다는 것을 고달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석수장이의 그 고된 노역까지도 제 등에 지워진 업처럼 담담히 받아들였다.

“고달이, 고달이 있는가.”

노승의 목소리가 대문 밖에서 고달을 찾았다. 고운 적갈색의 가사를 두른 노승은 불전에 앉아 매너리즘적으로 불경을 외는 소박함과는 다른, 어떠한 노승으로서의 거룩함을 은은한 빛처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꼬리는 하지 못할 말이 있는 듯이 고달을 향해 쭈뼛거릴 뿐 맞서 오는 말은 한마디 없었다. 한참을 섰는 노승은 마침내 그에게 용건을 내놓았다.



옻칠을 한 목재의 기둥이 번들거리는 일주문을 들어서자 고달은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 수려한 천연색의 단청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처마를 수놓는다. 그 누구의 작품인가, 금성의 대사원을 작게 빼다 놓은 듯한 대웅전과 관음전은 아담한 산사의 미학을 한껏 뽐내었다. 어떠한 어휘를 갖다 붙여도 좋을 만큼, 산사의 그 미는 누군가 고달의 머리를 후려친 듯이, 밤을 새어 한달음에 달려온 그의 정신을 얼얼하게 했다.

바람결에 슬쩍 열린 틈으로 황금색의 미광이 흘러나온다. 관음전의 황금상은 내려깐 눈으로 고달을 흘끗 쳐다본다. 그 분위기 탓인가, 고달은 불심에 도취되는 듯한 인상마저도 받았다. 천천히 삐져나온 빛은 고달의 마음을 휩쓸고 감돈다. 그 금빛 파도가 고달의 마음 속 대웅전의 그 대불까지도 적실 듯하자 고달의 마음 속에는 왠지 모를 배덕감과 질투감까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그 마음 한켠의 창작욕을 불태웠다.



쇠끌이 대리석 표면을 살살 내리친다. 돌가루가 흩어지고 나면 그 면에 파문처럼 연꽃 무늬가 인다. 진흙 속만이 아니라 대리석에서까지도 연꽃이 피어난다. 석수장이의 끌질하는 소리는 설법하듯이 법당을 가득 메우고도 밖으로 울려퍼진다. 정 맞고 거칠어진 돌 위에 구슬땀을 떨구는, 불탑에 넋을 바친 이의 수행하는 현장은 뭇 중들과 신도들의 정신마저도 잡아놓았다.

고달의 관심사는 이제 오롯이 탑에 있었다. 방해가 되는 머리조차 깎아버린 채로, 승복을 입고 불탑 착공에 매진하는 그의 모습에서도 그 노승만큼의 숭고함이 묻어나왔다. 그 자체로 하나의 불탑이 되어가는 고달의 마음에는 불심도, 처음의 배덕감과 질투도 관심사에서 벗어난 지가 오래였고, 이제 그는 탑을 완성하는 데에만 온 정신을 쏟아부었다. 말라비틀어진 팔을 덜덜 떨며 망치질을 하는 고달은 마치 탑에 매달려 작업을 하는 듯도 했다.

"여보!"

고달은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을 스치는 것을 들었으나 뒤돌아보지 않고 불탑 쌓기에만 열중했다. 그의 머릿속엔 돈을 벌어 돌아가겠다는 일전의 목표조차 잊어졌다. 그저 탑을 완성하는 것만이 지금 그의 존재 의의였다.

여자는 고달의 어깨를 돌려세웠다. 쇠붙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곤두박질했다. 초점 없는 고달의 눈에는 불탑의 연꽃이 박혀 있는 듯도 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래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이제 집으로 돌아갑시다, 응?”

설득을 듣는 그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러나 그런 고달의 눈물은, 날 다시 되돌려달라고, 다시 불탑을 깎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눈물이었다. 대리석의 회백색이 녹아난 눈물이었다. 어미를 보채는 코흘리개 같은 눈물을 흘리는 고달의 앞에서는 아내의 굳은 결심도 별 수 없었다.

“그래요, 여보, 부디 건강하세요.”

큰절을 올리고 여자는 돌아서서 다시 먼 길을 떠났다. 그러나 아내와의 작별이 아쉽지 않은 듯이 고달은 어깨를 털어내고 사투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의 사태 앞에 굳어진, 사찰을 에워싼 적막 가운데로 고달의 끌질 소리만이 조용히, 파문을 이루며 울려퍼졌다.



많은 소식들이 들려왔다. 겨우내 아내는 얼어 죽고, 장사를 지내었다. 노모도 고달을 찾아오다가 거꾸러졌다. 다만 굳건히 선 것은 고달과 불탑이었다. 지금에는 마치 불탑에 몸을 묶고 섰는 듯, 사투 끝에 깡마른 고달의 몸은 힘없이 탑의 한 구석을 붙잡고 끝없는 끌질을 계속할 뿐이었다.

몇 해가 가고, 불탑도 완성의 직전에 놓였다. 그러나 그의 넋을 불탑의 완성에 모두 걸어놓은 탓인가, 고달은 불탑이 완성될 것이 마냥 두려웠다. 끌질도 하염없이 느려만 갔다. 그가 붙든 탑이 완전히 세상에 태어나는 날, 그를 붙잡고 있던 탑은 모순적이게도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고달은 불탑을 모두 쌓아올리고 나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잊어버렸다.



