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대장들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에 달려간 현장은 그야말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야 이 개새끼야! 뭐가 어쨌다고?!”

“제가 잘못─”

“남작가의 서자 따위가! 자기 분수를 알게 해 드리죠!”

“……커흑!”


목 아래까지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취한 앤슨 소위와 클라크 소위가 그런 이해하기 어려운 욕설과 함께, 자기들보다 족히 두 배는 큰 덩치의 남군 중사 하나를 두들겨 패고 있었다. 


바닥에 엎어진 상태에서 군홧발로 차이고 밟히던 그 남군 중사의 상태는 빈말로라도 괜찮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


이마에 길게 생채기가 나고 피멍이 든 얼굴에선 코피가 터져 흘러내리고 있었고, 걸레짝이 되어버린 전투복은 군데군데 찢어져 시퍼런 멍 자국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저거 저러다 진짜 사람 하나 잡겠네.’


그 꼴을 보니, 최소 한 달은 병원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견적이 나왔다.


“너네 지금 뭐 하냐.”


그런 난장판의 한가운데 돌을 던지듯 내뱉은 나의 한마디에, 2, 3소대장은 물론 싸움 구경 나왔단 대대 내의 다른 간부들의 시선이 날 향해 꽂혔다.


“각 중대별 최초 발견자 한 명씩 남고, 나머진 전부 들어가.”


물론 그런 시선 따위 신경 쓸 정도로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사태 수습 도와줄 것도 아닌 인간들이 웅성거리니 괜히 신경만 더 쓰였다.


정작 지금 내가 신경 써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 말이다.


“둘 다 옆으로 비켜 서 있어.”


지금도 술 냄새를 풍기며 무어라 변명하려는 2, 3소대장을 밀치고 들어가자, 얻어맞고 있던 당사자의 상태는 훨씬 심각해 보였다.


시퍼렇게 군홧발 모양으로 찍힌 피멍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고, 탁구공만 하게 부어오른 왼쪽 눈과 터진 입술에는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괜찮습니까? 관등성명 댈 수 있어요?”

“주‥, 중사, 패트릭 하워드.”


쿨럭거리며 피거품 섞인 침방울을 뱉어내던 하워드 중사는 나의 부축을 받아 바로 설 수 있었는데, 다리를 저는 것을 보니 X선 촬영을 할 필요가 있었다.


“소속 중대와 직책을 말해주세요. 지금 바로 구급차를 부르겠습니다.” 

“2중대, 3소대, 부소대장입니다.”

“부중대장, 가서 대대 구급차 대기시키고 당직사령한테 보고해.”

“예, 중대장님.”


그다음은 뭐, 5분 뒤에 독신자 숙소 후문에 도착한 구급차에 하워드 중사를 태워 보냈고, 당직사령인 대대 군수 장교에게 한 시간 넘게 욕을 먹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하워드 중사의 상태가 우려했던 것만큼 심각하지 않았다는 것과 곧 전역을 앞둔 군수 장교가 융통성을 발휘해 헌병대 소집 대신 내가 직접 끝을 본다는 조건으로 사건을 무마해 줬다는 것.


문제는 앤슨 소위와 클라크 소위의 출신배경이었다.


리에넨 굴지의 대기업인 임페리얼 모터스 상무이사의 딸과 파르스 백작 가의 외조카를, 중대장이라곤 하나, 한낱 외지인 출신인 내가 벌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둘 다 업무에서나 사석에서나 붙임성 좋게 굴어주긴 했어도, 수틀리면 외지 출신 낙하산 대위 하나 짬 시키는 건 일도 아니겠지.


그래서 내가 내린 판단은 이것.


“웰링턴 중위, 2중대장 숙소가 어디지?”

“독신자 숙소 2층 왼쪽 맨 끝방입니다.”

“우린 지금 여기 있는 애들 싹 다 데리고 2중대장 숙소로 간다.”

“알겠습니다.”


징계 결정권자와 증인의 수를 늘리고, 겸사겸사 이번 일의 피해자 중 하나가 될 2중대장에게 사죄하는 것으로 후폭풍을 최대한 차단하는 것이었다.


나의 그런 판단이 썩 나쁜 방향은 아니었는지, 부중대장도 별 반대 없이 나의 뜻을 따라 주었다.


“너넨 대답 안 하냐?”

“알겠슴다.”

