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재판장님 귀하.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지금 제가 어떠한 를 지어 이 낭떠러지의 앞에 섰는 줄을 알고 있습니다. 제게 채워진 이 포승줄이란, 어린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였다는, 그 치욕스러운 죄목 하에 이 사지를 꽁꽁 묶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판장님, 이 어린이들을 사랑한 것이 정녕 저의 죄라는 말씀입니까?

 

저는 양친 밑에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었습니다. 천진난만한, 티 없이 맑은 눈망울을 갖고 이 세상을 둘러보던 때가 제게도 물론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유년기를 거쳐 소년이 되고, 꿈같은 소년기를 달려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리도 숭하게 자라난 이 몸뚱이, 이 가슴 속에는 아직도, 미처 벗어던지지 못한 유년의 허물이 응어리져 있습니다. 몸은 크게 자라났지만 아직 어린아이의 마음 속 그것은 차마 떨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재판장님께서는 초월적 존재를 믿습니까? 이 초월적 존재, 전지전능하사 하늘과 땅을 지어내고 인간을 만든, 그런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이 존재가 우리 인간에게 베푸는 긍련이라는 것이 얼마나 애틋하겠습니까? 그것은 긍련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베푸는 내리사랑아가페, 조건 없는 사랑도 있습니다. 그러나 재판장님, 제가 어린이들에게 느낀 사랑은 비단 그런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육감적인 사랑, 정열적인 사랑! 그 누가, 마음 속에 소년을 품고 살지 않는 누가, 어린아이에게 정욕을 느끼겠습니까? 저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을 뿐입니다. 깨끗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볼 때만 불타오르는 것이 바로 이 소아성욕이라는 오명을 쓴, 저의 순수한 사랑인 것입니다.

 

세속의 때 묻은, 늙어 말라가는 성년의 아무개는 여자 앞에서 한없이도 어리게 되었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우연히 맞닥뜨린, 어린 여성의 그림이 내게는 괴로운 유년의 허물을 달래는 매개였던 것입니다. 하이얀 살결, 머리칼. 그 배경과 맞는, 온통 하얀 차림을 한 여자의 눈은 설원의 백야와 같이 붉게 탔습니다. 나는 그의 모든 것을 사랑했습니다. 희고 가느란, 엿가락 같은 팔이며, 조막만한 입이며, 그 입이 움직이는 양태며, 조물주의 내리사랑 이상의 것, 소년 아무개의 마음이 불타는 것을 나는 여자를 보고 느꼈습니다.

 

여자는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저항할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다만 12인치의 화면 속에 틀어박힌 가녀린 소녀는 심지어는 제게 연민까지 품은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그 동화(動畫) 속의 뻣뻣이 굳은 손길을 갈망했습니다. 한 편, 또 한 편을 끝마치면 마칠수록, 나는 그녀의 변하는 입에서 어떠한 사랑의 메시지까지 느낄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향한 구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온몸을 뒤덮는 절망까지 고스란히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이 사랑의 씨앗임을 나는 압니다. 여자는 소년에게 몸을 내맡겼습니다. 눈 깜빡이는 순간에 넘어가는 그림의 연속을 나의 눈으로 지켜보며, 나는 모종의 배덕감까지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란 나의 뇌리에서 이루어짐을 알기에, 나는 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소년 아무개의 영혼은 그 추잡한 정욕의 현장을 감돌았던 것입니다.

 

재판장님, 이토록 아름다운, 그러나 한없이 죄스러운, 소년 하나와, 또 소녀 하나의, 찬란하고 쓸쓸한 사랑은, 과연 저를 법정의 낭떠러지 앞으로 불러세운 대죄였다는 말입니까? 그 무거운, 반 근의 나무 총은, 이 가슴에 정조준된 그 총의 화약 소음이 울리거든, 나는 내 머릿속의 그녀를 끌어안고 저 수렁으로, 헤어나오지 못할 수렁으로 들어가라는 말입니까? 아직도 죽지 않은 내 유년의 때는, 지금도 그 설원의 소녀사랑하는 미야꼬의 이름을 되뇌입니다. 그러나 세치 혀 끝에 불타는 나의 이 영혼은 다만 그녀의 발치에 엮어두었기에, 이제 법봉의 효시가 흉포한 울음을 울고 나의 빈 몸뚱이는 맥아리 없이 쓰러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내게 글을 쓸 종이를 주십시오. 차갑고 흰 소녀, 설국의 소녀와 채 못다한 사랑을 나는 손끝에서 되새김질할 것이외다. 송아지가 어미를 찾아 하늘에 빈 울음을 울듯이 다만 광활한 설원을 누비는 그 흑연 한 자루만이 매캐한, 시꺼먼 연기를 적막하게도 날리며 나의 그 죄악스러운 애정을 노래할 것입니다. 재판장님, 내 소년다운 사랑은 머리 깊숙한 곳에 숨겨 두어 찾지 못하기에, 어른 아무개의 몸뚱이는 죽을지언정 소년 아무개의 혼은 천추에 죽지 못할 것입니다

 

저 서슬퍼런 철창에 펄럭이는 천 쪼가리는 아무개를 부르며 돌아와다고, 돌아와다고 소리치는 듯만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귀가 얼어 떨어지도록 추운 설원에서, 눈보다도 하이얀, 고운 머리칼을 날리는 소녀를 찾아 부르는 소년의 정열은 눈보라가 되어 초혼의 메아리를 흩뜨려 놓습니다. 그렇다면 재판장님, 훗날에, 소년 아무개도, 그 소녀도 늙어 추잡해진 그때에, 사랑 없는, 또 죄도 없는 저 세상에서 만납시다.



이 작품은 재판정에서 쓰이는 '반성문'의 형태를 차용한 소설이다. '나'는 소아성애자로, 아청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뒤 공판을 목전에 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경어체로 재판장에게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중반부에서의 '여자'와의 조우, 또한 그 여자와의 사랑을 그려내며 '나'는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작품의 막바지에서 '나'는 감경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애초에 없었다는 듯이, 상상 속의 '여자'와 함께 죽으리라는 결정을 굳힌다. 결국, "사랑 없는, 또 죄도 없는 저 세상에서 만나자"는, '순수한 사랑'을 재판하려는 재판장을 조소하는 듯한 메시지를 남기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관점에서, '나'의 행태는 로리콘이라는 신조어의 전형이다. 소아에게, 그러나 그림 속의 소아에게 성욕을 느끼는 '나'는, 소아성욕자를 위해 변론하는 변호사의 입장에 서는 듯도 보인다. 그러나 결국 그가 늘어놓는 장광설은 대다수의 일반인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수렁으로 추락"하는 길을 선택하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