“…나막알약바로기제새바라야….”

낮고 느린 염불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신도들은 불탑을 바라보며 절로 혀를 내두른다. 정교하게도 깎인, 그 길다란 몸을 또아리 틀며 나아오는 듯 불탑의 기둥을 떠받친 용의 형상이며 육각의 일면마다 새겨진 연꽃 무늬와 탱화며, 도무지 사람의 솜씨라고는 할 수 없는 그 정교한 작품들에 대한 영탄이 줄을 이뤘으나 고달은 염불 소리를 장송곡처럼 들으며 말라붙은 입술을 연신 매만질 따름이었다.

무명의 산사에는 고달의 수고로움에 탄복하듯 ‘고달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자신도 제 이름 붙은 산사의 중이 된 고달은 깡마른 손으로 거친 연꽃을 매만지며 염주를 꼭 쥐고 떨었다. 못 쓰게 된 소를 잡아먹듯 제 스스로 목적을 다하였으나 이제 더 할 일을 찾지 못했다는, 그 불안감 탓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삶의 회의가 몰아닥쳐 메마른 목으로만 힘없이 진언을 뻐끔대던 고달은 무언가 결심한 듯이 비장한 얼굴이었다.



난데없는 불에 고달사는 혼비백산이 되었다. 잠을 자던 중들도 모두 정신없이 도망치고, 곤히 잠든 동승들을 깨우러 다니며 바삐 움직인다. 세찬 불길에 목재 사찰이 쩌적 소리를 내며 시뻘겋게 불타올랐다. 앞마당의 연못에도 달밤 가운데 빠알간 화염이 녹아들었다.

“스님, 스님! 도망치셔요! 절에 불이….”

동승 하나가 반쯤 타들어간 고달의 방문을 홱 열었지만,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제 숙명 앞에 무릎 꿇은 뒤였다. 회빛 승복에 불씨가 앉자, 그의 촉루만 남은 몸도 활활 타올랐다. 그러나 고달의 얼굴은 더없이 편안하다 못해 미소까지도 감돌았다. 창작욕의 불길. 제 심장을 깎아 객혈하듯 피조물을 쏟아낸, 제 피조물에 넋을 잃은 석수장이의 끝은 그 창작의 불길에 스스로의 육신까지도 남김없이 타오르는 것이었다. 다만 고달의 넋은 굳건한 불탑에 깃든 채 제 마지막을, 석탑만 남기고 모조리 불타오르는 그 명성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사찰을 호기롭게 삼킨 화마는 불탑까지도 달구어, 대낮같은 산사의 불길 가운데서도 유난히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빨간 불꽃이 녹아든, 그 화염에 잔잔히도 얼어붙은 강물 위에는 푸른 달이 쓸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여주 고달사지에 얽힌 설화에 작가의 창작을 가미해 그려낸 작품으로, '불탑'의 축조에 집착하여 끝내는 스스로의 내면까지 파괴하고 자신의 명성이 담긴 사찰에 불을 지르는 한 청년 '고달'의 흥망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고달은 석수장이였던 부모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석수장이의 꿈을 다진다. 대불전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불상의 모습을 보며 석수장이라는 직업에 확신을 가진 고달은, 어느 날 노승의 의뢰를 받고 한 절에 발을 들인다.


절의 아름다운 절경에 매료된 고달은 그 길로 홀린 듯이 불탑을 깎기 시작한다. 그러나 비뚤어진 창작욕에 사로잡힌 고달은 끼니도 거르고 불탑 조각에만 열중하며 그 몸은 깡말라간다.


아내의 설득에도 감흥이 없는 고달. 이미 그의 마음은 모두 불탑에 빼앗긴 지 오래였다.  "불탑에 넋을 바친" 고달은 결국 그 인생의 목표이자 존재 의의가 된 불탑 공사가 끝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허함에 사로잡힌다. "장송곡 같은 염불 소리"를 들으며 허무감 속에 고뇌하던 고달은 결국 자신의 이름까지 붙은 사찰을 스스로 불태우기로 한다.


그날 밤, 고달사에는 큰 불이 나고 승려들은 모두 대피한다. 동승 하나가 고달을 깨우러 그의 방에 가보지만, 그는 이미 입적할 준비를 마친 뒤였고, 곧 그의 승복에 불이 옮겨붙으며 "제 자신의 명성과 함께" 분신자살을 하고 만다. 불탑에 넋을 바친 뒤였기에 그의 육신은 이미 공허했고, 남은 것은 그가 공들여 조각한 불탑뿐이었다.


불을 받아 빨갛게 빛나는 불탑. 남한강으로 불꽃이 흘러들고, 그 위로 "파란 빛을 내며 달이 쓸쓸히 빛나는" 것을 비추며 소설은 끝난다. 


이 소설의 고달은 왜곡된 창작욕, 그리고 창작에 대한 강박적 관념과 시기심까지 내비쳤던 작가 스스로를 상징하며, 따라서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소재로 여주의 사적인 고달사지의 설화를 엮어 간략한 묘사를 통해 써낸 자전적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