“알겠습니다.”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앤슨 소위와 클라크 소위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멀뚱히 서 있기만 했었고, 내 군 생활 중 최악의 상황 탑3에 해당했던 유사사례를 끄집어내니, 절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때는 네가 책임질 거 아니면 대충 덮으라는 대대장의 닦달에 나 혼자 독박 쓰고 끝내 진급 심사에서 탈락했었지만, 여기서까지 같은 작태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제발 정신 차리고 잘 좀 따라와라, 이것들아.’


“실례합니다, 3중대장입니다. 2중대장 자리에 있습니까.”

“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노크와 함께 그리 용무를 밝히니, 안쪽에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젊은 여성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2중대장 출신이 어떻게 되지?”

“예, 던포드 백작 가의 장녀이자, 왕립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저보다 3기수 선배이십니다.”

“거물이네.”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생도 시절 별명이 날개 없는 천사였거든요.”


별 기대 없이 한 질문이었지만, 꽤 자세하게 일러준 웰링턴 중위의 브리핑에 나는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말대로 2중대장이 천사 소리 듣던 호인이라 쳐도, 자기 부하를 저렇게 묵사발을 내버렸다는 건, 자기 가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그럴 경우, 나와 소대장들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지는 아마 무릎 꿇고 손바닥 싹싹 비비면서 선처를 구하는 거겠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우선─ 푸흡?!”


그렇게 한없이 부정적인 전망만을 머릿속으로 그려내고 있던 와중 들려오는 소심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난 조건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막 샤워를 끝낸 참인지, 물기가 남아있는 흑색 단발과 착 달라붙는 잠옷까지는 어떻게 넘길 수 있었지만, 단추를 제대로 채우지 않아 노골적으로 드러난 살결들은 다른 의미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가뜩이나 키도 나와 비슷해서 원하지 않아도 여러모로 민감하기 그지없는 포인트가 훤히 들여다보이고 있었는데,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넘기면 좋을지 대책이 서질 않았다.


“중대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일단 이쪽으로 오지 말고, 애들 데리고 거기 서 있어, 부중대장.”


순간 나의 이변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건지, 날 향해 다가오는 웰링턴 중위를 만류하며 다시 2중대장에게 고개를 돌려 봐도 상황은 마찬가지.


이 인간, 지금 자기가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전혀 눈치 못 채고 있다. 


“저, 2중대장님, 나오시기 전에 그, 단추를 좀, 채워주시겠습니까?”

“어머, 내 정신 좀 봐.”


한동안 만면에 물음표를 띄워놓고 있었던 2중대장은 나의 그런 지적에 별로 놀란 기색도 없이 느긋하게 옷깃을 여미며 단추를 채워나갔다.


그 태평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리에넨 유수의 귀족 집안 자제라길래 잔뜩 쫄아붙어있던 내가 다 민망해질 정도였다.


“네, 이제 말씀하세요.”

“우선 늦은 시간에 이렇게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뇨, 저도 딱히 바쁜 건 아니라서요.”

“그럼, 잠시 실례해도 괜찮겠습니까?”

“바깥에 기다리고 있는 분들도 그렇고, 같이 들어오세요.”


흔쾌히 숙소에 발을 들이는 것을 허락한 2중대장에게 작게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대신하고, 이만 들어와도 된다는 의미로 부중대장에게 손짓하자, 날 포함해서 총합 여덟 명의 인파가 2중대장의 숙소로 들이닥쳤다.


2중대장의 방이 나와 같이 독신자 숙소 내에서도 그나마 평수가 큰 참모장교용 숙소라서 다행이지, 일반 간부용 숙소였으면 진작에 만원 전철 꼴을 면하지 못했겠지.


“다름이 아니고, 저희 중대 간부와 2중대 간부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 찾았습니다.”

“그렇군요.”


좋은 소식은 아니었을 나의 말에, 못해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놓을 거라 우려했었지만, 2중대장은 겉으로 보기엔 별 심경의 변화 없이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건 표면적으로만 보이는 모습이지, 감정을 읽을 수조차 없는 저 검은색의 깊은 눈동자는 알만한 사람에겐 필요 이상의 위압감을 주고도 남을 정도였다.


“…일단 사건의 경위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중대장.”

“예, 중대장님.” 


그 꺼림칙한 시선을 뒤로 하고 부중대장을 시켜 사건의 전반적인 경위와 증언을 보고할 때도, 2중대장은 느긋하기 그지없는 태도만을 보여주며 나를 포함한 숙소 내의 간부들을 쭉 훑어보는 게 다였다. 


딱 한 번, 하워드 중사가 나와 두 소대장을 싸잡아 입에 담기에도 뭐한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고 진술하는 부분에서 눈썹을 한 번 꿈틀거렸을 뿐,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정작 그때, 속에서 끓어오르는 짜증을 참지 못하고 헛기침을 했던 내가 더 부끄러울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3중대장님은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죠?”

“그게, 저 혼자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건 적절치 못한 처사라 생각되어 이렇게 2중대장님을 찾아뵙게 된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는요?”

“부끄럽지만, 전 아직 리에넨의 사회상이나 군법에 해박하지 않습니다. 섣불리 결정을 내렸다간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흠…….”


뭐 하나 가릴 것 없이 있는 그대로 내 심경을 털어놓자, 2중대장은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부임한 지 이틀밖에 안 된 신임 중대장이 갑자기 찾아오더니, 자기 중대와 그쪽 중대 간부들 사이에서 험한 말과 주먹이 오갔고 그중에 한 명은 병원까지 실려 갔다고, 그러니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도와달라고 하면 머리가 아플 만도 했다.


더군다나 먼저 시비를 건 것도 그쪽, 두들겨 맞아서 병원에 실려 간 것도 그쪽 간부인 만큼, 책임소재 이전에 속된 말로 쪽팔리는 상황으로 다가올 공산이 컸다.


“먼저, 제 부하에게 그런 모욕적인 언사를 당하신 건, 저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끝에, 2중대장은 별안간 감았던 눈을 슬며시 치켜뜨며 입을 열었다.


“하워드 중사는 평소에도 워낙 말을 함부로 해서 주의를 줄 만큼 줬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말끝을 흐리는 것과는 달리, 2중대장은 여전히 그 느긋하고 태연하기 그지없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런 가운데 미세한 감정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난 눈치가 없지 않았다.


좋든 싫든 밥벌이로 군 생활을 하다 보면 알고 싶지 않아도 대충은 상대하고 있는 사람의 심리가 어떤지는 알 수 있게 된다. 


하물며 그 상대가 같은 군복 입은 장교라면?


구태여 더 이상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관건은 당사자들의 처벌 수위입니다.”

“그냥 쌍방과실 처리하면 안 되나요?”

“2중대장님, 지금 이거 대충 넘기면 나중에 더 피곤해지는 거 아시잖습니까.”

“글쎄요, 그렇게 대놓고 장교들을 욕했으면 저도 어떻게 무마해 줄 대책이 안 서거든요.”


현재 2중대장이 보이고 있는 태도는 빈말로라도 성실하다고는 할 수 없었고, 앞뒤 문맥만 따져보면 이전에 몇 번 문제가 됐던 간부이니만큼 굳이 나서서 비호 하지 않겠다는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아니, 어쩌면 앤슨 소위와 클라크 소위의 출신배경이 자신과 같은 왕립 육군사관학교인 부분을 감안해서 후배들의 편의를 봐주려는 가능성도 있겠지.


문제는 어느 쪽이든 내가 생각해 봤을 때 그리 좋은 소리는 듣기 힘들 작태였다는 것.


아무리 미천한 출신의 하사관이라 할지라도 상황 터지면 믿고 등을 맡겨야 할 전우일 텐데, 이렇게 계급과 학연에 매몰된 결정을 내리는 건 징계 수위 이전에 사기 관리 차원에서도 좋을 게 없을 일이었다.


“그럼 최소한 제가 정할 징계 수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증명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정도야 뭐, 어렵지 않죠.”


반쯤 불만 섞인 목소리로 그리 말해도 2중대장은 흔쾌히 탁자에 놓인 깃펜으로 편지지에 사인까지 곁들여서 증명서를 작성해 주었고, 상황이 거기까지 가니 나도 더 이상 감정을 소모하는 것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졌다.


처음의 그 느긋한 태도가 가식으로 보일 정도로 2중대장의 언행은 직설적이었고, 또 가차 없었다. 


대대장인 파웰 중령도 그렇고, 리에넨의 육군 장교들이 보여주는 면면은 내가 처음 군 생활을 시작했을 때 보아왔던 한국군 장교들과 비교해도 수준 이하였다. 


이게 그 자랑스런 리에넨의 신분제와 엘리트 계층들의 장교임관 독점의 결과물이라면 구태여 더 생각할 필요도 없겠지만.


“밤늦은 시간에 실례 많았습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부하 단속 잘못해서 폐를 끼쳤네요.”


상투적이기 그지없는 그 짧은 대화를 끝으로 자리를 정리하기로 한 나는 먼저 데리고 온 각 중대 간부들부터 내려보내고, 짧은 목례를 붙인 뒤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아, 2중대장님?”

“또 뭔가요.”

“제가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하워드 중사도 우리 전우이자, …리에넨의 국민입니다.”


나를 마지막으로 전원이 중대장 숙소를 나서기 전, 사심 가득 담긴 그 한마디와 함께 조심스레 현관문을 닫았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상당히 건방진 인상을 줄 법한 말이었지만, 아직은 리에넨의 신분제보단 한국에서 배운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가 뚜렷했기에 할 수 있었던 말이었다.


뭐, 지금까지 문고리가 돌아가긴커녕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걸 보면, 2중대장은 내가 한 말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거나 헛소리로 치부한 거겠지.


“앤슨 소위와 클라크 소위만 남고, 나머진 전부 들어가도 좋다.”


1층 중앙현관으로 내려와 부중대장을 포함한 목격자들을 돌려보내고 당사자들만을 남기니, 녀석들도 양심의 가책을 받긴 한 건지 식은땀을 흘리며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위에선 2중대장이 굳이 징계 처리하지 말라는 논조로 말을 했었지만, 내가 증명서까지 받아 가며 징계 의사를 내비쳤으니 그런 반응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후….”


참아왔던 긴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금 녀석들의 면면을 뜯어봐도 그건 마찬가지.


‘그러게 왜, 시키지도 않은 주취 폭행을 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냐.’


자기들이 욕먹어서 시비가 붙었다는 것까진 어떻게 넘어간다 쳐도, 내 욕이 나왔다고 주먹을 휘둘렀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걸 과잉 충성으로 봐야 할지, 엇나간 충성심으로 봐야 할지도 애매했고, 술을 마셨다곤 해도 자기들 출신 성분과 계급에 취해 집단 린치를 가한 일은 어느 쪽으로 봐도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었다.


“너넨 앞으로 사흘간 일과 끝나면 완전군장으로 두 시간씩 연병장 뺑뺑이 돈다.”

““……””


더 뜸 들일 것도 없이 밝힌 나의 징계 내용에, 녀석들은 이렇다 하게 두드러진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군장 뺑뺑이는 겉으로 보기엔 좀 가혹해 보여도, 단순한 얼차려로 분류돼서 근신이나 감봉같이 징계 이력이 남아 근무 평가 때 불이익을 주진 않는다.


게다가 이번 주는 아직 신형 전차 전력화와 관련해서 처리해야 할 행정작업이 한참 남아있었고, 한술 더 떠서 다음 주에는 중대 전술훈련 평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근신으로 장교 둘이 빠지면, 중대장 부임 이틀도 안 돼서 부대 운영에 빨간불이 들어오게 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지금, 내 말에 대한 반응을 보이는 것 이전에 대답까지 안 했다는 거지만.


“대답 안 하냐.”

“알겠슴다!”

“알겠습니다!”


그 대답과 함께 이제야 좀 상황 파악이 된 건지, 녀석들의 얼굴에 약간이나마 화색이 돌았다. 


애초에 별 달아보겠다고 여군 진급에 유리한 전투지원 병과들 다 내팽개치고 기갑에 야전 근무까지 마다하지 않은 녀석들이니, 이게 뭘 의미하는지는 녀석들 본인이 더 잘 알겠지.


“그리고, 중대 회식하고 대대 회식 때 말고는 음주 통제 들어갈 거다.”

“예…, 예?!”

“음주 통제 말씀이십니까?!”

“싫으면 또 술 마시고 영창 갔다 오던가.”


물론 그 과정에서 아무런 반박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나의 마지막 일갈에 이렇다 할 반론 없이 입을 다문 걸 보면 어떻게 이번 일은 나름대로 마무리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녀석들까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고, 나도 중대장 숙소로 들어가 거실의 소파에 몸을 기대니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중대장 생활 힘든 건 여기나 저기나 똑같구나.’


처음 계급장 받고 부대 오는 동안의 일까지 갈 것도 없고, 당장 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만 생각해도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믿겠거니 했던 소대장들이 저지른 주취 폭행에 타 중대 피해자 발생, 당직사령에게 있는 욕 없는 욕 다 들어먹은 끝에 신분제를 신봉하던 2중대장까지.


…뭐, 그렇다고 해서 오늘 하루가 마냥 아무런 보람 없이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여기선 최소한 이전에 중대장을 할 때와 같이, 얼굴도 모르는 누구들 편의 봐주자고 독박 쓰는 짓을 반복하진 않았으니까.


그걸로 된 거였다.